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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Jun 03. 2022

누군가에게 갖는 감정을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안녕.. 작별 인사를 해본다

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들이다. 부모님이 들으면 서운해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두 분은 일 하느라 바쁘셨으니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언제나 할머니, 내게 한자와 화투 치는 법을 알려주고 이리 저리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니던 분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지극히 현실주의자로, 어린 손녀들이 인형놀이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그런 것을 할바에는 차라리 숫자 계산이라도 빨리 할수 있게 화투를 치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다. 어린 애한테 너무 했다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했고 이제 다 함께 둘러앉아 화투를 배우던 그 때가 가끔 그립다.


시골집에서 자란 나는 늘 어둠이 무서웠다. 화장실은 소 외양간 옆에 있어 늘 할머니를 데리고 가 볼 일을 보다가도 갑자기 한번씩 “ 할머니 거기 있는 거 맞지? 가면 안 돼. “라며 그 존재를 확인하곤 했다. 밤에 잠을 잘 때도 등 뒤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을까봐 앞으로는 할머니를 마주보고 뒤로는 할아버지의 등을 맞대고 잠이 들었다. 그럼 안전한 요새에 둘러싸인 것 같이 편안한 느낌이 들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내게 ‘이별’의 슬픔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은 할아버지다. 내가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5학년때 돌아가셨는데, 그날 학교에서 멍… 하니 걸어오다가 사고가 날뻔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약 20여년이 더 지나 내가 서른 살 무렵에 하늘로 가셨다. 나에게는 이별의 충격이나 자각이 늦게 찾아오는 것인지, 언제나 헤어짐의 그 순간엔 잘 실감이 되지 않다가 어느 순간 폭풍처럼 상실감이 몰아친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문득 문득.


두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장례식장에서는 정신 없이 사람들을 맞이하다가, 혼자 있게 되는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다시 볼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한동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울었다. 그 애도의 시간을 끝내준 것은 사후의 세계, 무지개 다리 너머의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준 영화 <코코>다. 소개팅한 남자와 그 영화를 같이 보면서 나는 화장이 다 지워질 정도로 울고 말았다. 그 눈물의 끝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잘 울기 때문에 나는 혼자 영화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옆사람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울어도 되어서^^;;)



안녕.


우리가 누군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 사람을 영영 못본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작별인사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이상하게 발길이 안떨어지면서 이대로 끝일까봐, 다시 못볼까봐 무서워지는 마음.. 그런 마음이 들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퍽 아끼고 있구나.. 깨닫는다. 내 경우엔 진짜 헤어지려고 작정하고 (영원히) 안녕, 이라고 말할 때보다 아무 일 없지만 잠시 떨어질 때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안녕, 하고 돌아설 때 상대방의 뒷모습을 꽤 오래 지켜보는 편이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너무 쌩~ 하고 아무렇지 않게 가버리면, 어쩐지 마음 한켠이 서운해서 다음엔 나도 쌩^^ 하니 돌아서야지,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한다. 우습지만, 나에겐 그게 나만의 애정의 척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퇴근 메이트 하샘을 내려주면 그녀가 바로 돌아서지 않고 내 차가 차선을 무사히 바꾸는지 지켜봐주고 있는 모습에 또 감동을 받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이 모든 사실을 모른다^^ 내가 사이드 미러로 그런 자신을 또 잘 가는지 보고 있다는 걸)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신발에 미친 사람이라는 뜻이랜다^^ 난 자서전도, 나이키도 잘 사지 않지만, 이 책은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자서전 중 가장 재미있었다!)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부인과 헤어져 일본 출장을 갈 때, 필 나이트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그 시절 일본과 미국은 그렇게나 먼 나라였다! 출장을 끝내면 돌아올 것인데도,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처음으로 먼 곳으로 떠나는 마음이 잘 그려져서,, 나는 이 옛날 사람들의 연애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무때나 카톡을 보낼 수 있는 지금보다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그 시절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역시 나는 옛날 사람인가 ㅎㅎ



사노 요코의 동화 <100만번 산 고양이>

이 동화는 볼수록 재미있고 생각할 게 많다. 100만 번 태어난 고양이는 온갖 주인을 다 거쳐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도둑 고양이로 태어났다. 그간 수 없이 많이 죽었지만 그는 죽는 것이 슬프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자기 죽음을 슬퍼하는 인간 집사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하얀 고양이를 사랑하고 하얀 고양이 곁에 함께 살면서 그는 헤어짐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간절히 좋아하고, 지키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그래서 겁쟁이나 되기도 하나보다. 그리고 그런 겁쟁이만이 용기도 낼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용기 ㅡ


이제 영원히 못보면 어떡하지,

안녕,

작별인사를 하면

내가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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