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IKO

by 한은화

몇개월 전, 당신이 사고 싶은 시계가 있는데 봐달라며 내게 물었다

그 시계는 세이코 시계였고 지금은 구하지 못하는 모델이었다

나는 그 시계를 사주고 싶은 생각에 며칠동안 그 시계를 구매할 방법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좀 시계에 대해서 잊혀질 때 쯤

업무 때문에 마카오 출장을 갔을때 마카오 세인트폴성당 근처 시장을

하염없이 걷다가 시계상이 서 있는 골목을 마주했다


그 진열대에는 다양한 시계가 있었지만 나는 당신이 원하는 세이코 시계를 단번에 찾았다

광둥어를 하나도 할 줄 몰랐지만, 사랑앞에 두려울게 뭐가 있었을까 냅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

유리 진열대에 그 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How much is it?"


상인은 씨익 웃으며 계산기를 들고 입력하기 시작했다

6.800MOP 우리나라 돈으로 120만원 정도

어이 없는 가격에 헛 웃음이 나왔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을 때도

200만원이 넘는 가격이었기에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시계를 원하는 당신에게 연락이 왔다


"거긴 어때?"


답장을 보냈다


"습하지"


읽고나서 한참을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길래

당신에게 내가 먼저 운을 띄웠다


"네가 원하는 시계 여기 파는데 사갈까?"


띠-링 !

핸드폰이 울렸다


"얼만데?"

"120만원"


당신이 보낼 답장의 스타일은 이미 줄줄이 꿰고 있다

당신을 지겨울 정도로 사랑했으니까


"됐어 너무 비싸다"

"아니야 그냥 내년 생일 선물 미리 받는 걸로 생각해"


내년 생일선물 이라는 말도 안되는 배경을 깔며 들어갔다

사랑 앞에선 정말 바보가 되다 못해 멍청해지는 거 같다

120만원의 문제가 아니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그냥 해보는거지.."


내가 말 없이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으니

앞에 있던 상인이 다시 계산기를 뚜둘기기 시작했다


6500MOP가 입력되어 있는 숫자를 보여주며

상인은 환하게 미소를 띄우기 시작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당신에게 전화를 했고


상인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상인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어서

내 앞에서 Okay? Okay? 를 외치기 시작했다


정신 없는 와중에도 전화를 바로 받지 않은 당신이

조금 애꿏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어"

"상인이 좀 더 갂아줬어"

"얼마?"

"글쎄..한 10만원 정도 깍아준거 같은데"


당신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안그래도 낮고 고요한

당신 목소리를 더 낮게 깔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 사주게?"

"응 안그럼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지"

"왜?"


왜 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 하는 순간

나는 이 시계를 사려는 이유도, 당신에게 시계를 줄 수도 없을 뿐더러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애써 침착한 척 괜시리 목소리만 커지고 웃으며 대답했다


"가지고 싶어했잖아"

"그래도"

"별로야?"

"내가 마음이 불편하잖아"


네가 마음이 불편한 부분이 이 시계 때문이라는 사실에

왜 나는 마음이 이렇게 아팠는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알겠어 그럼 안살게"

"....."


아무말 없는 당신을 뒤로한채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사랑 앞에서는 단호해지지 못하는 사람이라

다시 한번 물어봤다


"정말로 필요없는거지? 마음이 불편해서를 떠나서"

"....아니"

"알겠어 그럼"


전화를 끊었고 나는 다시 상인과 협상을 했다

핸드폰에 계산기를 쳤고 6.000MOP를 입력했다

상인이 내가 입력한 숫자가 어지간히 웃겼는지

나보고 막 뭐라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 광둥어 몰라요"


한국어로 대답했다


"你係咪韓國人?"


상인이 내게 한국인이라고 물어봤다

광둥어는 중국어보다 성조가 더 많아서 정말 대화를 들으면

노래를 듣는 느낌이라 재미있는 언어다


"係"


네 라고 대답하니까 지끈지끈 했는지

이마를 두번 정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잠시 상인이 고민했다

그러더니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6.300MOP를 적어냈다


나또한 그 숫자를 보며 웃으며 다시 핸드폰을 가져와서

6.000MOP 다시 적어서 냈다

상인은 기가 막힌지 다시 한번 6.200MOP를 적어서 냈고

나는 됐어 됐어 손사레를 치면서 골목을 빠져 나왔다


상인이 다시 한번 크게 나를 불렀고

결국 6.100MOP에 거래를 하자고 들어왔다


"진작에 이렇게 해주지"


한국어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막 웃으며 Cheap Cheap ! 이라고 말하는데

나도 그냥 웃으며 가방에서 현금을 꺼냈다


그러다가 함께 출장을 온 일행이

내가 거래를 하고 있는 걸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다


"은화씨!! 안돼안돼"

"왜요?"


상인은 눈치가 빠른지 일행에게

광둥어로 막 말하기 시작했다

일행은 광둥어에 능통하니 상인과 몇마디 나누더니

상인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은화씨 여기 짝퉁 많아요"

"아 진짜로?"

"얘네는 보증서도 짝퉁이에요"

"아..."


결국 시계는 사지 못했고

세인트폴성당 외벽만 보고 돌아왔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당신에게 그 시계를 사다주었다면

우리의 이별의 의미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