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만델링 원두를 에스프레소 굵기로 갈아 내린, 끝 향기가 초콜릿인 만델링 에스프레소에 각설탕 두 개를 넣어먹어
내 아침에 루틴이지 커피 없으면 못 사는 나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계절이다가도 갑자기 찾아온 더위가 살짝 미워질 때쯤 하늘에선 내 마음을 엿본 건지 시원하게 비가 내렸어
그런데 비가 내리고 나니까 너무 습하더라고 애꿎게 날씨가 미운 건지 아니면 날씨가 애꿎어서 미운 감정이 드는 건지 모르겠더라
밖에 나갈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살짝 그친 비 사이를 가로질러서 카페에 들어갔어
평생을 이곳에서 일했지만, 떠나간 이곳이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어 어쩔 수 없나 보다 싶다가도 앞치마를 입고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그립다는 감각이 진해지는 거 같아 그 고생을 했는데도 왜 그 앞치마를 입고 일했던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 보이는 걸까?
이야기가 조금은 딴 길로 새어버렸네, 당신은 어떤 커피를 좋아할까? 나는 일단 아메리카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맛있는 커피에 물을 타서 먹는다니.. 음 재미없는 짓이라고 생각했거든 내가 이탈리아 사람은 아니지만 처음 커피를 마셨던
14살 이름도 모를 원두를 핸드드립을 해서 마셨던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산미가 강해서 별로였던 기억이 있어
그런데 자꾸 혀끝에 남는 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이 나를 밤새 재우지 못했어, 다시 한번 그 감각이 생각나서 나는 다시
그 낯선 가게에 찾아가서 3£ 정도 하는 커피를 또 마셨지 그러다가 잠깐 사는 게 바빠서 커피를 멀리하고 살았지
늦사랑이 무섭다고 연고도 없는 커피를 시작하겠다고 촐싹거리며 살았지 수많은 원두와 로스터기를 품에 껴안고 살았지만
현실은 뜨거운 홀빈보다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더 인기가 많았어 그래서 나는 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지 않았지
어느 여름날이었을까 이제 바리스타로써 살아가는 삶이 질리고 익숙해질 때쯤 평소 같으면 똑같이 플랫 화이트나 에스프레소를 마셨겠지만
무슨 변심이 났는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어 블론드 원두로 마셨는데 산미가 산뜻하게 느껴지면서 조금은 묵직한 삶이 시원하게 느껴지더라
그때부터였을까? 리스트레또 샷으로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지겹게 마셨었는데 이제는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시니까
갑자기 찾아온 여름이 또 미워서 자꾸만 생각이 나더라 아마 내가 저 안에 앞치마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운 이유는 그 맛있는 커피를 마시지 못해서
그리운 게 아닐까 싶다가도 그냥 지난 시간은 잊기로 했어
뜨거운 여름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공존해야 하니까 말이야
나도 그냥 커피가 내 뜨거운 여름에 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던 걸로 마무리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