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빠와 나

꽃게야 미안해.

왜 대게를 안먹고 치킨집으로 도망갔을까?

by 때때로

서해안 꽃게 금어기가 끝나고, 대형마트들에서는 일제히 햇꽃게 특가 행사를 이어나간다.

매년 이때가 되면 우리 집은 꽃게를 사다가 맛있게 쪄서, 살을 발라내고 껍데기에 내장과 참기름을 비벼서 맛있게 먹곤 한다. 양이 조금 부족할 수 있으니 라면도 꽃게 다리와 함께 꼭 끓여서 먹어야 한다.


우리 집은 살아있는 꽃게를 보통 주말에 사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남편이 손질하는데, 이번엔 배달을 시켰더니 남편이 없는 주중 한낮에 도착했다. 나는 톱밥과 함께 배달되어 온 꽃게를 씻어서 냉동실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박스를 열었는데, 박스 위에 올려진 큰 꽃게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무척이나 살고 싶어 함이 느껴진다. 내가 손으로 집으려고 하자, 집게발과 다리에 바짝 힘을 주고는 "덤빌 테면 덤벼봐!"라며 나를 노려본다. 무방비 상태로 덤볐다가는 게에게 물릴 것이 뻔하여, 나도 무기인 집게를 준비했다. 내가 집게를 들어서 게의 몸통을 집으려고 하자 " 챱" 아.. 나의 집게가 꽃게의 집게에 잡혔다. 내가 쥔 것은 실리콘 집게였는데, 마치 내 손가락이 잡힌 것 같은 느낌이다. 겨우 겨우 틈을 타서, 게의 몸통을 집어서 싱크대에 올려놨더니, 몸을 세워 전투태세를 하고 있다. 나는 '안 되겠다 항복해야겠다. 미안하지만, 그냥 톱밥상태로 냉동실로 가주렴.'

이렇게 생각하고 게를 다시 톱밥으로 옮겼더니, 게는 집에 돌아온 듯 순해져서 그대로 톱밥에 몸을 숙이고 조용히 심호흡을 한다.

게와 실랑이를 하고 나니, 남편이 왜 이렇게 살아있는 게를 잡기를 힘들어하며 냉동실로 직행해 달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고, 살아있는 생명체인 "꽃게"에게도 참 미안했다. 게가 마음 놓고 안도하며 톱밥에서 쉬고 있는 시간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꽃게야.

그런데 이때 먹는 네가 너무 싸고 맛있구나. 미안하다.



부모님은 과일 가게를 하시느라 늘 바쁘셨다. 일 년에 그나마 조금 여유를 갖고 쉬시는 때는 명절 때 과일을 다 팔고 친척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때였다. 엄마, 아빠는 바다를 참 좋아하셨는데, 경상도에 있는 큰집을 다녀오고 나서는 해안가 도로를 따라 영덕을 거쳐서 내륙에 있는 충청도 집에 돌아오곤 했다. 내륙에 살아서 그런지, 엄마, 아빠는 무척이나 바다를 늘 그리워하고 좋아하셨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마음속 풍경이 있다. 부모님은 명절에 차를 타고 가다가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묵으셨다. 그리고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앞에 이불을 깔고 엎드려서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셨다. "철썩철썩, 참 좋다. " 하시며. 나는 차 타고 가다가 아무 곳이나 가보는 것이 참 스트레스였는데, 부모님에게는 일 년에 2번 명절에, 마음대로 드라이브하다가 바다에 머무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부모님은 평소에는 가게 하시느라 아이들과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니, 명절 때라도 영덕에 가서 바다도 보고 맛있는 대게도 사주고 싶어 하셨다. 너무 귀한 대게가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즐거움이셨던 것 같다. 그런데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내륙에서 해산물을 거의 먹고 자라지 않았던 우리는 대게가 맛있는지 먹어봐도 몰랐다. 당시에도(25년 전쯤) 부모님이 대게 흥정하실 때 한 마리에 15만 원이 넘는 게를 몇 마리 사셨던 것 같은데, 그 비싼 대게를 우리는 먹지도 않고 "게맛살이랑 비슷하네. 맛살 참 잘 만들었다." 라며 치킨집으로 도망갔다. 지금 생각해도 참 허망한 순간이다. 자식에게 귀한 음식 먹이려고 했더니, 그 바닷가에서 치킨집으로 도망가다니!!!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내 돈으로는 너무 귀하고 아까워서 못 먹는 대게.

달짝지근하고 맛있는 건 역시 꽃게라며, 꽃게 금어기가 끝나면 늘 이때마다 먹고 있는데,

꽃게의 강한 저항에 자꾸 미안하고 부모님이 그렇게 먹여주려고 했던 대게가 생각나는 날이다.

지금이라면 그 사랑에 부응하여 정말 많이 열심히 먹을 수 있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