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그림과 낙엽으로 책갈피를 만든다.

by 때때로

우리 동네 산책로는 이미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 우수수 떨어진 마른 갈색 낙엽 위를 걸을 때면 바스락바스락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그 순간 하늘에서 낙엽이 하나둘씩 산 위로 뒤덮인 낙엽 위로 떨어지면 조용하고 경쾌하면서도 슬픈 소리를 낸다. 탁. 탁. 탁. 탁. 탁.

이렇게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버리면 '숲관찰자', '자연관찰자'인 내가 관찰할 것들이 줄어드는데 괜히 마음이 조급하다. 나뭇잎 사이로 번져 들어오는 햇살을 담으며, 이 가을의 순간을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다.


오랜만에 엄마와 산책을 하며 통화를 했다. 70세가 넘은 엄마는 아직도 나와 나의 형제들, 또 손녀, 손주들을 걱정한다. 엄마의 염려 섞인 목소리가 안쓰럽다. 사람이란 언제까지 자식 걱정을 하고 계속 연민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엄마에게, "엄마 그냥 두세요. 엄마가 걱정한다고말하지만, 실제로는 엄마가 이 상황을 못 참는 거지. 엄마가 자꾸 걱정하면, 자신도 고민이 많은데 더 얹어져서 만나기 싫어져요. "라고 말한다.

알고 있다. 못된 말. 엄마가 자꾸 걱정하는 잔소리 하면엄마 보기 싫으니 그만 하라는 협박이다.

또 진심이 담기기도 했다. 누군가를 걱정한다고 하는 말은 사실은 나의 분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것일 때가 많다. 내가 못 기다리고 내가 참지 못하면서,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포장을 한다. 그냥 서로가 서로 생긴 그대로를 인정하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서로에 대한 연민조차도 그만두고...


엄마와 1시간을 통화하는데 나이 든 우리 엄마는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는데 해준 것이 없고, 자신의 삶도 이룬 것이 없다고 한다. 살아갈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끝이 아스라이 보이는 그 시기에도 인간은 참 고단하구나. 엄마에게 서로에 대한 걱정보다는 엄마와 내가 각자 삶을 즐기며 살다가 곧 즐겁게 만나자고 한다.


통화를 마치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니, 알록달록한 낙엽들이 곳곳에 떨어져 있다. 역시 가을에는 노오란 은행잎과 빠알간 단풍잎이 예쁘고, 그 사이 푸른색의 잎들도 아름답다. 잎들이 함께 어우러져 산속에서 본 갈색 세상을 오색찬란하게 바꾸어 놓았다. 이 순간들을 담아 두겠다고 낙엽을 열심히 심혈을 기울여서 줍는다. 낙엽은 온전하기만 해서는 매력이 없기에 약간 잎이 삭고 떨어진 것들도 줍는다. 이렇게 열심히 주워온 낙엽은 약 900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인간본성의 법칙' 사이에 꽂아둔다. 책이 두꺼우니 잘 압착되어 마를 것이다. 아주 쓸모 있는 책이다!

예전에 말린 낙엽 책갈피도 꺼내보고, 올해 아빠가 키우신 복숭아, 여름의 상징 능소화, 김창렬 화백의 물방울 전시를 보고 와서 그린 책갈피를 본다. 추억과 그 순간들이 되살아 난다. 열심히 주운 낙엽이 예쁘게 말라서, 이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면 좋겠다. 나는 낙엽과 함께 추억을 주웠다. 우리 엄마도 끝없는 후회화 회환을 뒤로하고, 지금 이 눈부신 가을을 줍고 행복한 마음을 오래 담아두면 좋겠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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