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다
그날의 계획은 완벽했다.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비빔만두를 먹은 뒤 북토크에 가는 일정이었다. 전철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도서관 창가 앞자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볼 수도 있었다. 해가 기울며 바다는 보석처럼 반짝였고, 배들이 때를 맞춘 듯 천천히 내 눈앞을 지나갔다. 책을 보기 보다는, 이 공간 안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그날의 주된 목적은 북토크였기에, 예정대로 두 시간 전 도서관을 나서 버스를 탔다. 북토크 장소 근처 식당으로 가려 했지만, 초행길이라 눈앞에서 내리는 정류장을 놓쳐 버렸다. 버스는 곧 멈출 거라 생각했던 곳을 지나, 예상보다 훨씬 먼 곳에서야 섰다.
하…..
날씨도 추운데…..
속이 상했지만, 내리고 보니 헌책방 거리였다. 다행히 목적지인 식당에도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 곳은 예전에 한 번쯤 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헌책방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어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풍경이다. 햇빛에 오래 바래 누런 책들이 창가에 꽂혀 있고, 그 앞을 지나치며 괜히 발걸음이 느려진다. 책방에 들어가 오래된 책을 집어 들면 그 책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길을 헤매느라 시간이 부족하니 오늘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없다.
동네는 오래되어 걷기가 불편했지만, 예전에 목포를 여행했을 때처럼, 낡은 건물들에서 묘한 정취가 배어 나온다. 평일 오후라 거리는 한산했지만, 그래서인지 빈 공간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커피를 내리는 카페도, 주인 없이 별모양 조명이 반짝이는 가게도 조용히 말을 거는 듯했다. 아기자기한 유럽풍 식당은 유난히 맛있어 보여, 잠시 만두집을 잊을 뻔했다.
걷다보니 예전에 한 번 들렀던 시장이 나타났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닭강정집 앞은 여전히 북적였다. 짧은 시장길 끝에는 맛있는 공갈빵집이 있다. 주말이면 한 사람당 세 개만 살 수 있을 만큼 인기 있는 곳인데, 오늘은 비교적 한산하다. 공갈빵은 크고 두껍고, 안쪽에 묻은 달콤한 시럽 덕분에 조각 내 먹으면 바삭하면서도 달다. 하얗고 부푼 공갈빵을 보며 작가님이 생각나서, 집에서 먹을 것과 작가님을 위한 빵으로 네 봉지 산다.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목적지는 잠시 지나쳤지만,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산책이 되었다.
(비록, 신나게 산 공갈빵은 드리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