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건네는 말.
내가 젊었을 때, 고향은 안갯속에 잠긴 채 시간이 멈춘 곳처럼 느껴졌다. 대학 시절 방학 때마다 집에 내려오면,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흘러 지겹기까지 했다. 동네도, 부모님도, 나도 모두 그대로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리 모두 조금씩 나이들어 갔다.
그 사이 고향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제는 나와 친한 사람들까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는 곳이 되었다. ‘이런 곳에 왜 오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이 아름답고, 국제영화음악제까지 열리는 곳이니 올만한 곳이지 싶다.
명절에 집에만 있기 아쉬워 부모님과 함께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어 학창 시절 소풍으로 지겹도록 가야만 했던 유원지로 향했다. 학창시절 우리들은 김밥을 먹고, 장기자랑을 하고, 레크리에이션을 하며 하루를 보냈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선생님을 따라 친구들과 줄지어 걸어가기도 했다. 문득 그 거리가 궁금해 찾아보니 약 4km 였다.
한시간동안 걸어가다니, 대단하다, 과거의 초등학생들.
오랜만에 찾은 그곳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릴 적에는 끝이 없을 만큼 넓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한눈에 다 들어온다. 친구들과 기어 올라가 엉덩이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던 저수지 둑에는 편안한 데크길이 놓였다. 큰 저수지를 따라 산책로와 조형물도 생겨, 마치 외국의 어느 호수에 와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시간이 멈춘 것 같다며 투정을 부리는 동안, 고향은 쉼 없이 변해왔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돌아 나오며 이곳의 주인처럼 서 있는 소나무를 올려다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 소나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릴 적의 나와 지금의 나를.
"또 보자. 건강하게."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건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