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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지 Oct 24. 2021

자신이 하고자 한 일은

끝까지, 열심히 하자! 1994년 4월 6일 

예쁘고, 귀한 우리 딸!
자신이 하고자 한 일은
끝까지,
한 눈 팔지 말고,
열심히 하자!

다른 사람 것 넘겨보지 말고.

골고루 많이 먹어라

1994.04.06 엄마가 -  



시간이 야속하다는 가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동안 브런치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이 잘 안 써져서'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개인적인 일이 많았다는 핑계도 대 보지만 솔직히 나는 의지가 박약이다. 


작년, 오래 나를 봐오던 후배랑 대화를 하다 '언니의 루틴은 루틴이라고 할 수 없죠'라는 얘기를 들었다. 약간의 타박을 실은 그 말은 아직까지도 뇌리에 박혀 있다. MBTI가 유행하는 요즘처럼 소개하자면 즉흥의 끝을 달리는 나는, 직관적인 N 무계획자다 P. 계획적이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루틴을 정하면 루틴을 지키고 싶지 않은 청개구리 심보가 생긴다. 


그래서 그런지 '하고 싶어'로 시작한 일이 '해야만 해'로 바뀌는 순간 '하고 싶지 않아'로 바뀌면서 하지 않게 된다. 대부분의 일들은 점진적인 성과를 이루기보다는 계단 형으로 성장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몸에 익어 할 수 있는 일이 되고 난 뒤에 나오는 강력한 힘을 느끼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런 안 좋은 습관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은 역시, 엄마 다. 평소 호기심이 많던 나는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엄마는 시작하는 것을 막진 않았지만 일단 시작을 하고 나면 그것이 느리고 실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릴 적 간단한 숙제 같은 것은 끝이 있지만 피아노, 태권도 같은 흥미로 시작된 예체능은 끝이 없어서 어디까지 하고 싶은지와 나에게 필요한 일인지를 가끔 물어봤다. 해야 하는 일 말고도 하고 싶은 일에도 내가 시작을 정한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만족의 끝 선을 정하는 습관을 몸에 배도록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서 어릴 때와 달리 삶의 지침이 없어지고, 사는 대로 살아지는 순간에 휩쓸려 살아갈 때 엄마의 쪽지를 한 번씩 더 들쳐본다. 어릴 적 초등학교 도시락과 수저통에 적혀 있던 작은 정사각형의 메모. 어쩌면 백장에 달하는 그 수십 장의 메모를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 지금 이 집까지 들고 왔던 것은 그만큼 나에게 강한 의지와 힘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하고자 한 일은 끝까지, 한 눈 팔지 말고, 열심히 하자! 

지금 현재로써는 내 인생에 제일 힘든 목표다. 

 

여전히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삶의 중요한 순간에 대화와 상의를 하지만, 어릴 적 바른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준 작은 메모는 초심의 기준 같다. 


자꾸 이런 칭찬과 조언을 적어 준 게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지금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끝까지 열심히 해야 되는 때인가 보다. 

그게 아주 느리더라도 엄마와의 쪽지에 대한 글을 내가 계속 쓰는 이유기도 하다. 




RE : 

엄마, 내가 하고자 한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어른으로 클지 어떻게 알았을까 싶네. 골고루는 많이 먹은 것 같아. 키는 이 정도로 큰 사람이 되었으니. 


찔리는 사건들이 많지. 나는 주로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이고, 그 뒤에 생각하고 그다음에 진짜 행동하는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다행히도 다른 사람의 것을 넘봐서 그걸 뺏으려는 사람은 안된 것 같아. 


다시 엄마의 예쁘고 귀한 딸이, 자신이 하고자 한 일을 끝까지 한 눈 팔지 않고 실행하는 단계를 시작할게. 거기에 열심히도 덧붙여 볼게. 엄마에게도 좋은 딸이 되기 위해서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예쁘고 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2021.10.24 예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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