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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지 Oct 16. 2021

자신의 일을 잘 한 후에는,

꼭 정리 정돈을 하세요.    1994.5.23. 엄마.


예지야! 
마음을 침착하게 하고, 
자신의 일을 잘 한 후에는, 
꼭 정리 정돈을 하세요. 

잘 할 수 있을 거야        예지는!                                                                      
1994.5.23. 엄마.                

수수께끼) 알은 알인데, 껍질도 까지 않고
통째로 먹는 알은? 
힌트 → 도시락 먹을 때, 선생님이 매일 주시는 것. 




글을 안 남길 수 없는 오늘이다. 

혼자 있는 지금 이 쪽지가 문득 생각나면서 아주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개인 노트북을 열었다. 


그간 여러 가지의 신변의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것은 독립이다. 


독립을 하게 된 여러 이유들과 과정을 재쳐두고,

오늘 글을 쓰게 한 것은 '정리 정돈'이라는 단어다. 


집들이를 하고 집 정리를 하고 12시를 조금 더 넘긴 지금. 

다소 피곤하지만, 마무리된 집에서 향초를 틀어놓고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가만히 향초를 바라보다 보니 예전 엄마가 적어줬던 쪽지가 떠올랐다. 

 

어릴 적 잘하지 못했던 정리 정돈. 


온전히 내가 내 몸과 공간을 오롯이 지켜야 되는 요즘, 하루의 마무리 전 집을 정리한다. 그 뒤에 시간이 좀 더 있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혼자 남은 시간 지치지 않고 더 편하게 푹 쉴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정리정돈을 할 수 있는 건, 몸에 남은 루틴 덕이다. 


어릴 적 버릇이 오래가는 걸 알아서 그런지, 평소 명령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엄마는 강하게 '하세요.'라는 단어로 문장을 마무리했다. 응원도 잊지 않았지! 


고맙습니다. 




독립하면서 알게 되는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 집안일엔 끝이 없다는 것. 

- 미루면 계속 밀리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미루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전에 어디까지가 내가 정리 정돈할 건지를 정하는 게 먼저 정해져야 된다. 내가 어떤 상태가 정리가 된 것인지, 집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지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바닥을 물걸레질하지 않는 것은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나에겐 실내 슬리퍼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싱크대에 설거지가 쌓여있는 것은 마음이 어지럽다. 그게 비단 물속에 담겨있는 컵 한 개 라도 말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내일 버려도 되지만, 방 안에 음식 냄새가 나면 괴롭다. 그래서 환기를 더 자주 한다. 이렇게 '정리'라는 나 만의 기준을 세워본다. 




혼자 살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가장 큰 낙은 어떤 걸까? 요즘 다들 아는 MBTI 가 E로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사람들이 나의 집으로 찾아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집들이' 오늘은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왔던 날이다. 집에 누군가가 놀러 오는 게 부담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어떤 친구들이 어느 정도 규모로 우리 집에 모이는 게 좋을지부터 시작해서 메뉴는 뭘 먹을 것인지, 언제까지 놀 것 인지를 상상해보고 계획한 뒤에 시행해보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겁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개인적인 공간에 들어와서 행복해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음과 양이 함께 있듯 즐거움이 있으려면 수고와 노력도 필요하다. 


집들이의 고단함은 아마 모두가 떠난 뒤 홀로 치울 거리들과 함께 남았을 때 밀려오는 것이 아닐까. 


  잘 차려진 한 상을 즐겁게 나누는 기쁨 중엔 잘 차리는 과정이 포함되어있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엔 마무리해야 하는 집안일이 산더미다. 남은 음식물 중 보관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한 뒤 먹은 식기들의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구분하고 음식물이 묻은 재활용 용기는 닦아서 구분해둬야 하고 청소와 환기까지 마쳐야 집이 휴식을 취하기 온전한 상태가 된다. 


요즘 집들이를 하면서, 친구들한테 들은 얘기 중 하나는 '사부작사부작 잘 치우네'였다. 음식과 술을 좋아하는 나는 보통 2차례 정도 식탁에 변화를 주는데 중간중간 친구들의 대화가 끊기지 않는 선에서 무언가를 정리했던 모양이다. 본격 설거지를 하면서 대화를 한 적도 있고.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나와 함께 지내면서 정리 정돈을 하는 것을 쭉 지켜봐서 그렇게 중간중간 정리를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의식하지 않고 하는 일에는 힘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 얘기를 해주었을 때 엄마의 쪽지와 함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해서 뿌듯한 마음도 들었고. 




최근에 한 가지 더 엄마에게 전달받은 팁은 시간과 범위를 정하는 것. 정리가 끝이 없는 이유는 청소는 하면 할수록 노하우가 생기는데, 얼마나 깨끗해질 수 있는지 아니까 욕심을 부리게 되는데, 시간이나 범위를 정해서 하면 성취감과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거기에 나만의 루틴을 하나 더 했는데, 마음과 몸의 정리도 함께 하는 것. 짧은 시간이라도 명상과 스트레칭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매일 못해서 '노력한다.'라고 지금은 남겼는데, 후에는 '매일 한다'로 바뀌게 되길. 


그래서 엄마가 남겨준 나의 루틴에 더해서 나 만의 루틴이 또 생기길 기대해본다. 스스로에게 더 뿌듯할 수 있도록. 



RE : 엄마! 오늘은 뿌듯해서 글을 쓰게 되었네. 

엄마가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응원하면서 어릴 적부터 정리 정돈에 대해서 조금씩 체험하도록 하지 않았으면, 혼자 살게 된 지금 이렇게 온전히 내 삶을 잘 운영할 수 있었을까? 


그때는 왜 나에게 이렇게 잔소리를 할까 싶었던 것들이 혼자 지내다 보니 다 필요한 얘기라고 더 느껴져. 고맙고, 내가 내 스스로 잘 지낸 것 같아 뿌듯하네. 엄마도 뿌듯했으면 좋겠다. 

근데, 수수께끼 답이 뭐였을까? 

2021.10.16. 예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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