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지 Feb 28. 2020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1994년 4월 18일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씻고, 매일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 건강하단다.

건강을 잘 지키거라.

1994.04.18. 엄마가 



엄마의 많은 쪽지를 정리하고 있지만, 이번 주 쪽지는 이것. 


지난 수요일부터 선택적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마냥 집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솔직히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근무를 하는 게 썩 효율이 나는 일은 아니었다. 돌아가면서 사무실에 출근한다는 게 엄마는 어색한지, 자꾸 휴가를 낸 건 아닌지 확인했다. 


밖이 두렵고 집에 있는 게 편할 거란 생각에 선택한 것도 있지만, 결정의 계기는 친구와의 카톡이었다. 혹여 내가 문제가 생겨서 그걸 극복하지 못해서 불안한 것보다 같이 생활하는 부모님에게 피해가 갈까 염려된다는 대화였다. 나이 드실수록 면역력도 회복력도 약해지기 마련이니까. 아마 내 또래의 아이가 있는 부모역할의 친구들은 나와 정 반대의 이유로 재택근무를 하고 싶겠거니 추측했다. 


나보다 다른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게 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대부분 나보다 약한 존재로 느껴질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뭘 도통 잃어버리지 않던 엄마가 비싼 목도리를 잃어버렸다고 말할 때 이전에 없었던 괜한 의혹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던가, 좌식생활을 하던 우리 집 특성상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는 걸 편히 하지 못하는 모습을 봤을 때 나의 아픔과 힘듦을 제쳐두고 엄마의 안위를 생각하게 된다. 


사실 별일 없다. 깊게 생각할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늙는 게 슬픈 일이나 유난 떨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도리어 나는 나이가 들고 싶었고 지금도 더 나이가 들어 완숙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근데 나는 늙어도 엄마는 늙지 않았으면 하는 모순된 바람도 같이 생긴다. 나이 들어감의 끝에 헤어짐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언제라고 준비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아니었으면 한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온 '이제 마음 철컹하는 일은 부모님 관련 일 밖엔 없는 듯'이라는 문구에 백번 동감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씻고, 매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건강해진다고 했고, 엄마는 매일을 잘 지내고 있다. 근데도 나는 이제 엄마가 걱정이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으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를 나도 하게 된다. '엄마, 건강하게만 지내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을 잘 지키거라. 


엄마, 엄마도 부디.

우리 이제는 정말, 오래오래 건강히. 


RE : 


요즘 내 친구들끼리는 무겁지는 않지만 부모님의 나이 들어감에 대해서 종종 얘기하게 돼. 나는 솔직히 좀 무서워.  


엄마도 소위 각 잡고 얘기하진 않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말을 툭툭 던질 때 표정은 변하지 않지만 내 마음도 툭툭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나이 들고, 늙어가는 당연한 일인데 확실히 대상이 엄마라고 하니까 느낌이 다르더라. 


엄마 우리 할 수 있는 한은 오래오래 건강히 지내보자. 부탁할게. 


2020.02.28. 예지가.  

이전 08화 제 철에 나는 음식을 먹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