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져스의 글: 런데이 1~2주 차를 마치며
오늘로서 런데이 2주 차를 마쳤다. 이 조깅 앱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가 많았으나 헬스를 하는 입장에서 조깅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왜냐, 트레이드밀을 이용하면 되니까. 허나 날이 좋아질수록, 또 코로나의 기승이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을수록 야외 운동을 향한 니즈가 슬금슬금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한 건, 바로 망고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다.
망고는 자신의 여동생이 곧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내게 전해왔다. 오키바리. 나는 바로 '갈래!!!'를 외쳤다. (정확히는 ‘문장을 날렸다’가 맞겠다) 마음 맞는 이와의 술자리가 10시에 멈춰져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했으니까. 더 나아가 치솟는 부동산 시장에서 내 집 하나 없어 부모님과 동거해야 하는 신세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요즘이었다. 그러던 찰나 내게 툭하니 던져진 망고의 유혹은 다윗의 돌팔매질 같은 것이었다. 내 이마에 떡하니 박혀 귀차니즘에 절어있던 몸뚱이와 고집을 단숨에 무너뜨렸으니까.
일산과 광명의 차이는 얼마나 대단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미미한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와 시간 및 공간의 제한 없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감격에 겨워 광명까지 가는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설렘이란 놈은 대단한 놈이다. 나는 그 대단한 놈을 꼭 껴안은 채 와인 한 병을 사들고 망고네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망고가 준비한 안주들과 함께 와인 한 병을 홀짝홀짝 마셨다. 우리는 마시면서 울고, 먹으면서 웃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까무룩 잠에 들었다.
그다지 늦지 않은 오전에 우리 둘은 일어났다. 나는 숙면을 취했고, 망고는 숙취에 시달렸다. 망고는 자신이 숙취로 밤새 괴로웠다는 말을 하며 나보고 '넌 아주 잘 자대'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속이 괴로워 자신이 옆에서 계속 꿈틀꿈틀 되는대도 내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이렇게 덧붙였다. 너 입 벌리고 자더라. (미안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나른하면서도 정신없는 아침에 나는 이전날 망고가 건넸던 제안 하나를 떠올렸다. 다음날 아침에 조깅할 거니까 운동화를 신고 오든 갖고 오든 해. '술 마신 다음 날에 러닝이라. 색다른데?' 하며 당시 그 제안에 기분 좋게 예쓰를 외쳤... 아니, 문장을 날렸다. 그러나 숙취에 시달렸다는 망고의 말을 들은 지금 이 순간. 망고는 조깅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조깅러의 조자도 아니었으니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다. 그리고 살짝 귀찮은 탓도 있었기에 망고의 동태를 살피며 적당히 맞추자는 스탠스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랬는데, 망고는 내 예상 혹은 기대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아니,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게 아닌가. (아마 그때 나는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
망고의 집 근처 먹자골목을 빠져나온 후 그 골목의 초입에서 왼편(아마 맞을 게다)으로 쭉 가다 보면 안양천과 이어지는 00천이 나온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 천이 나오기 살짝 전에 망고는 블루투스 이어폰 한쪽을 내게 건넸다. 마치 잘 익은 다홍색 홍시 반쪽을 떼내어 주는 것처럼 사이좋고 정겹게. 나는 그 한쪽을 내 귀에 슬그머니 얹었다. '뭐 대단하겠어?' 하는 싱거운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나 귓가에 울리는 ai 트레이너의 목소리는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그의 리드대로 움직였다. 마치 한 마리의 순한 양처럼. 그가 뛰라면 뛰고 그가 걸으라면 걸었다. 속도를 내려는 내게 천천히 가도 된다는 그의 말은 어느 남자도 쉽게 뱉을 수 있을만한 멘트가 아니지 않은가.
그 후로 나는 영화 her의 호아킨 피닉스가 ai랑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앞서 밝혔듯 그와 사랑에 빠진 지 정확히 2주 차이다. 사실 그와 사랑에 빠지고 있는 것인지 아님 조깅과 빠지고 있는 것인지 지금도 헷갈린다. 그러나 워낙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대외적으로는 조깅에 빠진 것이라 말해보겠다. 그렇다. 나는 지금 달리기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어떤 생각이 들곤 한다. 달리기를 하듯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이 달리기 같을 수만 있다면. 사람을 사랑하기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그런데 왜 갑자기 사랑 타령이냐고?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부끄러움이 많다니까. A를 말하지만 정작 내가 말하고 싶은 건 B인 것이다. 똑똑하고 상냥한 독자라면 무엇이 A이고, 무엇이 B인지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