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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딘의 우연한 연결 Sep 05. 2022

[어딘글방] 이 글은 선언문이 아닌데요, _ 발가락

그러므로 먼저 생식기와 성기를 분리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성기를 성행위를 하는 신체 기관이라고 정의하면, 성기는 몸 전체다. 온몸을 다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때 더 안전하고 즐거운 섹스를 상상할 수 있고, 자신을 온전한 성적 주체로 인식하기도 쉬워진다. 


그러게, 성기를 성행위를 하는 신체 기관이라고 정의하면, 성기는 몸 전체다, 맞는 말이네. 

한채윤의 <여자들의 섹스북>에 나오는 문장이다. 

발가락의 '반려가전'에 대한 도움말도 나온다.


다양한 섹스토이를 써본 분을 인터뷰하면서 초보자에게 해줄 조언이 있느냐고 묻자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바이브레이터 등 진동 기능이 있는 제품을 살 때는 충전형을 골라라. 진동의 세기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건전지는 계속 교체해야 하는데다가 한창 사용하는 도중에 세기가 점점 약해질 수도 있다. 둘째, 섹스토이의 청결을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니 반드시 방수 기능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사라. 세척하기도 쉽고, 샤워하면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니들의 섹스이야기, 시작합니다. 





이 글은 선언문이 아닌데요, 홍보글도 아닙니다만.


발가락



‘반려가전, 우머나이저를 이제 들이실 때예요.’ 

이어폰에 흐르는 팟케스트 속 진행자의 멘트가 퍽 명랑하게 들렸다. 문득 작년에 베를린에 갔다 와서 친구를 만나 선물을 건넸을 때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뒤늦게 나의 여행 소식을 알게 된 친구는 왜 독일에 가면서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느냐며, 알았다면 우머나이저를 사달라고 부탁했을 거라며 매우 아쉬워했다. 직구를 하면 더 저렴하다는 게 친구의 주장인데, 그때는 그 저렴하다는 맥락보다는 매일 섹스할 수 있는 ‘남자’와 섹스할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같이 사는 친구의 섹스토이에 대한 그 간절함이 더 의아했다. 물론 그런 나의 의아함이 퍽 순진한 발상이라는 걸 오래가지 않아 깨달았다. 단지 당시에 나는 직전의 긴 연애를 좋지 않게 끝내고 공백기를 가진지 2년이 넘어가던 터라 내 간절함만이 세상을 온통 덮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간절함 따위를 이해해볼 여유가 없었던 것뿐이다. 


광고에 홀린 듯 그 성인용품샵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세상에. 종류가 이렇게나 많아? 여성용 자위도구에는 크게 삽입형과 겉에서 공기압력과 진동을 통해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흡입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종류를 막론하고 대게는 바이브레이터로써 진동식이다. 흡입형 바이브레이터의 최강자인 우머나이저는 직구를 노리던 친구의 말처럼 15-20만원대 선으로 ‘토이’치고는 가격대가 부담스러웠다. 베를린에서 진작 사 왔어야 했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주인장이 합리적인 가격대라고 설명해놓은 제품이 보였다. 새티스파이어. 이름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넘치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생김새는 해삼 같다고 해야 하나. 사실 나는 해삼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매번 기억이 안 난다. 그럼에도 뭔가 해삼 같았다. 아니면 <센과 치히로>의 전체적으로 기역(ㄱ)자 모양을 한 가오나시 같기도. 동그랗게 튀어나온 고무패킹 같은 것으로 겉이 감싸진 주둥이 같은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은 손잡이 형태로 세로로 긴 형태의 봉으로 이어진다. 그 봉 부분은 주둥이 부분과 맞닿는 처음 부분이 제일 두껍고 점점 얇아지는 형태이다. 가격도 3만원대부터 7만원대까지 다양하고 합리적이었다. 구매를 완료하고는 배송은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도착한 토이의 자태는 생각보다 더 귀여웠다. 사실 해삼이나 가오나시를 내 신체의 중요부위에 들이민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거북스러웠다. 실제 마주한 귀엽고 얄쌍한 토이의 모습은 생소하긴 했지만 거북하진 않았다. 예전의 미국 드라마 같은 데서 본 섹스토이는 ‘딜도’가 압도적이었다. 남성의 성기를 그대로 닮아 있는 그 거대하게 뭉툭하고 크고 긴 모습은 보기에 정말 별로였다. 저걸 몸 안에 집어넣는다고? 안 땡기는 데. 되게 별로일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실제로 저만한 게 들어간다고? 그리고 딜도를 보고 놀라지 않는 미국인 그녀들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다. 아니 서양인의 남성 성기가 크다고는 들었지만, 정말 저 정도도 있다고? 온갖 의문과 놀라움도 그렇지만 일단 거북함이 먼저 들었던 딜도다. 이번에 삽입형보다는 흡입형 바이브레이터를 구입한 이유도 삽입형 딜도에 대한 그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이 고운 핑크색 자태를 가진 녀석은 정말 토이스럽고 친근했다. 그 녀석을 반려가전으로 들이고는 나는 나의 몸과 세상의 진리 같은 것을 깨달은 기분이었다.


먼저는 나의 클리토리스를 정확히 들여다보고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 손과 발과 귀와 겨드랑이가 어디에 붙었는지 나는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부위들은 자주 보기도 한다. 그러나 클리토리스는 알고 있지만 제대로 내가 감각 했다는 확신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제대로 본 적도 별로 없다. 자위를 한다고 해도 그저 뭉뚱그려지게 감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새티스파이어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공기압력과 진동의 단계별로 (강도가 무려 11단계까지 있다) 그리고 신체의 어느 지점쯤에 어떤 자세로 대냐에 따라 자신만의 감각을 터득해야만 한다. 사람마다 모두 그 지점과 강도와 만족스러운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받던 성교육은 모두 개똥이고 심지어 약에도 쓸 수 없는 똥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뒤늦은 ‘어른이’(어린이+어른)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오르가즘이란 게 이런 거구나. 이전 애인들과의 연애에서 희뿌옇고 희미하게 느껴지던 풍경을 쨍쨍하고 맑은 날에 제대로 마주한 느낌이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깨달음. 남자는 정말 쉽게 사는구나. 쉽게 쾌락을 느끼며 사는구나. 이건 분노가 아니고 비아냥도 아니고 솔직한 부러움이다. 그들의 그 간결하게 도드라진 신체 부위의 간단한 사용법이 부러웠다. 왜들 그렇게 섹스를 하려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내 주변의 여성, 특히 동양인, 한국인 여성은 쾌락의 정점까지 도달하는 여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시간이 들거나 노력과 정성이나 기술을 더 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의 G스팟이라는 게 정말 있긴 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끊임없이 팽팽히 대립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여성은 클리토리스에서 대부분의 자극을 느낀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남성과의 섹스에서 클리토리스 자극을 통해 절정에 도달하는 여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선택과 의지에 따라 단시간 내에도 절정에 도달할 수 있는 남성에 대한 나의 이 부러움의 감정이 지극히 정당하게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남성의 그 편리함에 대적할만한 것이 생긴 것이다. 토이는 빠르고, 명쾌하고, 편리했다. 


그 녀석을 집에 들인 이후로 나는 주변인들에게 틈만 나면 반려가전을 홍보하고 다닌다. 결혼의 유무와도 상관없고 이성애, 동성애 유무와도 상관없이 권유하고 다닌다. 물론 나는 여전히 애인과 하는 섹스가 좋다. 섹스는 사랑을 나누는 행위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신체에 닿는 온도가 따뜻하다. 우리 집의 반려가전은 기특하고 유용하지만 나는 그 녀석을 사랑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 녀석은 대체로 차가운 상태다. 다만 누려야 할 것을 몰라서 누리지 못하는 삶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잠을 잘 자려면 침대가 좋아야 하고, 누군가는 쾌변을 위해 비대를 찬양한다. 각종 변비약과 유산균제의 광고는 TV만 틀어도 나온다. 혀의 자극을 위한 맛집탐방? 이미 과포화 상태다. 줄지어 길게 늘어서서 1-2시간을 기다리며 맛집을 가는 이들의 열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심지어 남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것을 관음하며 즐기는 시대가 아닌가. 자는 것, 배설하는 것, 먹는 것, 그리고 성적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다). 단지 기본적으로 몸에 탑재된 기능이라면 한 번쯤 제대로 누리고 이용해 보길 권하는 마음이다. 여성의 더 많은 성적 쾌락의 이야기가 남성의 그것만큼 나돌았으면 좋겠다. 더 건강하게 적극적으로 누리고 야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은밀한 건 좋지만 비밀은 아니길 바란다. 더 이상 남성 애인이 여성 애인에게 ‘자기는 자위를 해?’라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묻지 않을 때까지. 우리가 남성에게 자위하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당연한 건 없지만 또 당연해도 되는 거니까 안 묻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모든 취향의 문제가 그렇듯, 싫으면 말고. 




발행일. 2022.06.11 | 글감. 비밀입니다



발가락 (길)


발가락의 존재를 발가락이 아프니까 알았다. 글도 그런 것 같아 계속 쓰기로 했다. 라고 썼더니 이후로 정말 글방시간마다 혹독해졌다. 소개를 바꿔야 할까?


발가락이 리듬을 타 신이 난 그날도 발가락을 감각했다. 글도 그런 것 같아 계속 쓴다. 신난다. 


꾸준히 우당탕탕 좌충우돌 살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 중간에서 일부러 길을 잃는 취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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