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딘의 우연한 연결 Sep 06. 2022

[로드스꼴라 글방] 건강하고 불건전한 여자들 _ 하므

저희 연애를 할 수나 있을까요?

연애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죠?

재밌는 연애는 어떻게 어디서 하는 거예요?


충분히 건강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불건전한 하므의 글에

대답해주시겠어요?

충분히 건강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불건전했던 당신의

사랑

불 같았던

꿈 같았던

흘러갔으나

명치 끝에 걸려있는

그 이야기

젊어서 젊어서 고단한

하므를 위해.





건강하고 불건전한 여자들의 이야기


하므



이안, 안녕하신지요?

벌써 5월이네요. 이제 낮은 조금 더워졌고, 밤은 여전히 쌀쌀해요. 날마다 어떤 옷을 입어야 적당할지 촉수를 곤두세워 고민해야 하는 계절이지요. 

우리가 모였던 때가 벌써 3년 전이네요. 이안의 손짓에 한 걸음에 달려온 일곱 명의 여자들과 두어 명의 남자들.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새로운 반경을 꾸려나가던 와중이었죠. 이안과 우리는 스승과 학생 사이로 만났고, 나이가 제각각 달랐지만 별다른 호칭 없이 서로의 이름을 호명했었죠. 그런 우리는 참 아늑한 관계라 말할 수 있을 듯해요. 같은 선상에서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아늑함은 생각보다 드물게 오잖아요.

 

이안은 상수동의 작은 공간에 우리를 불러놓고는, 다시 학교를 다닐 때처럼 아늑한 울타리를 쳐보자고 제안했죠. 그러고는 그 아늑함과 안전함 속에서 함께 몸에 대해, 연애에 대해, 섹스에 대해, 자위에 대해, 야동에 대해, 성정체성에 대해, 콘돔에 대해 떠들어 보자고 했어요. 뜬금없고 광범위하지만 아무튼 우리의 성생활 수다회를 열자는 제안이었지요. 안전에 대해서도 떠들어야겠지만, 유흥에 대해서도 실컷 떠들어보자고 했죠. 은근히 반짝이는 이안의 눈동자가 재미난 일의 시작을 일러주는 신호탄 같아 저는 내심 조금 두근거렸어요. 재미에 대한 끌림도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장이 필요했던 절심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성에 관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사적인 이야기로 치부되는 바람에 공적인 자리에서는 음소거 되었으니깐요. 사석에서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일 때는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경험치가 너무 빈곤한 나머지 어느 지점에서는 세대 간의 전승과 다른 누군가의 경험치가 간절했고요. 그래서 이안의 제안에 모두가 들뜨는 마음을 안고 흔쾌히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수다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수다회가 시작되면 주로 낮은 데시벨로 이야기가 오갔지만 자주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을 기억해요. 충분히 건강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불건전한 이야기들로 채워진 수다회. 청소년의 섹스가 안전하고 깨끗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토로, 여성의 자위와 욕망이 어째서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이야기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사유, 19금 콘텐츠들과 실제로 19세 미만인 사람들이 향유하는 성 콘텐츠들의 괴리에 대한 의문, 미디어가 주입하는 에 의해 처단 당한 몸의 굴곡과 털들의 안부에 대한 이야기 등 수도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었죠. 또 어느 날은 남성 중심적 시각을 탈피한 야동을 보고 섹스를 다시 배웠다는 언니에게 모두가 신나서 링크를 공유받고, 어느 날은 삽입섹스만이 섹스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다가 모두가 비장하게 손가락 콘돔을 끼자는 다짐을 하고, 그런 와중에 틈틈이 어리석거나 즐거웠던 지난날의 연애담을 공유하며 말하다가 웃고 웃다가 분노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수다회에서 사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공적인 방식으로 아카이빙을 해보고, 우리의 경험담을 유의미한 관점으로 잇는 작업을 한 것이 여전히 저의 연애와 성생활에서 중요한 기준점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안은 수다회의 구성원들을 청소년이라는 범주로 엮어 모은 것이지만, 어쩐지 저는 여성이라는 당사자성에 더 집중하며 모임에 참여했던 것 같아요. 모임에 여자들이 대부분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여자들이 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대라 담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몹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가끔씩 끼는 두 명의 남성들도 이안의 젠더수업을 호되게 통과한 후라 더욱 안전하다고 느끼며 함께 할 수 있었어요. 남성의 몸으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일이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었지요. 가끔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지구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남자들이 훌륭한 젠더 선생님인 이안을 그렇게 호되게 통과한 후에야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곤 해요. 아무래도 그건 이안에게 너무 고된 일이라 상상한 것만으로도 조금 죄송스럽지만요. 

 

당시의 저는 겪어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은 열여덟인 채로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의 경험담을 이야기할 때면 잘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원이었지요. 3년이 지난 지금은 제가 그때 그 언니들의 나이가 되었고, 글자로만 알던 이야기들을 몸으로 통과하고 있어요.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특히 언니들이 연애를 하며 마주했던 곤란한 마음들이 저의 지금의 일상에 많이 와닿아요. 모임에 있던 언니들은 대부분이 이성애자라 이성과 연애를 했는데, 상대방이 극명하게 별로인 행동을 하는 것은 오히려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고 했어요. 그런 경우에는 헤어지면 그만이니깐요. 오히려 상대 쪽에서 호의적인 맥락으로 하는 행위들이 이상하게 언니들을 지치게 만들었기에 문제가 조금 복잡했지요. 이를테면 차를 탈 때 문을 열어주고, 추운 날 옷을 벗어주고,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행위들. 그런 행위가 매너라고 칭해지는 곳에 우리가 살고 있고, 그 안에서 매너를 충실히 행하는 이들과 만날 때 언니들은 왠지 조금 덜그럭거리는 마음이 되었더랬어요. 조금 작아지는 기분, 조금 덜 강해지는 기분, 이어서 마치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기분, 그리고 그 작고 좁은 반경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 만 같은 기분.


제가 아는 언니들은 거뜬히 혼자의 힘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할 팔의 근육과, 애정하는 이가 추워 보일 때 기꺼이 자신의 겉옷을 내어줄 커다란 마음의 근육을 가진 강한 여자들이었지요. 그리고 자신의 근육들이 할 일을 잃은 상황에서 멈춰 의아해할 줄 아는 이안의 제자들이었고요. 그녀들은 그런 종류의 의아함이 반복되면, 관계에서 힘을 써서 해내는 일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당해내는 일이 많아지면, 마치 자신들이 자기자신이 아닌 소꿉놀이 속 ‘여자애’ 역할로 ‘남자애를 만나는 기분이랬어요. 권선아, 이선민, 은지연, 성다은, 김민채, 박이은. 그 고유한 이름을 지우고 그들은 그 관계에서 어떤 한 여자애가 되어버렸다고 쓰게 말했지요. 그 누구로 대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자리에 고유한 이름 없이 발탁된 느낌이 종종 든다고요. 입체적인 여자들이 왠지 누군가의 연인이 될 때에 상대방을 여전히 애정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관계 안에서는 납작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 그 무력감이 이례적인 사례였던 게 아니라 많은 언니들이 공감했던 일이 참 써요. 그런 공동의 감각과 공감대를 통해 연애라는 행위가 얼마나 견고한 사회적 산물인지가 보여 그것 또한 새삼 놀랍네요.

 

이안, 그때에는 막연하게 받아들였던 이야기와 고민거리를 지금은 저 또한 몸으로 체감해요. 너무 강하게 우리를 정의하며 구속하는 젠더 박스가 느슨해졌으면 해요. 그 단단한 껍데기에 쌓여 잘 보이지 않던 다정한 속내들을 만나고 싶어요. ‘여자답다, ‘남자답다라는 말에 갇히지 않은 채로 귀여운 진심을 내뱉는 연인들, 그 행위가 매너라 칭해지기에 추울 때 옷을 벗어주는 마음보다는 무리하지 않는 몸과 마음으로 황제 펭귄처럼 붙어 추위를 통과하는 연인들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이곳은 참 더디게 변하네요. 여전히 너무 많은 이들이 충실히 여성이고 충실히 남성인 가운데, 그 경계를 지우면 보이는 무수한 고유성들이 휘발되네요. 입체적인 여자로서 연애를 하기 위해 입체적인 남자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참 고된 일이네요.


고백하자면 연애를 해보기 전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애는 사회적 산물인 동시에 아주 사적인 행위이자 관계이니까, 그 관계에 내재된 지겨운 사회성은 금세 잘 벗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요.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아요. 저번 연애에서는 그 애의 사적인 자아 앞에서는 쉽게 울렁이고 애정이 기울었다가도 그 애의 사회적인 자아, 어떤 견고한 남성 문화를 통과한 자아 앞에서는 자꾸 마음이 주춤이게 되었어요. 그 애를 좋아했지만 연애를 지속할 수는 없었어요. 우리가 하는 연애에는 우리 밖의 우리가, 쉽게 말하면 사회가 부여해둔 규칙들이 너무 많았어요. 이상하게 우리는 연인이 되는 순간, 마냥 사적이어지는 게 쉽지 않았요. 물론 어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체득한 사회성이 너무 단단한 탓에 일어난 문제들이지요. 그래서 쉽게 누구의 탓도 하지 못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고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상황에 놓이면, 그때 언니들이 이안에게 던졌던 질문들과 이안의 대답이 생각나요.


이안, 저희 앞으로 연애를 할 수나 있을까요? 

연애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죠?

재밌는 연애는 어떻게 어디서 하는 거예요?

 

이안은 언니들의 한숨과 탄성에 특유의 호탕 웃음을 섞어 대답했었죠. 

야 느그들이 아직 여자를 안 만나봐서 그래!

여자를 한번 만나봐. 안 만나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만나본 사람은 드물 걸? 

  

아? 

응? 

오.. 


우리의 그녀, 이안. 역시 현명한 여자라며. 역시 한 수 앞을 보는 사람은 다르다며. 

언니들이랑 사석에서 만나면 아직도 그때 얘기를 다시 해요.

그중에는 다음에는 기왕이면 여자를 만나보리라 다짐하는 언니들도, 

안타깝게도 자기는 영영 헤테로라며 절규하는 언니들도 있지요. 

제법 진지하고 무거운 고민들에 비해 이안의 대답이 너무 가벼운 게 아닌가 싶다가도, 

어쩌면 가장 명쾌한 해답이려나 싶어 납득의 웃음이 나왔지요. 

 

뭐 아무튼 이안의 말대로 여자를 만나보지 않는 이상 여전히 고민할 거리가 산더미고 해결책은 쉽사리 보이지 않네요. 그럼에도 저희는 이안이 남긴 무수한 명문장들을 옆구리에 끼고 지겨움을 토로하면서도 계속 연애를 하고, 또 기타 등등의 것들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우리가 하는 멜로 장르를 지루해하고 비웃다가도 틈틈이 자주 즐거워하면서 말이지요. 요즘은 다시 다 같이 모여 또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모두가 입체적인 존재 그대로 연애를 할 수 있을 때까지요. 그 틈에 종종 끼어 이야기를 보태는 남자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고요. 이제 다들 조금 더 컸으니 어쩌면 더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볼 수 있을지도요. 그러니 이안 얼른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이안의 입체적인 얼굴과 호탕한 조언들을 보고 듣고 싶어요. 너무 필요하다고 느껴요. 다시 예전의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과, 그 사이 새로워졌을 이야기들이 궁금해져서 이렇게 이안에게 편지를 써보아요. 혹시 이안도 이 편지에 마음이 동하신다면, 언제 한번 다 같이 맛있는 것 입에 잔뜩 물고 얼굴 보기로 해요!


그럼 이안! 이만 물러날게요. 조만간 좋은 날에 뵙길 바라며.

안녕하고 무사하고, 건강하지만 불건전한 시간 보내세요.

 


P.S. 아 맞다, 이안. 페미니즘을 공부한 이후로 봐줄 만한 야동이 드물어 어디서 찾아봐야 할지 고민이라던 석이 오빠한테 달팽이 교미 영상을 추천해주셨던 것을 옆에서 듣고 궁금해서 찾아봤었어요. 야하기로는 달팽이 교미 영상이 최고라고 하셨었죠. 음, 이안. 근데 이것만은 아직 저도 잘 모르겠네요. 석이 오빠는 고민이 해결되었을라나요? 그래도 아무튼 언제나 흥미로운 정보 감사해요. 다음에 만날 때에도 재밌는 정보들 한 보따리 가져와주세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발행일. 2022.05.04 | 글감. 좋은 x 나쁜 x 이상한 x



하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자주 그림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림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이야기가 자신이 찍은 마침표에서 얌전히 완결되는 것을 경계한다. 마침표 뒤로도 이야기가 자기만의 생을 가지고 걸어나가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타투’가 그림이 새로운 몸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걸음을 할 수 있게 하는 매체라고 정의하고, 타투이스트 활동을 준비 중이다.


종종 음악으로도 이야기한다.

앰비언트부터 하우스, 뉴에이지,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지며 디제잉을 하고 있다. 그림에서는 자신이 뱉은 이야기가 타자를 통해 멀리로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작을 한다면, 음악에서는 타자가 흘려보낸 음악을 정성스레 줍고 엮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한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이야기도 한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지속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연결들이 더 욕심껏 확장되고,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창작지대’라는 팀에서 창작하고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창작지대는 특히 청년, 청소년 작업자들의 예술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팀이다.


이렇게 이것저것의 일들을 하며 미끄러지고 넘나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껏 한 일들 보다는 앞으로 할 일들이 더 많은 작업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