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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딘의 우연한 연결 Jul 17. 2022

[어딘글방] 죽지 않는 유성 _ 흘

화성이주에 선정되셨습니다. 캐리어 두 개 분량의 짐을 챙겨서(가방 하나당 20킬로그램 이상을 넘으면 안 됩니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열시꽃으로 와주십시오. 1인의 동행이 가능합니다.

이 글감이 나간 다음 주, 나는 흘의 글을 글방 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읽었다. 눈가가 뜨듯해졌다. 흘은 정말 떠나는구나 이 행성을. 돌아보면 눈부시게 환한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이토록 익숙하고 명랑하고 윤택한 이 행성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구나. 버스 창문 너머의 세상이 불현듯 애틋했다.


'화성이주에 선정되셨습니다. 캐리어 두 개 분량의 짐을 챙겨서(가방 하나당 20킬로그램 이상을 넘으면 안 됩니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열시꽃으로 와주십시오. 1인의 동행이 가능합니다.'

자, 당신이라면 그 가방 안에 무엇을 담을 건가요?





죽지 않는 유성




화성 이주 시스템은 엉터리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 전 통보라니, 역시 너무 급박하다. 아님 나사의 일처리는 상식 이상으로 빠르고 정확한 걸까. 모레면 떠난다. 나의 결정은 분명했다. 망설이지 않았다. 지구에 못 박히지 않을 수 있는 기회라니, 무조건 간다. 물론 지구는 사랑스러운 행성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바깥을 경험할 수 있는 건 누가 뭐래도 일종의 행운이 아닌가. 그 행운 또한 지구가 준 것이다. 나는 몇 번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명쾌해지기 시작했다. 만일 화성에 갔는데 아, 나는 지구가 좋다. 지구로 가고싶다, 그럼 다시 지구로 입행하면 되지. 우여곡절은 많겠지만 갔는데 다시 못 올 이유도 없다. 어쩌면 북한 가는 것보다 쉬울 지도 몰라.

화성은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곳이다. 공부할 수도 없는 곳이다. 그곳은 완전히 새로운 땅이다. 나는 간만에 끝까지 기뻤다. 누구의 흔적도, 어떤 전유도 없는 곳. 생각만 해도 마음이 투명해진다.


데려가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죽기 전에 꼭 우주를 가보고 싶다는 지원자가 있다면, 가장 간절하면서 건강한 사람을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주 단위의 이주에 강한 공포심만을 느끼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예의상 혹은 그냥, 가장 근거리의 사람들에게부터 물었다. 나랑 화성 갈래? 친구는 치를 떨며 단번에 잘라 말했다. '그거 죽으러 가는 거야, 싫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아닌데, 살러 가는건데. 아무튼 싫다는 사람과는 함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동반의 의미에는 양 쪽의 의사가 필요하니까, 데려가고 싶다고 해서 데려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의사가 중요한 것이니까. 누구든 데려가고픈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든 아마 뜻대로 안 될 것이다.

나에게도 당장 죽고 못 사는 애인이 있다면 그를 반드시 데려가려 했을 테지만 사랑이 다는 또 아니다. 내가 엄마에게 화성에 같이 가겠냐 물어서 나를 정말 사랑하는 엄마가 내가 화성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일단 죽을 각오로 말릴 것이다. 우리 엄마는 늘 내가 뭘 하겠다거나, 어딜 가겠다거나 그러면 죽을 각오로 뛰어들어 말렸으니까. 그게 아니면 그 다음엔 죽을 각오로 따라오겠다고 할 거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오히려 덜컥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나를 너무 사랑하고,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날 따라 오겠다고 하는 순간 우주선 타기가 너무 무서워진다. 왜 그럴까.

그래서 앵무새를 데려가기로 했다. 뭐, 사람은 나를 포함한 몇 백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이 좀 있었으면 했다. 화성이 실제로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과 로봇만 뚝 떨어져 있는 풍경은 왠지 속이 쓰리니까. 원래는 고양이를 데려가고 싶었다. 우주 가는 길을 고양이와 함께라니, 그 자체로 극락일 것 같아서였다. 동반자를 데려오라는 데는 심리적 안정에 대한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곳이고, 또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고. 둘이 함께 떠난다면, 더욱 더 소중해지겠지. 그런 동반자가 죽으면 얼마나 슬플까. 하지만 고양이의 수명은 십 년 남짓이다.. 화성에 도착도 전, 내 곁을 떠날까봐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거의 평생을 우주선에 갇혀 있다가 죽는다면 그 고양이의 인생도 너무 간단해지고 기구해져버린다. 그래서 다음으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로 거북이를 떠올렸다. 음, 일단 거북이는 이동이 힘들고, 가뜩이나 화성엔 지구만큼 물이 풍부하진 않을 터인데 거주 환경도 녹록치 않을 것이다. 내가 들고 다니기에도 너무 무겁고 촉감도 심하게 생소해서 걱정이었다. 그래서 수명이 긴 동물들을 더 찾아봤는데 앵무새는 평균적으로, 빨리 죽는 인간 정도로 오래 산다더라. 어떤 종들은 인간보다 오래 살기도 한다. 얘랑은 스몰토크도 가능하다. 적격이었다. 가끔 여정이 활기차질 것이다.



22.05.04

화성이 지구와 매우 유사해진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화성에 지구를 재현하려는 노력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도 의문입니다. 내가 만약 화성에 간다면 가지고 가고 싶다기보단, 많은 것들을 버리고 가고 싶어요.

화성에 우리보다 먼저 발을 딛고, 뿌리를 내린 건 바로 로봇입니다. 물론 그것들은 인간이 쏘아올린 것들이지만요. 화성에서의 생활을 상상했을 때 도무지 무엇을 가져가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많아서라기보단, 참 없어서요. 고작 20년 남짓이긴 하지만 내가 지구에서 보내오던 일상이 그곳에는 당연히 전무하겠지요. 어쩌면 기존의 방식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생존에 더 바람직한 태도일 겁니다. 우리의 생활 개념은 생존 개념에 압도될 테니까요. 모든 개념과 사물을 새로 건설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하게 될까요? 화성으로 이주한 나는 나의 두 번째 행성, 두 번째 세계를 어떻게 재인식해야 할까요. 우주를 상대로 마음 먹는 건 무모하고, 어떤 계획도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나면 그 다음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가져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 다음으로 또 고민이 생깁니다. 이걸 가져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나는 화성의 첫 세대이니까 내가 가져간 것은 화성에 남게 됩니다. 아주 작은 사물이 어디까지 퍼지고, 언제까지 전유되고, 어떤 모습으로 다시 발견될지 생각하면 우주를 상대하는 것처럼 머리가 무거워집니다. 화성의 첫 세대는 적어도 화성의 첫 지도를 펴낼 것입니다. 나의 손과 발에 또 다른 세계의 걸음마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지구의 것을 전승해야 할는지, 말아야 할는지 고민이 됩니다.

가져갈까 말까 하는 사물에는 거울과 시계가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꼭 필요하고 그만큼 역사가 깊죠. 그래서 본능적으로 나는 이 두 가지 사물을 챙기기를 고려했다가 다시 본능적으로 멈춥니다.' 아, 화성에는 시계를 두지 않으면 좋겠다. 거울도 마찬가지다.' 하고요. 이 두 존재는 양면성이 강해서 나를 아주 편리하게 하는 동시에 가장 피곤하게 만듭니다. 이 두 존재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만은 한층 더 자유롭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론은,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한 명쯤 가져올 것 같아요. 그 사실을 생각하니 별로 반갑지 않은 걸 보면 애초에 가져가기 싫었나 봐요. 그저 지금껏 의존하며 살았던 것들의 부재에 불안감을 느꼈나 봐요. 아무도 안 가져왔으면 좋겠네요.


22.05.06

절대 가져가지 않을 것은, 무엇을 가져가지? 하고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들입니다. 다 내가 사용하던 것들입니다. 보기만 해도 슬퍼질 것 같네요. 슬퍼지면 우울해지고 우울해지면 회상하고 회상하면 후회하겠죠.


22.05.09

나는 먼저, 일기장을 챙겨갈 거에요. 이거 말고, 새걸로. 기록은 중요하니까요. 남겨야죠. 그런데 종이와 펜은 빨리 닳으니까 과감하게 한 권만 챙기고 핸드포크 타투 툴을 가져갈 겁니다. 일기장을 다 쓰고 나면 어디든 새기게요. 그 다음, 턴테이블을 가져갈 겁니다. 음악 듣고 싶을 것 같아요. 나머지 무게는 lp판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구에서 쓰여진 다양한 고전들로 채울 겁니다. 나조차도 그걸 들여다볼까 싶긴 하지만, 그곳에 갖다 놓으면 언젠가는 지구에서 온 그 글자들로부터 화성 고유의 무수한 발견이 일어나겠죠.


화성에도 인간의 눈물과, 인간의 미소와, 인간의 화가 드리워지겠죠. 그 자잘한 역사가 불겠죠. 후세들은 자신을 그리고 그 전의 우리를 여전히 지구인이라고 부를까요, 아님 화성인이라고 부르게 될까요. 화성에도 눈이 올까요. 안 온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지구를 생각하며, '지구 참 괜찮은 곳이지, 좋았지.' 라고 말하며 문득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곳엔 고양이와 저녁의 거리가 없어도, 또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겠죠. 사계의 한국에서 북극의 오로라와 적도의 오아시스가 부러운 것처럼요.


.


짐을 다 쌌다. 별 탈 없이 준비가 끝났다. 우주선을 타 본 적도, 본 적도 없다. 화성에 가 본 적도, 간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다. 걱정도 없다. 캐리어에 든 것들이 모조리 다 우주먼지가 될 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그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그 긴 여정을 앞두고도, 나의 몸은 침대에 해맑게 누워있다. 어쩌면 걱정은 미래가 불확실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확실한 걸 피하고 싶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아마 내일 모레면, 그저 약속한 짧은 여행을 가듯 오직 캐리어 하나만 들고 집을 나설 것이다. 태어나서 가장 정신이 명료하다. 우주로 나가기에 최적의 상태이다.


불을 끄고 스탠드만 켜고 반쯤 누워서 곤히 자고 있는 새장 속 앵무새를 본다. 앵무새야. 너, 좀 있으면 나랑 화성 가. 다들 사람을 데려올텐데 널 데려가는 게 맞을까? 너 괜찮겠어? 사람을 데려오라는데 난 왜 너를 데려가려 할까. 거긴 사랑해서 함께 오는 사람들도 많겠지? 사랑. 복잡하고 피곤하고 수명이 짧은 사랑. 결국 상해버려. 아님, 감각은 금방 익숙해져버려서 입맛을 버려. 그걸 믿고 뭔가를 실행해버리는 건 생각할수록 오산이야. 그래도 마지막으로 생각해보자, 정말 데려가고 싶은 사람이 없는지. 정말로 우주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을지.


그런데, 한숨 한 번으로 별 기대도 없던 마지막 생각을 마무리 지으려는 그 때 또 휘익 하는 소리가 났다. 8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떨어지던 그 유성이 찾아온 것이다. 화성에 가기 이틀 전 밤에도 예외없이 예고 없이. 이리도 예외가 없다니, 진짜 자려고 했는데.

그 애 생각이다. 8년 전 그 여름에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던 그 애, 과학시간의 그 애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화성에 간 것처럼 한참 연락이 닿지 않던 그 애. 그 애라면 화성에 가고 싶어하지 않을까? 나는 살려고, 화성에 가려고 했는데 그 애 생각이 나니까 갑자기 내 수명이 단 이틀로 줄어든 것처럼 초조해졌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눈 앞이 번쩍, 평화는 깨졌다. 손아귀에 땀이 배이고 있었다. 무덤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아주 살아있는 듯한. 급히 핸드폰을 뒤적이며 우주선에 사람들이 짝지어서,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아주 어색한 채로, 모두 자신의 첫사랑과 함께 타고 있는 상상을 한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야밤에 벌떡 일어나 제 옆의 파트너를 데려가기로 한 것이라면, 기이하고 아름다울 그 광경을 상상한다. 우주선의 내부는 묘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첫사랑은 인간이 직접 하는 사랑이라기보단, 만물에게 벌어지고 마는 우주의 한 현상이 아닐까. 예외 없고, 예고 없고, 언제나 불가항력.

오래된 프로필 사진을 마주한다. 8년 전 여름 두드려야만 했던 고요한 교장실 문의 무늬가 생생히 그려지는 떨림이다. 그래. 첫사랑과 함께라면 고된 여정 속 공기가 신선해질테니까, 난 너에게 함께 가자고 해야겠다. 떨림 속에 시계는 자정의 문턱을 넘는다. 이제 열 두시가 넘었으니, 어차피 내일이면 반영구적으로 떠날 몸이다. 내가 아니면 그 어느 누가 같이 우주에 가자고 청할 수 있을까. 사랑을 향한 비관들은 금세 묻히고 최고의 고백만이 밀려온다. 신비하고 청정한 첫사랑의 성역에 다신 오늘 같은 명쾌함은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온 몸이 붕 뜬다. 광활한 메세지창의 텅 빈 여백에 나는 쏘아올린다. ‘나랑 화성 갈래?’


넌 아마 알고 있겠지, 우리가 느끼는 과거,현재,미래는 다 허상이래. '지금, 여기'라는 건 실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아인슈타인이 본대로 시간은 휘어지기에 우리가 지금 여기 지구에서 느끼는 현재와 화성에서의 현재의 길이는 달라.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 10분의 1초가 화성에서는 15분 정도. 그래서 화성에는 우리의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는 15분이 존재하는거야. 어디에도 없는 중간지대, 너도 그 시간을 헤아려 본 적 있니. 너와 그 중간지대로 가고 싶어. 아주 어색한 우주선에서의 그 공기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 그렇게 너와 오랜 시간 나란히 앉아 시간이 늘어져 있는 행성으로 가고 싶어.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았어, 다행이야. 내가 기뻤던 진짜 이유는 연장될 현재에 대한 예감 때문이었나봐.


.


꿈에서 너와 나는 탑승 수속을 밟고 있어. 누군가 다가와 물었어. "두 분,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발행일. 2022.05.11 | 글감. 화성이주에 선정되셨습니다. 30킬로그램의 짐을 꾸려 다음 주 수요일 2시까지 이 장소로 와 주십시오. 한 명의 동행이 가능합니다’


흘 (박지효)


최대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을 멀리 하기 위해 열심히 궁리하는 사람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이상 좋아하는 사람과 비를 흠뻑 맞는 일, 일어나자마자 피아노 앞에 앉아 오래된 천재의 화음들을 곱씹는 일을 사랑합니다. 감각하고 창작하는 행위로 인해, 시간이 나를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바로 인지합니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들이 잔뜩 쌓여있다는 사실에 자주 설레곤 합니다.


현재 정의된 것과, 아직 정의되지 못한 것들의 순환에 관심이 많습니다. 완전함이란 인류가 대대로 타성에 젖어 지목해온 것이지 실존하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완전하다고 여긴 것이 온전해지는 순간을 제공하는 사람이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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