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그 뒷 이야기

지난 7년간 친구였던 우리가 연인이 될 수 있을까?

by 노르망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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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그 친구를 만나고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정말 많아졌었다.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것이 맞나? 아니 이게 옳은가? 이게 가능한가? 친구에서 연인이 된다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나의 생각도 중요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너의 생각도 중요하겠지. 연애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혹시 너도 나처럼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아닐까,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너에게 계속 연락했다.


✔️ 화요일. 우리 교회는 매주 화요일마다 예배를 드린다. 그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가 집에서 할 일이 있다고 안된다고 했다.

✔️ 수요일. 나는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이 끝나고 보자고 했는데, 약속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다. 다만 금요일에 대학교 졸업생 기도 모임이 있어서 여기에 간다고 했는데 (그때 약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같이 가자고 하진 않았다.) 자기 약속은 점심이라면서 저녁엔 된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았다.

✔️ 목요일. 갑자기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금요일에 못 간다고 했다. 선배님과 급한 약속이 생겨서 정말 중요한 약속이라 뺄 수가 없다고


그래, 여기까지 인가 보다.

우리는 친구가 딱 맞나 보다. 애매한 사이가 될 바엔 편한 친구가 낫지. 내가 지금 뭘 고민하고 있는 건지. 쟤는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 발 동동 구르면서. 언젠가 만나게 되면 내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전해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휴 다행이다. 쟤가 먼저 안된다고 해줘서.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항상 나에게 잘해줬지만 -딱 거기까지- 항상 선을 그었고, 둘과의 만남도 어느 순간 없었고, 어쩌다 둘이 보게 되면 항상 다른 친구를 부르곤 했다. (월요일도 마찬가지) 그래.. 생각해 보니까 네가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였구나, 휴 다행이다 하마터면 고백이라도 할 뻔했네. 생각했다. 어색해지는 건 정말 죽어도 싫었고 그게 동기들에게 소문이라도 나면.. 나는 정말 너무 웃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금요일이 되었다. 금요일은 전 세계 연인들이 만나는, 바로 발렌타인데이였다. 그래서 그 날 만나는 게 유난히 설레고 그랬었는데 네가 안된다고 했으니까, 너는 또 선을 긋는구나. 또다시 이런 생각들을 하며 운동에 다녀왔다. 원래는 운동을 한 후에 유산소를 하고 씻고 집에 오는데 그날따라 운동을 빨리 다녀오고 싶어서 샤워-유산소-피티라는 전례 없는 행사를 기획하고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졸업생 모임은 저녁 7시, 현재 시각은 2시였다. 남은 시간 동안 뭐 할지 잠깐 고민했는데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나 지금 점심 약속 끝나고 저녁 약속 때까지 시간 남았는데 뭐 할까?
내가 갈까?
아니야 나 시간 별로 없어서 안될 것 같아
오케이

이 정도 되니까 나 자신이 좀 불쌍하고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휴 친구라면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그리고는 애써 해명하기 위해서 이따 졸업생 모임이 용인이라 어차피 서울을 들러야 해서 말해봤어~ 정도의 해명을 간단히 하고 핸드폰을 보지 않고 다른 일을 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정말로..


한 30분쯤 지났을까, 확인할 게 있어서 폰을 보는데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와있었다. 나는 정말 자존심도 없는 건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네가 지금 오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채 1시간 30분도 되지 않을 텐데 괜찮냐고,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바로 응. 갈게. 조금만 기다려라고 답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화장을 했다. 방금 전까지 한심하다며 나를 비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그 친구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너무 신나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때마침 들어온 엄마가 너 유럽 여행 갈 때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아 맞다 유럽!!! 스위스에서 사 온 초콜릿 중에서 아까워서 딱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는데 엄마한테 친구 준다고 그걸 챙겨서 나왔다. 오늘은 여자가 마음먹고 플러팅 해도 합법인 날이잖아? 하면서 초콜릿을 챙겨갔다.


우린 한강에서 만나기로 했고, 지하철 역 앞에 너는 나와있었다. 나는 너를 만나자마자 너에게 초콜릿을 줬고 너는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나는 그냥 유럽 여행 갔을 때 산 거야~ 그래도 발렌타인데이인데 너도 초콜릿 하나쯤은 받아야지~ 하며 엄청난 친구 연기를 선보였다. 그 친구는 오늘 초콜릿 처음 받아보네~ 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내가 너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걸까, 나는 그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둘이 만나니까 그 마음이 훨씬 더 명확해졌다. 우리는 한강에서 가족용 3인 자전거를 탔다. 2월의 한강에서 자전거라니, 너무 추웠다. 너무 추워서 달리면서 눈물이 계속 났다. 그래도 좋다고 타고 다녔다... 1시간 30분 만남에서 30분이 남았다. 정말 추웠지만.. 벤치에 앉아서 한강이나 볼까? 하고 벤치에 앉았다. 정말 추워서 사람도 없었다.


서로 알고 지내던 지인들 근황 얘기를 하고 있던 참에 걔가 갑자기 너 손이 왜 이렇게 빨개? 핫팩이라도 사 올걸. 하길래 나는 아니야 괜찮아 나 그런 거 안 써. 하면서 이 추위가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다. 그런데 걔가 대뜸 주먹을 내밀면서 이거라도 잡을래?라고 했다. 순간 좀 당황하긴 했지만 손을 잡아준다는 것도 아니고 자기 주먹을 잡으라고...? 이건 플러팅은 아닌 것 같기도 하네.. 하면서 그 주먹을 잡고 그게 마이크 마냥 나는 쉬지 않고 얘기를 했다. 뭔가 분위기가 좀 묘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너무 떨렸지만 그 떨림이 너에게 전해지는 것이 싫어서 말을 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걔는 내 얼굴을 보더니 너 살이 빠진 것 같다? 하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우리 월요일에 봤는데? 하니까 그러니까 근데 오늘따라 왜 달라 보이지 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물론 예쁘다는 말도 아니었고 그냥 친구사이에 할 수 있는... 있나..? 모르겠다 이쯤 되니까 나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얘가 지금 나보고 예쁘다는 말을 하는 건가? 아 모르겠다. 하면서 그냥 내 얘기를 이어나갔다. 걔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내 얘기를 멈출 수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걔 주먹을 잡고 있었는데, 걔가 내 손을 제대로 잡았다. 그리고 추우니까~ 하면서 그 손을 잡고 이제 갈까? 하면서 역으로 걸어갔다.


아.. 역으로 걸어가면서는 나는 정말 머릿속이 새하애져서 더 이상 말도 못 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누군가 때문에 당황해 본 적이 있었던가? 얘는 원래 여자들한테 이렇게 대하나? 여태까지 내가 본 이미지는 절대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이런 면이 있었던 건가? 아님 얘가 진짜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 내가 얘를 좋아해도 되는 건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내가 손을 잡고 있다가 그 손을 놓고 (가방이 있어서 불편했다.) 걔는 그냥 추워서 잡은 거야.라고 하길래 내가 먼저 걔 손을 잡고 이번에는 그냥 깍지까지 껴버렸다. 역에서 한 30m 정도의 거리였을까, 우리는 깍지를 끼고 걷고 있었다. 그 순간은 정말 잊을 수가 없었다. 친구였던 우리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언제부터 내가 얘를 이렇게 좋아하게 된 건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잡았던 손을 빼고 인사를 하고 지하철 역 아래 계단으로 쏜살같이 내려가서, 다 내려간 후에 올려다봤는데 걔는 가고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 이후, 나는 온 진을 다 빼버린 기분이었다. 뭔가 이게 우리의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걔가 나한테 관심은 없으면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정말 괘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조심히 가라는 카톡을 남기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용인으로 갔다.



용인에서의 기도 모임은 내 삶의 터닝 포인트였다. 나는 정말 도전받았고 매일 새벽예배+기도 2시간을 결단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일간 연속으로 새벽 예배를 갔다 왔다. 그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그리고 그 기도 시간에 내 안의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그런 말씀을 받았다.


우리 엄마아빠는 이혼을 했고, 내가 성인이 된 이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나에게 큰 상처였다. 우리 가족은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었고 아빠는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그래서 항상 내 배우자 기도 1순위는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 부부간의 사이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나의 결핍을 채워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는 그 말 하나 때문에 난 그 친구를 연인이나 배우자 상대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가 가진 장점이나 좋은 면모를 최대한 안 보려고 노력했고 그 친구에게 좋은 사람을 늘 소개해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게 뭔가. 나는 그 친구를 너무나도, 몹시, 좋아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 마음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하지도 못할 만큼. 그래서 나는 기도를 했다. 이 마음을 정리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난 정말로 그 친구와의 연락을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달랐다.


이제 너의 한계를 뛰어넘어라.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그 친구를 바라봐라.

사실 그 친구를 편견 없이 바라본다는 건 - 어쩌면 나를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여전히 나를 편견 속에 가두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뛰어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하지만 뛰어넘는다는 것이 결국 그 친구와의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내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은 이게 뭔 말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정말 그랬다. 그래서 이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 이후로 그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연락을 피하는 것 따위의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먼저 보자는 연락은 할 수 없었다. 나는 할 만큼 했으니까, 걔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우리 관계가 완전히 망가지게 될 테니까. 그것보다는 그냥 이 감정을 나 혼자 간직하는 것이 훨씬 나았으니까.


✔️ 금요일 - 기도모임을 다녀오고 나서 친구 집에서 잠을 청했는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 친구와 밤새 연락을 주고받았다.

✔️ 토요일 - 나는 대학로에서 친구와 뮤지컬을 봤고, 그 친구는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선생님으로 섬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뜸 나한테 월요일 뭐 하냐고 물어보면서 만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조금 놀랐다. 금요일 밤까지도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낮이었다. 친구로서 만나자는 건가? 얘도 나한테 관심이 없지는 않은 건가? 내가 얘를 계속 좋아해도 되나? 처음으로 먼저 만나자고, 둘이 만나자고 했으니까 좋았다. 그래서 내가 너 있는 데로 가겠다고, 거기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뭐 하지 하면서 영화 볼까? 하다가 카페에 가서 멜로무비 볼래? (넷플릭스)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와 이건 그냥 썸인데,, 얘가 이건 알고 얘기하는 건가? 그냥 친구로서 이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를 갖고 노는 건 아니려나. 별 생각을 했지만 일단 오케이 했다. 좋아하는데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정말 맞는 말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연히 서로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정말 오랜 시간 친구였고, 나에게는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때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철저하게 선을 지켰고 꼭 필요한 연락이 아니면 연락도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어쩌다 1년에 한두 번 둘이 만날 기회가 있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다. 대학 때는 거의 일주일에 2-3번은 만났는데, 그때도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월요일부터 새벽예배를 가겠다고 다짐했고 평소에 자던 버릇이 있어서 1시 반까지 계속 잠을 청하지 못하다가 잠이 들었고 긴장한 탓인지 4시 반에 기상을 했다. 3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새벽에 기도를 하는데 나의 이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세상적인 가치들을 내려놓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3가지를 두고 기도했다.


1. 갑자기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나를 두고 오랫동안 좋아했을 것, 나를 위해 기도해 왔을 것
2.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있을 것
3. 선교,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


그래 연애까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 친구는 항상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 (지난 7년 동안)

- 나는 연애를 왜 하는지 잘 모르겠어.

- 결혼? 한 사람과 평생 사는 것이 가능한가?

-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 나는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 친구는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고, 충분히 연애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유들로 연애를 하지 않았다. 내가 그 친구가 연애한 걸 딱 두 번봤는데 그 두 번 다 얼마 가지 않아서 헤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하지만, 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만약 그 친구가 정말 여전히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마음 아프더라도 그 친구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성격상 조금이라도 마음이 안 드는 구석이 있으면 역시 아니구나 하면서 말하는 걸 포기할 것 같아서 그 친구에게 줄 편지를 썼다. 헤어질 때쯤 줘야겠다. 이 편지가 정말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 하면서 편지를 써 내려갔다.


OO에게

OO아 안녕, 너한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네.

스무 살 새내기 시절 우리가 처음 만났지. 사실 처음 만난 날은 기억이 안 나.ㅎ 하지만 내가 너를 처음으로 인지한 날은 뚜렷하게 기억이 나. 너를 잘 알지 못했을 때, 나의 룸메이트였던 OO 언니가 나한테 네가 괜찮다면서 너를 한 번 만나보라고 했었어. 그 이후로 너를 볼 때마다 종종 그 생각을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우리는 그저 친구가 되어버렸지. 참 좋았어. 방학 때도 종종 보고 했지만 너 군대 가고 나서 한 동안 뜸했지. 나도 학교 다니느라, 연애하랴, 바빴던 것 같아.

너 복학하고 나서 같은 교회 다니면서 참 많이도 붙어 다녔지. 자주 만나고 공부도 같이 하고 시간도 많이 보냈지. 그래도 너랑 나는 친구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얼마 전 오랜만에 네가 보자는 연락을 받았는데, 네가 OO랑 같이 보자는 말에 그게 뭐라고 퍽 서운하더라. 그 감정이 난 되게 생소했어. 그리고 얼떨결에 너랑 나랑 둘이 영화를 보게 됐지.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어. 신이 나서 다음 편도 보자고 했지. 근데 그다음 편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어.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좋았을까?"

친구니까, 편한 사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네가 그렇게 보고 싶더라. 다음날에도, 다다음날에도, 나는 너한테 계속 보자고 했지. 너는 안된다고 했지. 나는 계속 혼란스러웠어. 그리고 금요일 너와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어쩌면 이 감정이 친구가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OO아 우리는 7년 동안 친구였잖아.
네가 기억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친구를 좋아할 수 있냐는 질문에 완강한 반대파였어. 여태까지 그렇게 생각했고. 그리고 나는.. 네가 연애나 결혼에 늘 회의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선을 그었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이 정말 달라졌어. 예전처럼 너를 못 보겠어 OO아. 너는 나를 정말 친구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보기를 원할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 많이 헷갈리고 네가 많이 신경 쓰여.

만약 너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다면, 나에게 이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줘.
혹시 너도 나와 같다면 너의 생각을 말해줘.. 기다릴게
기다릴게


나는 편지를 쓰는 걸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지난 연애 동안 편지를 쓴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전남자친구들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다. 그리고 편지로 고백? 정말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정말 내가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친구를 만나러 갔다. 사실 조금 늦어서 빨리 가려고 지하철을 4번이나 타고 엄청 뛰어서 갔다. 생각해 보니 3시간을 잤다.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났는데 정말 피곤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런데 어쩌나.. 그 친구를 만나자마자 내가 정치얘기를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툭 나왔다.. 우린 한참 토론을 하다가 어느 정도의 선에 다다랐을 때.. 서로 합의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서 멜로무비를 보기로 했다. 원래는 서로를 보면서 앉아있다가 옆에 앉을 수 있는 자리로 옮겼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가 또 손을 잡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의 어깨에 기대었다.


아- 속으로 정말 생각이 많았다. 마냥 그게 좋긴 했지만 여전히 속으로 생각이 많았다. 그 친구는 나를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려던 찰나, 멜로무비를 10분 정도 봤을까? 갑자기 걔가 드라마를 멈추고 이어폰을 빼더니 얘기 좀 하자. 나 지금 얘기 좀 해야겠어. 너랑 나에 대해서. 라고 했다. 때가 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그래 얘기하자. 고 답했다. 결론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제대로 얘기는 해야지. 이렇게 어물쩍 넘길 건 아니지. 그리고 그 친구는 얘기를 시작했다.



OO아, 나는 너를 정말 정말 좋아해.

이 감정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야. 정말 오래됐어.
나는 너를 21살 때부터 좋아했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너를 좋아해 왔어.

하지만 너랑 나는 절대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랑 둘이 만나지도 않으려고 했고 너랑 둘이 만날 기회가 있으면 항상 친구들을 불렀어.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연애를 했었지.
연애를 하고 헤어질 때마다 그 생각을 했어.
내가 얘를 OO만큼 좋아했으면, 이 연애의 끝이 달랐을까?
내 마음에는 항상 네가 있었어.

우리가 잘 못보다가 다시 만나게 되면 나는 너무 좋았어.
너가 졸업하고 우리가 한동안 못봤잖아.
그리고 월요일에 다시 만났을때 다시 나는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속으로 기도했어.
"하나님 저에게 OO를 허락해주시면 안되나요?"

지난 금요일 우리가 손을 잡았을 때 나는 정말 너무 행복했어.
사실 나는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은 정말 그래.
정말 가볍게 말하는 게 아니야.

나는 너랑.. 하나님 사역을 하면서 사는 게 내 꿈이야.
그래서 나는 정식으로 너에게 얘기하고 싶어. 나랑 만날래?


이걸 어쩌나. 나는 정말 놀랐다. 나의 기도제목들이 다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런 감정을 내가 알아차린 건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나보다 훨씬 이전부터 나를 좋아해 오고 있었다니, 사실 지금도 완전히 믿기지는 않는다. 나는 뭐라고 답해야 될지를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우린 너무 오랫동안 친구였지?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가 써온 편지를 그에게 건넸다.


그는 내 편지를 받아 들고 손이 떨린다고 했다. 정말 손을 떨고 있었다. 내가 붙인 스티커를 찢고 싶지 않다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신중하고 침착하게 읽어나갔다. 그리고 나에게 자신과 만나주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나의 짝사랑 이야기다. 그는 지금 친구들과 일본에 갔다. 그 날 이후로 만난 적이 없고 그는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다음주에 개강을 하면 다시 우린 떨어져야 하겠지만- 얘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다정하고 그가 나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게 보인다. 그동안 이 감정을 어떻게 숨겨온 건지 정말 믿기지가 않을 만큼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표현해 준다. 나는 왜 이 감정을 깨닫지 못했을까?


어쩌면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우리가 만난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숱하게 연애를 해왔지만 줄곧 내 마음에 차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헤어짐을 반복했다. 좋은 사람이니까, 나를 많이 좋아해 주니까 따위의 말들은 연애 초반에나 통하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면 어김없이 헤어졌다. 감당할 자신도 없고 그 사람의 약점을 품어주고 싶지가 않았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와 연애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시간 친구로서 우리가 서로를 오래 봐왔기는 했지만 연인으로서는 다르니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의 당혹감도 몇 번 마주치긴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불안함이 없는 연애는 처음이다. 정말로 그가 나를 좋아해 줘서, 여태까지 나를 기다려줘서 정말로 정말로 고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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