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돈 많은 사람 만나

헤어져. 더 정들기 전에 빨리 헤어져

by 노르망듀

오랜만에 아빠를 만났다.

우리 아빠는 .. 뭐랄까 참 ... 가족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 유형이다.

돈에 사무친 사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하는 사람, 이 세상에 돈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렇게 내가 아빠를 묘사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충격적인 문자를 받았다.

나에게 제법 친하게 지내던 대학교 공동체가 있었고, 그중 가까운 대학 후배가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크게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심정지가 왔는데, 약물로 다시 뛰게 해 놓고 중환자실에 있다고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새벽에 기도를 하러 간지 3주 정도 지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난 참이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교회에 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로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주님 왜 소중한 영혼을 데려가시나요. 그것도 이렇게나 갑자기. 남은 가족들은 어떡합니까..

인간의 목숨은 정말 덧없다. 한 없이 연약하고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상것이 전부인 양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산다. 마치 죽을 날을 받아놓은 것처럼.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을 무렵, 그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말로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


한 동안 우울감이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이번 주만 아는 지인들로부터 받은 비보가 벌써 세 번째였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설날에도 아프다는 핑계로 만나지 않았으니까 추석 이후로 처음이다.


아빠는 요새 일이 정말 안된다며 계엄 선포 이후로 일이 하나도 없었다며, 마이너스 통장이 더 이상 유지가 안된다며 한탄했다. 그럼에도 오늘 번 20만 원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우리 아버지는 사업을 한다. 예전에 한 때 잘 나가던 사업가였지만 요즘에는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업가이다. 주로 운전을 하고, 영업을 하고, 그렇게 한 번 할 때마다 20만 원을 받는다. 어떨 때는 하루에 두 세건, 어떨 때는 아무 일도 오지 않는다.


경기가 나쁘다 나쁘다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로 안 좋다면서, 요새 취업 준비는 잘 되어가냐며 물었고 나는 최근에 봤던 면접에 나 빼고 다 대기업 경력이 있었고 나는 그저 들러리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했다.


내 전남자친구의 아버지는 유명한 대학교 의과 교수님이셨고, 그 집은 퍽 잘살았다. 그전에 만났던 사람은 집은 잘 살지는 않았지만 그의 형은 의사였고 그는 유명한 대학의 박사에 삼성에서 일을 하려던 참에 헤어졌다. 그때는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을 보여달라고 해서 사진을 보여줬더니 귀엽네, 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나는 대학교 동기라고 대학원생이라고 했다. 괜찮은 사람이냐고 물어서 괜찮냐는 기준이 뭐냐고 물었더니 돈이라고 한다.


돈은 없어. 빚내서 대학원 다녀. 아버지는 용달하셔. 내가 한 말은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헤어지라고 했다. 당장 헤어져, 더 정들어서 못 헤어지기 전에 빨리 헤어져. 결국은 다 돈이야. 아빠가 돈이 100억 있었으면 우리 이혼 안 했을걸? 당장 헤어져. 현실이야. 현실을 살아. 언니를 봐. 영악하게 살아야 해.


엄마와도 한바탕 했었기에 타격이 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빠의 100억 얘기는 좀 충격이었다.

엄마는 네가 그 친구와 결혼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탸에서 결혼해야 하는데, 그러면 언니랑도 많이 비교가 될 텐데, 넌 항상 언니보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는데 서울에서 집을 가지고 있는 언니는 훨씬 여유롭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가지면서 살 텐데, 그리고 둘만 살면 또 모르는데 아기라도 있으면 언니랑 더 비교될 텐데, 애한테 못해주는 건 정말 사무칠 텐데. 그 집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노후 대비는 되어 있으시대? (그 친구는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엄마와 외가댁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신용불량자 상태이신 거야? 엄마한테 있는 빚은 없으시대? 나중에 걔가 돈 벌면 가족들이 걔만 바라보면 그 빚 있으면 아무리 돈 벌어도 그거 갚느라 아무것도 못할 텐데, 너 그거 감당할 수 있겠냐고.
- 그 다음날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엄마는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래서 어쩌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빠의 말은 또 한 번 나에게 파동을 주었다. 백억, 백억 있었으면 어쩌면 정말 엄마 아빠는 이혼을 안 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겠다. 백억이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어렸을 적 이따금씩 아빠가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아빠의 사업이 망해도 괜찮다는, 기도를 하곤 했다. 물론 아빠의 사업이 거의 망하긴 해서 가끔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아빠가 하나님 앞에 돌아오진 않았다. 때때로 교회를 간다고 하니까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그 친구는 지금 멀리 지방에 가있다. 그 친구가 옆에 있으면 더 좋았을까? 우리가 대학생 때 만나면 더 나았을까? 우리가 정말 나중에 헤어지게 될까? 내가 너 손을 놓아버리게 될까? 아니 어쩌면 네가 이 모든 과정이 힘들어서 내 손을 놓아버리진 않을까?


네가 지방에 내려가던 전 날 나에게 줬던 그 편지 속에 우리가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다는 말에 이 고비도 있었겠지. 너는 알고 있었던 걸까. 너는 이따금씩 네가 나보다 세 살만 많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했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만나지 못해서 미안해했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다행이다. 내 생각보단 아빠가 난리 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결혼이 아니라서 그런 거겠지만 우리 아빠가 참 변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 아빠와 지금까지

같이 살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내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우리 나중에 나아아아아중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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