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어를 잘했더라면
다른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오로지 책만 읽고
쓰는 독후감이랄까..
다른 분들의 후기와 감상평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유난히도 그랬던 이유는 나는 아직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첫 부분에서 넘어가지 못하고 연거푸 다섯 번을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기를 반복했다.
내 문해력이 낮아진 탓일까 했지만,
책 속에서 작가가 원하는 것이 시간 순서나 이야기의 구성이 아닌 두 등장인물의 감정의 요동과 주변의 묘사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고 난 이후부터는 그것에 대한 강박이 사라지고 편안하게 뒤로 쭉 읽을 수 있었다.
짧은 책으로 어떻게 강렬함을 남길 수 있었을까,
주변에 내가 설국을 읽는다고 했더니 다들 반응이 ‘아 그거 유명한 책이잖아, 우리 집 서재에도 있어. 근데 읽어본 적은 없어’
이런 식이었다.
겨울에 눈이 올 때 이 소설을 읽고 있자니,
너무나도 눈 내린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소설 속에서의 ‘설국’은 그 도시에 대한 사랑과 그 도시에 사는 여자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하고 자신의 마음을 뒤로 갈수록 더욱더 표현하지만,
남자는 오히려 더 차갑게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떠나야겠다고 다짐한다.
또 다른 여주였던 아이가 자신이 미칠 수도 있다고 말한 순간, 어쩌면 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어렴풋이 느꼈는데 불이 났다는 말에 그 가능성이 더 커졌고 이내 사람들이 다친 사람은 없네- 라고 말할 때 같이 안도했다가 어떤 여자가 떨어졌다는 말에 내 가슴도 쿵 떨어졌다.
소설에서는 여자의 과거나 사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왜 게이샤가 되었는지 온갖 추측이 남무 하지만 그녀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 그녀는 사실을 말했지만 우리에게 와닿지 않는 걸 수도 있다.
마지막 죽음으로 작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지만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남자의 심정을 깨닫게 해 준 걸까? 아니면 죽은 여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남은 여자에 대한 심정의 변화가 나타날까? 아니면 그녀는 혹시 사고사가 아닌 자살이었을까?
여러 생각이 가능하지만 이 책의 묘사는 앞서 말했듯이 그런 것에 대해 함구하는 편이다.
그 외의 것들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표현으로 그 장소로, 그 사람의 앞에서 함께 대화하고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내가 일본어를 알았다면, 그래서 이 책을 원어로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깊이를 다 이해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