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on Oct 03. 2018

드라마, 갈등, 그리고 톨레랑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직접 부딪혀야만 얻을 수 있다

"드라마는 갈등이다"


20살, 서울에 처음 올라와
드라마 작법에 대해 배울 때
작가님께서는 수시로 이 말을 하셨다.

드라마는 갈등이고, 
드라마를 만든다는 건
이 갈등이란 녀석을 다루는 일이라고.


또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드라마 작가란,


갈등을 잘 만들고
자신이 만든 갈등을
멋있게 잘 푸는 사람이라고.


그리곤 작가님은
마지막 수업에서 이렇게 당부하셨다.


삶도 드라마처럼 갈등의 연속이니,


좋은 작가가 되려면
삶에 찾아오는 갈등들을
잘 이해하고 잘 헤쳐나가야 한다고.


그러니 정말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면
삶부터 드라마처럼 잘 살아내라고.


당시도, 지금도,
세상이나 인생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늘 방황하지만


그래도 작가님이 하신 이 말들은 
삶의 여러 순간에서 위로가 되었다.


툭하면 싸우고,
선생님께 대들다 얻어터졌던
그 어린 시절의 애달팠던 삶도,


그렇게 도망치듯 
서울에 와서 방황하던 그 순간들도,


마음먹은 대로 일들이 풀리지 않아
스스로를 자책했던 그 애끓었던 그 시간들도,


혹자들은 그 순간들이 모두
성격이 모난 탓이라 꾸짖었지만,


작가님의 말을 빌리면
그저 그런 일들은 살면서 겪어야만 했던
아주 당연한 갈등들에 불과한 것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인간은 부싯돌처럼
부딪혀야 빛이 난다고.


그래서 정말 가치 있는 것은 
직접 부딪혀야만 얻을 수 있다고.


그러니 누군가의 반대나 방해를, 
그리고 살면서 마주하는 좌절을

너무 혐오하거나 박해하지 말고


그저 서로가 서로를 빛날 수 있도록
서로를 인정하고 더 열심히 부딪혀야 한다고.


아니,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반대나 갈등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의식적으로 용인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그런 걸 '톨레랑스'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수십 년을 먼저 살아온 분들의
그 깊은 뜻을 헤아릴 수가 없어,


삶의 모든 순간에서
그 가르침을 품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아직은

삶 자체가 갈등을 동반하는 
드라마라는 작가님의 말도,


갈등이 삶을 더 찬란하게 
만든다는 교수님의 말도
잘 인정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들을 겪으면서
그나마 배운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이미 지나간 갈등으로
지금 자신의 현재를 
흔들게 해선 안 된다는 것.


가끔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지금의 나는 과거가 아니라,
어떻게든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야 한다.


지나간 약속,
흩어져 버린 꿈,
이미 망가져버린 인연을
붙잡을 수 있다면야 당연히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때로는
이미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 두는 것이


그 인연과 관계, 그리고
그 찬란했던 순간들을 지키는 길이며


초라하고 남루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자신 또한 지키는 길이라고.


그래서 때로는 
그 아무리 대단했던 꿈이라도,
그 아무리 찬란했던 관계라도 돌아 보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삶을 지배했던 
인연이나 목표가 사라져도


어떻게든 우리는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고.


그리고 무언가를 잃은 채로 살아도
그런 삶조차도 아주 조금은 괜찮을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며 사는 
삶이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에 못지않게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그 갈등의 순간을 
그저 열심히 살아내는 삶 또한
아주 조금은 위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어떤 삶을 위대하고
어떤 삶은 위대하지 않은 게 아니라,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그 모든 순간의 실존들을 위대하다고
생각하면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교수님과 작가님의 말이
바람처럼 불어오는 가을이다.


2018.10.03.

작가의 이전글 둔재의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