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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Oct 22. 2018

성장이란 무엇인가

타자가 지옥이라도, 또 타석에 서 봅니다.

1. "성장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언젠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2. 성장을 늘 갈망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성장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문장으로는 정리한 적은 없어서인지, 그 질문을 받고 '그저 지금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든 것'이라고 얼버무리며 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 자리를 넘겼지만, 돌아오면서 그 대답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애초에 좋은 콘텐츠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으니까요.


3. 늘 그렇듯, 짧은 질문은 긴 생각을 부릅니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그 누구나 중의 한 명으로, 글을 쓰고, 뭔가를 기록하고, 또 이야기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동시에 소음을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소음은 제가 보태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넘치죠.


4. 그런데 구태여 글을 쓰고, 뭐라도 만들고 싶은 건 왜 일까요? 인간의 본능인 건지, 아니면 자존을 위한 불가피의 선택인 건지, 그걸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선의로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그저 누군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걸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게 위로든, 정보든, 순간의 유희든.


5. 언젠가 교수님께서는 한 철학자의 말을 빌려, '타자는 지옥이다'라고 말하셨습니다. 그 어려운 뜻을 잘은 이해하진 못 했지만, 대충은 타인의 존재 그 자체가 우리의 삶에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6.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타인이 아닌 나로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작가는 이미 세상에 '나' 아닌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차지했다고까지 말하기도 했죠.


7. 하지만 가끔은 나로서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타인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가는 삶도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도 가치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도 가치 있는 행동일 수도 있으니까요.


8. 그리고 성장이라는 걸 다양한 각도에서 정의할 수 있지만, '내가 만든 무언가가 타인에게 얼마나 가치 있느냐의 정도'로도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내가 만든 무언가의 가치가 조금이나마 과거보다 커진다면, 그 자체를 성장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 기준은 주관적이겠지만요.


9. 그래서 누군가 다시 '당신에게 성장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누군가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가지는 가치를 조금이나마 상승시키는 것'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0. 아니, 그게 콘텐츠든 아니든,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가치 있는 것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다면, 그런 삶에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되지 않을까요?


11. 돌이켜보면, 그동안 적지만 많은 기업을 봐왔고, 또 몸도 담아봤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성장하는 회사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회사나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가 아니라, 이용자에게 계속해서 보다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회사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회사가 아무리 빨리 성장해도, 이용자에게 주는 가치가 그대로이거나, 도태되면 금방 몰락했던 것 같고요.


12. 그래서 개인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것을 만들고 있느냐'는 질문을 한 번쯤은 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나는 과연 올 한 해 동안 타인에게 가치 있는 것을 하나라도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뼈가 아픕니다. 타자는 확실히 지옥이 맞나 봅니다. (교수님 1승)


13. 그래도 아직은 타석에 설 기회가 더 있다는 사실이 타자로서 기쁘기도 합니다. 계속 타석에 서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테니까요. 혹여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계속 타석에 섰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날도 올 것 같고요. 끝.


201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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