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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Mar 14. 2024

어제는 경찰서에 다녀왔다

1. 어제는 경찰서에 다녀왔다고 한다. 사무실 건물 화재가 방화 사건이라서, 아무리 바빠도 피해자 조사를 받으러 와야 한다고 하더라.


2. 살면서 경찰서 조사실에 처음 앉아봤는데, 공기가 탁해서 그런지 단 20여 분 조사받고 나왔는데도 기운이 쫙 빠졌다.


3. 그래서 어제는 조금 일찍 퇴근을 했다. 비가 추적추적 왔지만, 기분 전환 겸 좀 걸었다.


4. 사무실 건물 화재가 있은 후, 꽤 많은 분들께서 “불이 나면 사업이 대박 난다“는 말이 있으니 앞으로 사업이 더 잘 될 거라고 해주셨는데..


5. 까칠하게도 비과학적인 건 별로 안 믿는 편이라서, ‘걱정해주는 감사한 마음’ 정도로 여겼다. 불이 났다고 갑자기 사업이 잘 될 리는 없으니까.


6. 그런데 사고 수습이 몇 달째 이어지고, 거의 3개월 넘게 6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


7. 다른 층에 비하면 큰 피해를 받은 건 아니지만, 화재 사고로 직간접적인 데미지를 계속 받고 있는데.. 이처럼 전혀 생각하지 못한 피해를 갑자기 받은 상황에서도, 이를 빨리 회복하는 경험을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8. 불이 나면 사업이 대박 나는 게 아니라, 불이 났음에도 정신을 잘 차리고 기본과 본질에 집중할 수 있으면 사업을 더 잘할 가능성이 생기는 게 아닐까?


9. 비슷한 관점에서, ‘투자자들은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을 해본 (독한) 창업자를 선호한다’는 말이 스타트업 씬에선 떠돌아다니는데, 이 또한 중간 단계의 논리가 생략된 말일 수 있다.


10. 보통은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 회사의 기세가 필연적으로 꺾이기 마련이라, 대부분이 이 단계에서 떨어져 나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서 기세와 분위기와 지표를 살려내는 창업자라면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11. 실제로 ‘스타트업의 전설’로 불리는 넷플릭스는 사업 초기에 구조조정을 진행한 후, 오히려 조직 문화나 사업이 반등했다고 하더라.


12. 요즘 흔히 밈으로 회자되는 ‘꺾이지 않는 마음’, ‘꺾여도 계속 하는 마음‘이 중요한 셈.


13. 생각해보면, 그게 사업이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든, 아니면 삶이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언제나 들이닥치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 이익이 생기기도, 손해가 생기기도 한다. 이를 사람들은 행운이나 불운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14.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 광활하고 복잡하게 뒤얽힌 세상에서 감히 나 따위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거 아닐까?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어떤 일이든 나답게 대응하는 건 언제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니, 그게 어떤 일이 들이닥치든 좀 더 도도하고 좀 더 웃으며 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지.


16. 그렇게 경찰서를 나온 뒤 산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돈을 더더 잘 벌어서 공기가 탁하고 왠지 모르게 담배 냄새로 쩔었던 경찰서 조사실에 쿨하게 공기 청정기를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나 더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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