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won Jul 14. 2019

파 프롬 홈, 그리고 새로운 출발

새로운 출발만큼 완벽한 마무리는 없다

1. 마블의 영화를 보고 나면, 이따끔씩 '마블이 참 영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스파이더 맨 : 파 프롬 홈>을 보고 나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본 글에는 <스파이더 맨 : 파 프롬 홈>과 기타 마블 영화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잘 아시듯, 스파이더맨은 그동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였고, 그렇기 때문에 꽤나 많이 다루어진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새롭게 재정의한다거나, 창의적으로 재해석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어설프게 접근하면, 기존의 수많은 팬들이 '유치하다'고 지적할 테고, 그러면 새로운 팬을 만드는 것 또한 어려워지죠.


3. 특히나 이미 수많은 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세계관(MCU)에, 과거에 가장 인기 있었던 캐릭터를 중간에 투입한다는 건 더욱 난해한 문제입니다. 어떤 비중으로 어떻게 등장시키고 또 어떻게 이야기를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4. 그런 면에서, '시빌 워'와 '홈커밍'을 통해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의 관계를 만들어낸 것은 굉장히 영리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엔드 게임 이후, '아이언맨의 후계자'로서 스파이더맨을 위치시키는 설정 또한 굉장히 똑똑한 접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MCU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와 역사적으로 가장 사랑받았던 슈퍼 히어로와의 조화라고나 할까요.


(물론 스파이더맨이 진짜 아이언맨의 후계자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5. 그리고 중간중간 이야기 전개가 다소 엉성하긴 했지만, '파 프롬 홈'에서는 이 바톤 터치의 순간을 굉장히 스파이더맨스럽게 표현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스파이더맨은 10대로서 슈퍼히어로가 가진 힘에 대한 '열정'과 위기 빠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순수한 정의감'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이 가진 힘을 통제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가져 올 나비 효과에 대해선 다소 어설픈 캐릭터죠.


6. 그런 그에게 그동안 세상을 지켜 온 아이언맨의 자리를 대체하라고 요구하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미션보다는, 그동안 해왔던 '피터 파커'로서 살아가는 게 훨씬 더 편하고 안전한 선택이기도 하고요. 흔히 말하는 '컴포트 존(comfort zone)'에 머무르려는 것이죠.


7. 그렇게 피터 파커는 자신을 대신해 아이언맨의 역할을 해줄 인물이 등장하자, 얼른 그 자리를 내주고, 자신의 컴포트 존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백을 하고, 그저 '사람들의 친절한 이웃'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죠. 그동안 해왔던 대로 말이죠.



8.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컴포트 존에 머무르려고 했던 선택은 더 큰 위기를 불러왔고, 피터 파커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렇게 스파이더맨은 자연스럽게 '컴포트 존'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죠.


9. 그리고 마블은 '포스트 크레딧 씬'을 통해, 안전지대를 벗어난 스파이더맨에게 찾아올 또 다른 파국을 소개하며 영화를 마무리합니다.


10.다음 영화를 더욱더 기대하게 만든 셈인데, 그렇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파 프롬 홈'이라는 제목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1. 잘 아시듯, '집(home)'은 모든 사람의 안식처이자 '컴포트 존'을 상징하는 단어죠.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안전지대를 벗어나, 슈퍼 히어로로서 새로운 출발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파 프롬 홈'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을 떠나면 개고생이 시작되지만, 동시에 그 개고생들은 독립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 겪어야 하는 당연한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11.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고, 또 이 메시지는 그동안 스파이더맨을 다룬 여러 이야기들을 관통해온 주제이기도 하죠.


12. 그런데 말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힘이라는 것,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안전지대를 벗어날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거대한 힘이라는 건 '거대한 모험'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비단 슈퍼 히어로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겠지요.



13. 마지막으로 '파 프롬 홈'을 보면서 또 하나 놀라웠던 점은, 마블이 자신이 한계를 벗어나 새롭게 출발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으로, 지난 10여년의 인피니티 사가를 마무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14. 이 부분도 참 영리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무언가를 마무리하며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작'만큼 완벽한 마무리는 없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참 영리한 이야기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의 서사도 기대가 되네요.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