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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Nov 03. 2020

소셜 딜레마의 딜레마의 딜레마

윤전기는 책임이 있고, 알고리듬은 책임이 없는 걸까?



1. <소셜 딜레마>를 봤다. 사람들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으레 그 미디어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 매스 미디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매스 미디어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고 강력하며 획일적인 효과를 낸다고 믿었고, 그래서 매스 미디어를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마법의 탄환으로 봤다. 


3. 실제로 오손 웰스의 라디오 드라마에 엄청난 사람들이 멘붕을 겪기도 했다.


4. 하지만 마법의 탄환 이론은 쉽게 반박이 되었다. 모든 대중이 미디어가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진 않았으니까. 



매스미디어가 강력한 영향을 가질 수는 있어도, 그게 모든 사람을 조정할 정도의 마법의 탄환은 아니었다. 그렇게 마법의 탄환 이론은 아주 오래된 매스 미디어 효과 이론 중 하나가 되었다.


5.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법의 탄환은 다시 소환되고 있다. 마법의 탄환에서, 마법의 알고리듬으로 그 이름이 바뀌어서.


6. 필터버블이니 소셜 딜레마니 하는 주장들은, 많은 부분에서 마법의 탄환 이론과 닮아 있다. 거대 테크 기업이 그들이 개발한 기술로 한 인간의 삶을 좌우하고, 감정 상태를 조정할 수 있으며, 물질적 소비까지 촉진시킨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주장의 중심에는 항상 알고리듬이 있다.



7. 물론 그들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한없이 미약하고 무식한 나 따위가 판단할 순 없고, 누군가가 이를 검증하고 실증적으로 입증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8. 그리고 테크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1900년대 초의 매스 미디어보다는 지금의 소셜 미디어가 더 교묘하고 간사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조정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기도 한다.


9. 다만, 이런 주장을 펼치거나 강조할 때, 거대 테크 기업의 무책임함과 탐욕을 지적하기 위해 그것을 활용하는 이용자들을 그저 수동적이고 누군가로부터 쉽게 조종되는 객체나 피사체로 묘사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진 않을까?


10. 자신이 추구하는 주장이나 비판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누군가의 실존을 객체화하고 대상화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할 권리는 없다. 아니, 그런 권리 따위는 그 누구에게도 없었으면 좋겠다.


11. 그래서 필터 버블이니, 소셜 딜레마니, ‘소셜 미디어가 가진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본인의 주장에 힘을 실기 위해, 이용자를 너무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하지 않고도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이 들었다. 없다면, 이 주장들은 마법의 탄환 이론과 비슷한 운명을 맞지 않을까.


12.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소셜 딜레마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같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직접 구글, 페이스북 등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본인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본인들이 만든 기술이 점점 더 재앙이 되고 있다고 스스로 속죄하는 장면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만든다.



13. 특히 무료 광고 기반의 소셜 미디어와 검색 엔진이, 갈수록 광고주에게 친화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자신들의 먹잇감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충분히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4. 그리고 콘텐츠 측면에서 살펴 보면, 생각할 부분은 더 많다. 플랫폼 기업들은 몇 년 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이 성장했는데, 과연 그만큼 그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퀄리티는 올라갔을까?


15.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광고주에게 친화적인 콘텐츠는 그 양이나 규모가 늘었겠지만, 디지털에서 자신만의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 퀄리티를 꾸준히 올리는 사람이나 회사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16. 대부분의 디지털 콘텐츠 회사와 창작자들은 어느 순간에 보이지 않게 사라졌고, 살아남은 대다수의 사람들도 이 바닥에서 허덕이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17. 그 이유를 콘텐츠 비즈니스 자체가 원래 어렵기 때문이라고 퉁치면 간단하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한 번쯤은 던져봐도 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올리는 콘텐츠와 데이터로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회사가 되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 안에서 움직이는 디지털 콘텐츠의 퀄리티를 끌어올리기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느냐?”고.


18. 하물며 한 개인도 취재를 하고 글을 쓰기 위해 미디어로서의 책임을 기꺼이 지는데, 한 명의 크리에이터도 자신이 올린 콘텐츠가 부적절하거나 잘못되면 수많은 비판을 받는데,


19. 수많은 정보와 뉴스가 유통되는 통로를 만들고, 그로 인해 엄청난 수익을 얻으면서도, 자신들은 기술 기업이라며, 최소한의 미디어로서의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게 기술 기업들의 글로벌 스탠다드 아닌가?



20. 매스미디어는 좋든 싫든, 아니면 그 책임을 다하든 안 하든, 초기부터 언론이라고 불리며, 심지어는 제4부로 불리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부여받았는데,


21. 기술 기업이라는 이유로, 소셜 미디어는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어떻게 기술이 사회적 책임의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걸까? 그러면 윤전기는 책임이 있고, 알고리듬은 책임이 없는 걸까? 그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지금은 플랫폼 기업들은 오로지 광고주와 주주만 보고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22. 소셜 딜레마니, 필터버블이니 하는 주장은 좀 더 면밀히 뜯어보고 분석해서 실증적으로 진짜 그런지를 살펴봐야 겠지만, 어쩌면 이런 논란들은 과거의 매스 미디어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금의 거대 테크 기업에게도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 시작한 하나의 시그널로도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23. 그러면 어디까지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고,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사실 사기업은 본인의 이익에 충실히 추구하되 세금만 충실히 납부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24. 정답은 없고, 온통 딜레마만 있으니, 소셜 딜레마의 딜레마의 딜레마인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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