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오징어 게임의 놀라운 성공 이후, 그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수많은 글과 말이 쏟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오징어 게임이 왜 이렇게나 글로벌리 흥행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다. 오징어 게임의 엄청난 흥행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하다 보니, 이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쏟아지지만 그중에는 결과편향적인 것들도 생각보다 많다.
사실 이미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어떤 이유든 그럴 듯 하게만 이어붙이면 어느 정도는 다 말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오징어 게임의 큰 흥행을 활용해 평소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가져다 붙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오징어 게임을 콘텐츠적으로 극찬하면 할수록 본인의 주장이 더 타당해보이기 때문에 극찬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난다.
물론 정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이미 너무나도 성공했기 때문에, 이를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비평할수록 더더더 지적으로 멋진 포지션을 잡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극찬과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비평 또한 계속해서 늘어난다.
이렇게 극찬과 날평이 늘어날수록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욱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나쁘게 보지도, 그렇게 좋게 보지도 않았는데.. 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은 미묘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런데 미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나 성공한 이유를 잘 모르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며 솔직하고 타당한 의견일 수 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이런 성공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과거에 이런 성공을 직접 경험해봤다면, “경험적으로 이건 이랬어"라며 즉각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처음 경험하는 것이나 한 번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그럴듯하게 바로바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실은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돌이켜 보면, 방시혁 PD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했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으나, BTS의 놀라운 성공 이후, 방시혁 PD는 BTS의 성공 요인을 묻는 수많은 질문에 공개석상에서 수차례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우리도 그 이유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방시혁 PD는 BTS의 성공은, 그동안 한국 대중 음악 산업이 쌓아온 노력 위에서 존재한다고까지 말했다.
봉준호 감독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생충이 전 세계 시상식을 휩쓸자, 봉준호 감독은 그 영광을 한국 영화가 그동안 쌓아온 100년의 역사에 돌렸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나는 (그저) 평소 하던 대로 했는데.. 이건 X나 미쳤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봉준호 감독조차도 본인의 작품 중에서 특별히 기생충이 가장 높게 평가 받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답한 셈. 그리곤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물론 그들이 뻔히 이유를 다 알면서도, 지나친 겸손의 표현으로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원인이 잘 안 보일 수도 있고.
다만, 개인적으로는 가끔씩은 어떤 현상에 대해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원인을 분석해내는 것보다는 때로는 “나는 아직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게 더 신뢰가 가는 경우도 있더라.
그래서인지, 요즘은 오징어 게임의 성공 요인에 대해 요란하게 이야기하거나 굉장히 날카롭게 비평하는 사람들보다는 “나는 잘 모르겠고, 나도 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좋고, 더 공감이 되더라.
게다가 약간 변명 같지만, 기존의 한국 콘텐츠들의 글로벌 흥행에 비해 오징어 게임은 더 이유를 찾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적어도 강남스타일이나 BTS나 Baby Shark는 공개된 소셜 미디어 데이터들이 많아서 어느 지점 혹은 누구 때문에 티핑 포인트가 만들어졌는지를 대략적으로는 알 수가 있는데, 콘텐츠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독점하는 넷플릭스에서는 오직 넷플릭스가 공개한 데이터만을 알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오징어 게임의 흥행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어느새 유료 서비스임에도 넷플릭스가 이미 유튜브-트위터 못지않은 글로벌 파급력을 가졌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넷플릭스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어떤 흥행에 비해 <오징어 게임>은 그 흥행 과정이나 원인을 분석하기 어렵다는 정도가 아닐까?
비록 초라할지라도, 그냥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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