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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Dec 02. 2021

변길섭이라는 프로게이머가 있었다

불꽃 테란에서 제일 중요한 건 메딕의 수다

'변길섭'이라는 프로게이머가 있었다. 그는 마린-메딕-파벳 조합으로, 말도 안 되는 숫자의 성큰밭을 뚫어내 '불꽃 테란'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리스크는 크지만, 스팀팩을 먹은 바이오닉 유닛을 컨트롤하며 저그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짜릿함을 아는, 테란 유저에겐 변길섭의 플레이는 기가 막히게 멋있었다.


다른 게이머보다 유난히 성큰밭을 잘 뚫었던 변길섭에게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다. 그건 바로 '메딕의 수'.



일반 유저가 불꽃 러쉬의 화려함에 취했다면, 변길섭에게는 상황에 따라 필요한 메딕의 수를 계산하는 꼼꼼함이 있었다.


아무리 마린이나 파벳의 숫자가 많아도, 적절한 수의 메딕이 확보되지 않으면, 성큰밭을 멋지게 뚫을 수 없다는 걸 변길섭은 알았다. 즉, 마린이 자신의 운명을 불태우며 과감히 적진을 뚫기 위해선 적절한 수의 메딕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적의 진영 앞에 서있는 마린처럼, 우리도 살면서 여러 영역에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선, 조직을 위해선, 성공하기 위해선, 자기 한 몸쯤은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쉽게 충고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순히 용기나 패기만으로 모험을 감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한 사람이 용기를 내기 위해선 '용감해지라'는 말보다는, 자신을 믿고 응원해줄 메딕 같은 존재가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물론 그게 가족이나 친구 같은 사람일 수도, 돈이나 빽 같은 힘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믿는 철학이나 신념일 수도 있고, 또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일 수도 있다. 이 중에서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라고 조언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스스로에게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자신은 그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이라도, 메딕 같은 존재이긴 했는지"


+ 2015년 12월 1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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