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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Dec 22. 2021

대부분의 성장은 상실의 한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 리뷰

1.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얻거나 성취하면 한 단계가 더 성장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성장은 상실의 한 가운데서 일어난다.


2. 유치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지만, 마블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실은 이 때문이다. 마블은 언제나, 슈퍼 히어로가 가진 어마어마한 힘을 전시하고 자랑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실을 통해 캐릭터의 서사를 완성하고 캐릭터를 성장시키니까. 그런 면에서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은 너무나도 완벽했다.


++ 이 글에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과 다른 마블 영화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 슈퍼 히어로라고 하면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어마어마한 능력에 먼저 시선이 가기 마련이지만, 마블의 슈퍼 히어로들은 세상을 구하는 과정에서 혹은 영웅이 되는 과정에서 늘 무언가를 잃어 왔다.


4. 스티브 로저스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과의 데이트 약속을 포기했고, 자신의 삶마저 포기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채 낯선 시대를 캡틴으로서 헤쳐나갔다.


5. 평생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나르시스트였던 토니 스타크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던졌고, 그렇게 아이언 맨이 되었다.


6. 토르의 삶은 정말이지 비극적이다. 그는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잃고, 동생을 잃었고, 자신의 눈도 잃었으며, 묠니르도 잃고, 종국에는 아스가르드까지 잃었다.


7. 닥터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손의 감각을 잃으며 마법가가 되었고, 세상을 구하겠다며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타임 스톤마저 포기했다.


8. 애초에 가진 것이 별로 없었던 완다는 그나마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쌍둥이 형제를 잃었고, 사랑하는 비전마저 잃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9. 노웨이 홈에서 톰 홀랜드가 연기한 피터 파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엔드 게임에서 자신의 멘토나 다름없는 토니 스타크를 잃은 피터 파커는 그 상실감을 빠르게 채우려다 미스테리오의 유혹에 넘어갔고, 그 결과로 자신의 정체를 폭로 당했다. 그렇게 그는 더 이상 평범한 이웃이 될 수 없었고,


10.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지우려고 했지만, 철부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은 잃고 싶지 않았고 결국 그 때문에 피터 파커는 어머니나 마찬가지였던 메이 숙모를 잃었다.


11. 그렇게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피터 파커는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지우며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선택을 내린다. 씁쓸하고 외롭지만 평범하고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된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철부지 소년이 상실의 순간에 슈퍼 히어로로 거듭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12. 특히나 노웨이 홈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전의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해 상실의 순간에 선 피터 파커를 위로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책임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경험했기에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었고, 자신들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동질감을 나눴다.


13. 이 부분에서 대사도 훌륭했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행동을 통해서 그들이 피터 파커를 위로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똑같은 시련을 겪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MJ를 구했고,


14. 분노에 휩쓸여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던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은 이성을 잃고 그린 고블린에게 달려드는 광기 어린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가로막았다.


15. 이 두 장면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위한 장면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16. 그리고 그들의 도움 속에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어른스럽게 멀티버스 속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적들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며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슈퍼 히어로가 된다.


17. 이제 피터 파커에게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지원도 없고,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으며,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받을 슈퍼 히어로 동료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위기에 빠진 이웃을 돕기 위해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씁쓸함과 발랄함이 섞인 그의 발걸음에서 그가 상실의 순간을 극복하며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영화 속 캐릭터지만 기특함을 넘어 존경스러울 정도.


18. 그렇게 상실을 통해 MCU에서의 스파이더맨 서사는 완성됐다. 더 이상 후속 영화가 안 만들어져도 충분할 정도로 완벽한 결말이라고나 할까.


19. 그리고 마블의 슈퍼 히어로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달려들지만 실제로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것은 상실의 순간일 수 있다.


20. 아니, 잘 나가고 평탄한 순간이 아니라, 꿈이 산산조각나고, 관계는 비틀어지고, 목표는 어긋나는 그런 순간에 우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며, 그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우리의 운명과 캐릭터를 결정할 수 있다.


21. 그러니 전혀 위로가 안 되겠지만, 지금 상실의 순간에 서 있다면 너무 슬퍼할 이유는 없다. 슈퍼 히어로가 될 순 없겠지만, 어쩌면 그 순간이 진짜 자신의 서사가 시작되는 순간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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