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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Feb 05. 2022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 탁월했던 또 다른 이유

커넥팅닷츠 관점에서 보면, 케빈 파이기는 콘텐츠 업계의 스티브 잡스다



본 글에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과 마블 영화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산산조각 나고 부서지고 흩어지는 꿈, 추억, 관계들을 의미 없고 가치 없는 것들로 여기지만, 그런 초라한 순간까지도 삶에서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조차도 우리가 살아낸 혹은 버텨낸 시간들이고, 살아온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순간일지라도 이를 외면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명할 때가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은 여러 면에 뛰어났지만, 이 부분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스파이더맨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슈퍼 히어로여서 그동안 꾸준히 리부트 되었지만, 매번 마무리가 아쉬웠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놀라운 서사를 보여줬지만 마지막 시리즈에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제대로 이야기를 마무리를 짓지 못한 상태에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그렇게 스파이더맨은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슈퍼 히어로였지만, 영화에서는 매번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마블이 MCU로 스파이더맨을 끌고 들어온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동시에 우려를 가졌다. 이번에도 실망감을 주는 건 아닌지. 



실제로 마블과 소니의 갈등으로 MCU에서 스파이더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때, 팬들은 불안했다. 실제로 노웨이홈을 끝으로 스파이더맨이 소니 유니버스로 간다는 전망하는 꽤나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놀랍게 마블은 ‘멀티버스’라는 컨셉을 활용해 마무리가 아쉬웠던 기존의 스파이더맨들을 소환하며 또 한 번의 놀라운 연결을 만들어냈다.



마블이 노웨이홈에서 만들어낸 연결은 기존의 스파이더맨 영화를 본 사람들에겐 감동적인 선물이나 다름없었고, 이 연결은 단순히 서사적인 연결을 넘어 샘스파 세대와 어스파 세대와 톰스파 세대를 연결하는 놀라운 시도였다.


과연 지금까지 그 누가 어설프게 끝맺은 영화를, 팬들이 간직했던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 섬세하게 현재와 연결했단 말인가.


과한 비유일 수 있으나, 커넥팅 닷츠 관점에서만 보면, 케빈 파이기는 콘텐츠 업계의 스티브 잡스나 다름없다.그는 MCU라는 세계관을 통해 이미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연결했을 뿐 아니라, 노웨이홈을 통해서는 다른 세계관의 작품까지 너무나도 훌륭하게 연결해냈으니까.


그래서 복잡성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블 입장에서는 ‘멀티버스’는 마블이 가진 막대한 IP와 그동안 쌓아온 ‘어카이브’를 연결하는 초유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바꿔 말해, 비현실적인 개념이라서 '멀티버스'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고 이해시키긴 어렵겠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때로는 불가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마블은 멀티버스를 통해 연결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이미.. 초라하고 어설펐던 기존 스파이더맨 서사의 마무리를 MCU와 연결하며 이렇게 훌륭하게 되살아냈는데.. 마블이 멀티버스를 통해서 무엇을 또 어떻게 연결해낼지는 상상조차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할까.


그런 면에서 보면, 작년에 개봉한 블랙 위도우, 샹치, 이터널스를 보면서 느꼈던 아쉬움들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마블이 또 어떤 연결을 통해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를 다르게 만들어낼지 모르니까. 돌이켜 보면, 퍼스트 어벤저나 토르도 시작 단계에는 아쉬움이 없진 않았고.


아니, 어쩌면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든 시작은 원래부터 어설프고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새로운 시도, 새로운 컨셉, 새로운 가치관이 단 한 번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나.


그런 의미에서 시작이 얼마나 초라했는지, 얼마나 부족했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는 그 부끄러움과 초라함을 감수하고 버텨내고 어떤 결말을 만들어냈는지, 어떤 연결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지가 더 중요할 뿐. 


그리고 이건 마블이나 콘텐츠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지금 마주한 초라하고 쓰리고 외면하고 싶은 순간조차도, 그게 언젠가는 어떻게 연결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버텨내는 것, 어쩌면 그게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초라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살아온 시간이자 그 초라한 것들까지도 내가 살아낸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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