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 연남동
친구들과 연남동 도자기 공방에 갔다. 친구가 제안했을 때는 귀찮은 마음 반, 호기심 반이었다. 공방으로 걸어가던 순간까지도, 연남동의 여유로운 정취와 가을날의 부드러운 바람에 마음이 끌려 공방이고 뭐고 낮술이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공방에 도착해서도 부담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 창의적인 것에는 영 소질이 없었는데, 빚고 싶은 도자기의 모양을 직접 스케치하라는 것이다. 눈앞이 까마득해진 나는 공방 구석 선반에 있는 도자기를 아무거나 집어 들어 비슷하게 선만 긋고 말았다. 돌아가는 물레의 속도를 초보자의 손과 마음이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게 뻔해서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 이후에는 흙과 친해지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이때부터 마음의 빗장이 조금씩 풀렸다. 딱딱하게 보이던 흙에 물을 묻히고, 그 촉감과 친해지는 시간. 아기들이 하는 촉감놀이가 바로 이런 느낌일까?
드디어 물레를 직접 돌려보는 시간이 왔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나씩 천천히 해보니 내 손안에 물컹이며 빠르게 돌아가는 이 흙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따뜻하고 말랑한 느낌으로, 내 손에 감기듯이.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를 손에 품으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그런 따스하고 조용한 느낌 때문인지, 혼자 물레를 돌리며 뜻밖의 위안과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곱디고운 백사장의 모래가 태초의 모습으로 손 안에서 흐르는 느낌이었다. 조금 뻑뻑해졌다 싶을 때 아끼는 화초에 물 주듯 섬세하게 물을 끼얹으면 말랑이는 새 생명으로 금방 돌아왔다.
물레 위에서 도자기의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은 초보자에게 조금 어려운 일이었다.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강단 있는 손가락의 지지가 있어야 생각하는 대로 흙이 움직였다. 손끝 하나, 손가락의 방향 하나에도 흙은 모습을 달리하며 춤을 췄다. 모양을 바꾸고 싶을 땐 언제나 손에 힘을 빼고 천천히 균형을 잡아야 했다. 급하게 모양을 바꾸려 힘을 주는 순간 흙은 구겨지고 생기를 잃었다.
그렇게 도자기와 교감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 눈앞의 그 흙을 많이 애정하게 된다. 손가락 하나를 돌고 도는 물레 위에 가만히 올려두면 내 지문의 모양이 빗금처럼 새겨져 나왔는데, 이 순간 그 애정은 더욱 끌어올려졌다.
물레에는 명상과 같은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 나 자신을 가만히 돌보는 마음을 연습할 수 있다. 괜히 조바심을 내는 순간 흙은 망가진다. 침착한 마음으로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힘을 뺀 뒤 균형을 잡아가는 게 중요하다. 외적인 요소는 그 어떤 것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세상 모든 일이 이렇게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 돌보기만큼은 물레 돌리듯 천천히, 부드럽게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