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FT OF SOMI [소명사담]
에피소드 1.
고등학생 때, 미술 학원에서 야작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각자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곤 했는데, 선생님은 우리의 작품에 손 대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시간을 같이 보내 주시고, 늦은 밤 화실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강가에 나가 멍 때리며 서로의 꿈을 나누었던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반짝이는 하늘의 달빛이 강물 위를 일렁였던 그 장면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화실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면서도 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으며 외박금지의 자유를 만끽하며 즐거움을 누렸던 어린 시절이 정말 잊혀지지 않습니다.
에피소드 2.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새벽에 친구를 만나 놀기 위해 몰래 집을 빠져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 층 주택이었던 제 방의 창문을 뛰어넘어 절친한 친구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때 친구의 짝사랑했던 교회 오빠 이야기, 앞으로 되고 싶은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별다른 목적 없이 동네를 정처 없이 걸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다 결국 엄마에게 들켜서 크게 혼났던 일도 있었습니다. 부모님 몰래 나간 것보다는 새벽 탈출을 시도했다는 그 자체가 설레었고, 그런 행동이 짜릿하게 느껴졌던 것이었습니다.
에피소드 3.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경상도 어느 산골짜기에 살던 저는 서울에서 열리는 팀 버튼 전시를 보기 위해 학원과 기숙사의 자율학습을 몰래 빠져나와 새벽에 기숙사를 탈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잘못 걸리면 기숙사에서 퇴사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정말 아찔한 행동이었습니다.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고 서울로 전시를 보러 갔던 것이지요. 기숙사를 빠져나가려던 그 새벽, 문이 잠겨 있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나름 쪽문이라고 생각한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그렇게 보았던 전시는 제 인생 최고의 전시였습니다. 그때부터 마치 제가 팀 버튼이라도 된 듯, 예술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이런 금기된 행동을 도전하는 것이 저에게는 언제나 짜릿했습니다. 그런 저를 본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께서는 “넌 뭘 하든 재미있게 살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학원을 제게 맡기고 외출하시곤 했습니다.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던 그날, 선생님께서는 “늘 경계를 허무는 네 생각과, 망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시도하는 너의 철학을 잃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늘 미워했던 선생님이었지만 그날만큼은 그저 고마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여전히 금기된 행동은 저를 두근거리게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을 지속해왔다면 저는 나쁜 사람이 되었겠지요. (ㅎㅎㅎ)
어린 시절 선생님의 말씀을 제 마음에 새기고, 경계를 허물며 한 번뿐인 인생을 예술성 있는 삶으로 거듭나는 것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도망치고 무언가를 도전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제 마음 밭만큼은 제대로 갈지 못한 것만 같습니다. 제 기준과 생각 속에서, 아직 한참 남은 여생을 생각하노라면 그 무게가 너무나 큽니다. 그것을 단순히 향수로 적셔 덮기에는 이미 빼곡하게 쌓여 있는 실타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의 향기 주머니에서 한 방울씩, 또 한 방울씩 향을 얹으며 마치 그런 향을 품고 살아온 일생인 것처럼 흉내라도 내어보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