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민 Jul 06. 2018

한국적 영화의 한국적 실패

브런치 무비패스 - 변산

1. 이제는 더 함께할 수 없게 된 것 같지만, 브런치 무비패스 덕분에 좋은 영화를 많이 접했는데, 거의 막바지에 왠 쓰레기같은 영화가 하나 발에 채였다. 지금 꽤 기대작인 것 같은데.. 박정민과 김고은을 효율적으로 낭비한 영화다. 그 이상의 평을 내리기 어렵다.


2. 전형적인 한국 영화다. 영화를 잘 몰라서 이준익이라는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지 잘 모른다. 그저 복불복이고,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모두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만 어디서 전해 들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의 모든 것을 담았다. 트렌디한 소재, 그 트렌디한 소재를 촌스럽게 살려내는 것,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배우들, 과장된 연기, 우스꽝스럽지만 웃기지는 않은 숱한 유머들, 윤리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 뜬금없이 나타난 양복 입은 조폭, 눈물 쥐어짜는 신파, 아련한 배경, 주인공의 뜬금없는 해피엔딩.

한국 영화에 대한 과소평가 내지는 지나치게 가혹한 평가라고 부를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최근 한국 영화가 쏟아져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 내가 얼마전에 '변산'이라는 영화를 미친듯이 까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 새해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올해 최악의 영화를 너무 빨리 봐버렸어. 응, 아니야~ 진짜 최악의 영화는 여기야~


3. 아이러니한 것은 이 영화가 의외로 한국 시장에 먹힐 만한 요소도 있다는 거다. 나는 중간부터 실소하긴 했지만, 시사회 그 자체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웃음을 유도하는 데에는 꽤 성공했다. 근데 그 웃음을 유발하는 요인들이 하나같이 저급하고 찝찝하다. 나는 '웃긴 잘만든 영화'를 원했지 '잘 웃기는 영화'를 원한게 아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첫 번째, 캐릭터다.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캐릭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서사가 약하고 진부하기 때문에(반항아와 아픈 아버지? 오... 둘이 화해하겠는데... 하고 보고 있으면 진짜 화해하는 딱 그런 진부한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잘만든 매력적인 캐릭터에 의존해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밖에 없다. 근데 문제는 이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지도 않고 잘 만들어지지도 않았다는 거다.

왜, 중학교에 국어 시간 보면 현대 소설의 특징으로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말을 배운 적이 있는데, 이 시나리오는 입체적인 인물을 과히 추구하다가 입체파 미술을 하는 격이다. 캐릭터는 입체적이고 실감나는게 아니라 엉망진창으로 성격에 일관성은 하나도 없고 씬 하나가 바뀔 때마다 얼굴만 같은 다른 인물인 것처럼 행동한다. 아빠한테 손찌검까지 하던 아들은 갑자기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미친듯이 흘리는데, 이걸 누군가는 '그래도 결국은 아버지다'라는 거룩한 가족적 메시지의 전달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가정을 파탄내고 바람 나 도망간 아빠의 일방적 속죄에 대한 과도하고 불쾌한 정당화와 그걸 받아주는 호구에다 인격이 한 30개쯤 있어서 때마침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인격이 깨어난 인간같은 개연성 없는 전개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기만 했다. 과연 이 장면을 누가 납득할 수 있었을까.

여기엔 납득할 수 없는 캐릭터가 가득하다. 지 제자가 3줄 써논 시를 보고 거기에 삘 받아서 천재네, 하면서 교생 선생이 그 제자의 시를 베껴다 나머지 내용을 채워서 상을 받는데, 겨우 3줄에 감동받고 나머지를 채워 심사위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 시를 베끼냐고. 차라리 절필했다고 하지.

그런데다 그 사람의 여자친구이자 남자주인공의 첫 사랑으로 나오는 인물은 백치미에 바람끼가 가득한데 투명하다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서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캐릭터다. 여자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켜놓고 캐릭터성을 이렇게 짓밟은 시점에서 이 영화는 이미 철저하게 쓰레기통을 향한 용진을 개시한 셈이다.

결국 이 영화가 불쾌한 두 번째 이유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그 '가족'이란 말을 꼰대처럼 휘두르는 영화가 막바지에는 그 소재를 겨우 사람들 눈물 쥐어짜는데 다 소비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꼰대같은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거기에 신파를 끼얹으면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는 한다. 하나는 연평해전-신과함께-7번방의선물 같은 영화인데, 이거에 낚인게 빡치고 내가 신파극에 낚인 것도 아는데 속절없이 눈물을 흘려서 감독에게 당해주는 종류다. 나머지 하나는 그걸 정말 잘 세련되게 다듬어서, 오, 이거 진짜 개꼰댄데 너무 잘 만들어서 할 말이 없네.. 하면서 또르르 눈물을 흘리는 종류다.

이 영화는? 감독이 각 잡고 아버지를 죽이면서 슬프고 장엄한 음악을 흘려보낸다. 아버지는 원래 성격대로(라고 생각하고 싶은게 감독의 의도였겠지.. 문제는 아무도 그렇게 안봤다는 거지만..) 이상한 소리를 유언으로 남기고 아들은 거기서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에서 우리 상영관의 보편적인 반응은? 다들 아버지의 유언에 빵 터져서 깔깔 웃어댔다. 웃픈게 아니라, 진짜 무슨 인터넷 채팅에 "미친ㅋㅋㅋㅋㅋㅋㅋ"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웃었다. 그럼 나를 포함해 우리 상영관 모두가 싸이코패스였을까? 아니. 싸이코패스를 찾으려면 이 영화에서 저 인물들과 서사를 그려낸 사람부터 찾아야지. 이야기를 이따위로 만들어서 그 안에 캐릭터를 이리저리 으깨비벼서 흔적도 못찾게 해놓고 거기서 눈물을 흘려줄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게 이미 공감능력의 부재라고 밖에 평할 수 없지 않나?


5.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할 수밖에 없다. 오, 박정민박정민박정민박정민박정민. 이 영화에서 박정민의 연기는 과할 정도로 훌륭하다. 문제는 혼자 너무 잘해서, 엉망진창인 시나리오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 속에 박정민이 붕 떠버린다는 거다. 박정민의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캐릭터가 죽고 박정민만 남은게 아니라, 캐릭터도 서사도 모두 하나같이 엉망진창이라 남는게 박정민 밖에 없는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김고은의 연기에 대해 악평했는데, 나는 사실 김고은의 연기가 문제라기 보다는 지독히도 캐릭터가 김고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6. 난 모든 영화를 평가하면서 항상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말하긴 하지만 꽤 재밌게 보긴 했다, 뭐 이런 말. 쓴 글들의 한 1/3 정도는 진심이었고 2/3 정도는 그래도 이렇게 까기만 하기엔 미안해서였다. 그리고 또 미안한데, 이 영화에는 그런 미안한 마음이 조금도 안든다. 무료로 초대받아 간 시사회였는데 순수하게 그 상영관에 앉아있는 2시간이 아까웠던 건 처음이었다.


평점 0.5/5. 내가 지금까지 공포영화라서 별 반개 준거 빼고 딱 두 편에 별 반개를 줬는데, 그게 염력이랑 이 영화다. 염력은 별 0.5개, 이 영화는 별 0개도 아깝다.


#보너스 #킬링파트

① 진흙탕 갯벌싸움

② 아버지 유언장면

매거진의 이전글 그네들의 뒷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