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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May 10. 2018

그네들의 뒷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브런치 무비패스 -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 2011)

영화를 보고 소설을 보다 보면, 소위 말하는 "감성적"인 작품이고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끝도 갓도 없이 빠져드는 작품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 속에서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있다. 대개 그런 작품들은 주제가 불륜이거나,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상처 투성이가 되어가는 영화인 경우가 많다. 이 작품도 그랬다. 브런치 무비패스, 5월의 첫 영화였던 "라이크 크레이지"다.


바다 건너, 네가 있는 곳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과 영국이다. 미국으로 유학온 애나, 그리고 그녀와 연애를 시작한 제이콥은 졸업 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그 놈의 비자, 비자, 비자 때문이었다. 그 따기도 까탈스럽다는 미국 비자. 애나는 제이콥과의 행복한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비자 체류기간을 넘겨 미국에 있다가 영국에 돌아가고, 결국 그 이유로 계속해서 미국 비자 발급을 거절당한다. 그리고 이게 애나와 제이콥의 연애사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이 둘은 물리적으로도 제도적으로 결국 '롱디'라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롱디 = 롱 디스턴스 커플 long distance relationship. 먼 거리에 떨어져 연애 관계를 이어가는 연애 관계를 일컫는 말)


사실 영화를 보면서 느낀건, 영화의 주제와 전혀 논외이긴 하지만, 영국과 미국이라는 입국심사 까다롭기로 유명한 나라 사이의 이야기라는 점에 관심이 갔다. 당연히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안에 이민 문제라거나 자유로운 이동을 논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겠지만, 점차 세계화되고 그 속에서 마지막까지 '몽니'를 부리는 국가, 국경, 비자가 눈에 띈다. 복잡한 국제 정세, 이민자 정책, 쉥겐 협정과 같은 국경개방 조약까지 복잡한 국제정치적 역학이 작용하는 이 세계에서, 애나와 제이콥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나키즘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최근 전세계적 트렌드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점차 국경을 닫아가는 세계들에 대한 우려 정도일까.)




사랑도 이별도 아닌 '관계'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 초점이 사랑도 이별도 아니라는 데에 있다. 대개 많은 로맨스 영화들이 극적인 연애사를 거치면서 사랑을 일궈내거나, 그 안에 많은 갈등을 겪고 이별을 겪는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것도 사랑임을 깨닫는 일련의 과정이 수반되거나). 대개 그 과정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어쨌든 올곧게 그 결론을 향해 이야기가 지행된다.


반면에 <라이크 크레이지>는 끊임없는 만남과 이별 속에서 애나와 제이콥의 점점 풀려가면서도 다시 엉켜가는 관계 그 자체에 올곧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지극히 사실적이다. 사랑이란 거룩하고 아름답고 분홍빛 길만은 아님을, 그러나 동시에 그 사랑이 여느 이별영화에서 다루듯이 슬프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너가 없을 때 다른 사람도 만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곁이어야 함을 깨닫는, 그러나 그 과정은 꽃길이라기 보다 한없이 매서운 가시밭길임을 깨닫는 것.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은 그런 길이다.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라고 부르기엔 무색할 정도로, 둘의 절절한 사랑은 부각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안그래도 1시간 30분으로 짧은 영화인데, 그 대부분은 애나와 제이콥은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에 할애하지 않고 대신에 이 둘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가, 이 둘은 각자 자신의 외로움을 어찌 달래고 있는가, 서로의 빈 자리는 얼마나 크며 서로는 서로에게 얼마나 모순되는 말을 하고 상처를 주고 받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혹자는 이러한 영화가 '로맨스영화답지 못해 아쉽다'고 평할런지 모르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사실 거기에 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그러나 현실 속에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판타지, 문학과 상상의 세계 속에서만 있기를 바란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에서 주연과 큰 흐름 못지 않게 단역들, 엑스트라들에 초점을 맞추고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당연히 애나의 파트너였던 사이먼과 제이콥의 파트너였던 사만다에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 둘은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인가" 경연대회를 여는 것 같은 모양새다. 제이콥의 파트였던 사만다는 제이콥의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태도(자기 이름 대신 전 연인인 애나의 이름을 부르고, 위로해준답시고 밖에 나가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애나와 통화하다 딱 걸리기까지 한다)에도 그 모두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결국 마지막, 사만다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제이콥의 곁을 떠나지만, 이 영화에서 과감하게 '생략'한 그 이야기 속에서 사만다가 받았을 상처는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내가 감성이 부족해서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픽션을 픽셔만으로 볼 수 없게 됐다. 씁쓸함이 남은 해피엔딩에는 해피엔딩 그 자체보다 해피엔딩 뒤에 다가올 미래가 걱정되고, 아련한 결말에는 주인공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힘들게 목숨을 구한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은 그네들의 생계를 걱정하게 된다. 이건 어른이 되어간다기 보다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해야할까. 어떤 설명이 뒤따르든지간에, 나는 주인공들의 사랑놀음에 치이고 있는 조연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기 보다 조연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나와 제이콥의 사랑이 한없이 분홍빛 미래로 펼쳐진 결말인 것도 아니다. 마지막, 결국 결혼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한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회한인지, 아니면 끝끝내 멀리 돌고 돌아 도착한 결혼이라는 결말에 대한 만족에서인지 모를 눈물을 흘린다. 애나와 제이콥의 뒷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 그들이 국경을 넘는 거룩하고 위대한 사랑,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사랑을 하지 않았듯이, 결혼생활도 한없이 평범할 것이다. 동거의 기억이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결혼보다는 조금 낫겠지만, 수많은 난관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겠지. 그들의 관계가 과연 어떠한 결말을 맞을까. 그네들이 흘린 수많은 눈물들이 모두 다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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