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if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

by 소므



사람은 살면서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예를 들면 대학교를 가더라도 만약 이 과를 지원했으면, 아니면 다른 학교의 다른 과를 지원했으면..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 놓인 것은 항상 후회뿐이다. 만약 이 대학교를 오지 않았더라면? 이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 수시를 넣었다면.

혹은 고등학생 때 더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조금 더 나은 학교에 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가라앉는 후회의 늪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람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한다.

알고 있는 정보들도 취합을 하고, 이거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계속 구상하고 고민하고 주변에 의견을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선택한 길이 항상 옳거나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자면, 내가 어떤 재킷을 사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치자. 몇 달을 고민하다 그것을 구매를 했는데 갑자기 다음 달에 세일을 한다면?

조금만 더 참았다 살걸, 난 이미 그 제 값을 주고 샀는데도 불구하고 손해를 본 기분이 든다.

이미 그 시간 동안 착용을 하고 그만큼 만족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고

내 기준은 50%를 깎은 그 금액에 맞춰져 있고 50%를 더 내어서 큰 손해를 받았다고 인식을 한다.

심지어 내가 원가 이상으로 웃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닌데도 마치 내 돈을 갈취당한 듯한 기분이 들고는 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특히 ’if'의 함정에 걸려들기 시작하면 절대 내 현재 상태에 대한 만족감이 들 수가 없다.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을 했어도,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싸게 샀네. 혹은 더 수익을 얻었네. 하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쪽으로 예시를 들어보자면, 만약 내가 내 집을 샀을 때보다 10% 정도 오른 때에 매매를 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2년 뒤에 가서는 내가 팔았을 때보다 30%가 올랐다고 생각하면 그때 팔지 말걸. 하는 후회가 들 것이다.

물론 2년 뒤에 팔았으면 더 이익이 나서 좋았겠지만 내가 팔았을 때도 이미 ‘10%‘가 오른 값이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내가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그만큼 더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본 것 같아 계속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다.

이미 내 손을 떠나간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상실감과 박탈감을 쉽게 털어내지를 못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3년 뒤에 집값 어떻게 될 것이며 4년 뒤는? 언제 집값이 오를지 몰라서 불안해서 사고파는 것이나 가능하겠나.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수학처럼 정답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주어진 선택지 중에 그나마 나은 것을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가장 좋은 것이 아니었다면 인정하고 배우면 된다.

이번 기회로 배웠으니 다음에는 더 현명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겠지. 하고 넘기면 되는 것이다.

그만큼 나의 시야는 넓어진 것이며, 사회를 더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이다.


매일밤 잠들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아, 진짜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걱정과 망상을 달고 사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만약 이랬으면’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우울함을 달고 살았던 적이 꽤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재는 그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내가 직접 골라서 쌓아온 기반이다.

내가 더 가졌어야만 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내가 만들어온 그리고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할 줄을 알아야 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왜 저걸 가질 수 없는지. 왜 쟤는 쉽게 갖는지만 생각하다 보면 부러움과 열등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자.


오늘 하루가 만약 너무 심심했다. 그러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고 무탈하게 지나갔으니 감사한 일이고

퇴근 후에 보고 싶었던 드라마나 예능을 보면서 저녁을 먹는 것이 삶의 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닌, 내가 가져야만 했다고 생각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하자.

내 손을 떠난 물건이나 지난 일들에 대한 미련을 털어버리자. 그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며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일들도 아니다.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깨지고 부딪히는 만큼 더욱 나는 성장하고 그 일들은 내 세상을 넓혀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왜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하냐에 초점을 맞춘다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선택들은 나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거에 아무리 후회가 많은 선택을 했었더라도, 그때의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내가 살아온 삶의 자취에는 나의 노력들이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그때의 나에게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걸, 내가 택한 것들이 나의 지금을 만들었다는 걸 잊지 말기를.


과거의 나 자신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말고, 지금 발 딛고 사는 현재를 과거에 대한 후회 때문에 의미 없이 보내지 말기를 바란다.

주위를 돌아보면 생각보다 내게 주어진 것들이 많은 걸 알게 될 것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인 것이다.


이미 충분히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다.

스스로를 좀 더 믿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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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처음부터 연재를 하려고 했는데 연재 브런치북을 만드는 방법을 이제야 알아서 쓰게 되는 얼레벌레한 인생.

이번 실수로 브런치스토리의 기능을 더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과 라이킷 모두 감사합니다.

글 쓰는데 많은 힘이 됩니다.

‘삶이 버거운 이를 위한 작은 독백’ 천천히, 꾸준히 써보겠습니다.

제 글이 지친 일상의 조금의 힘이라도 되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을 넣은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저와 같이 낡고 지친 모습의 고양이가 귀여워서 넣었습니다. 잠시 웃고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