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자기충족적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내

by 블레어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쭉 편한데 불편한 마음으로 지냈다.

식단 조절, 양조절이라는 걸 모른 채 음식을 와구와구 먹었다.

와구와구 먹고 나면 또 먹고 또 먹고 그리고 누웠다.

하릴없이 핸드폰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가

영상 하나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이 영상을 봤다가 저걸 봤다가 오락가락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혼자 초조해하다가 다시 불안해하다가 왔다 갔다 갈팡질팡


새해가 되고 '첫날부터 미룰 수는 없지' 하며 여러 가지 데일리 기록들을 이어 갔는데 목요일부터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슝

목요일 기록을 건너뛰고 금요일에 와르르 몰아서 쓰고

금요일 기록은 또 토요일에 몰아서 썼다.


어떤 날엔 스타벅스에 앉아 감명 깊게 읽은 책을 필사하려고 하다 현타가 와서 펜을 던졌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지금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제일 우선순위로 해치워야 하는 게 뭘까?

나의 원씽은 무엇일까?


취업.


그래 돈을 벌어야지. 그래야 몰래 품은 독립의 꿈도 이루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더욱 마구마구 표현하며 지내지.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있기에 할 수 있는 건 많잖아?


근데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취업준비 빼고 다 하는 거 같은데.


머리로는 알고 있다. 토익스피킹 성적이 나오면 그때 하자

경험 정리부터 시작하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랬으니

그래서 차분히 앉아 쓰고 스스로에게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심장 뒤에서부터 스멀스멀 초조함이 피어오른다.

초조함이 점점 손끝으로 번지면 나는 해야 할 일을 외면한 채 다른 일에 매달린다.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되겠지 같은 안일한 마음으로.


요 며칠 내내 양 극단의 감정 사이에서 신나게 고무줄놀이를 했다.


'좀 더 쉬어도 되는 거 아닐까? 또 언제 이렇게 쉬어보겠어?'

'아냐, 이렇게 마냥 쉬다 보면 끝없이 해이해질 거야. 완벽한 타이밍이란 건 없어, 지금이라도 조금씩 해야지.'

'아니, 그래도 생각해 봐.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일 텐데 내가 원하는 거 하는 게 좋지 않아?'

'근데 내가 원하는 거? 이렇게 운동하고 책 읽고 여유롭게 시간 보내는 거잖아. 이건 사실 주말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걸. 너에게 시급한 건 바로 취업이야. 돈 벌기라고'

'야, 생각해 봐 돈은 어떻게든 벌기 마련이야. 당장 급할 것 없다니까?'

'하지만 나는 독립도 하고 싶고, 돈도 많이 모으고 싶은걸?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 너 그럴 때 아니지. 근데 너 지금 하는 걸 봐바. 자기 충족적 시뮬레이션 그만하자 해놓고 네가 하는 거 전부 다 자기 충족적 시뮬레이션이잖아.'

'아니 꼭 그게 금전적인 성과로만 나와야 되는 거야? 개인 만족이나 개인적인 발전에 그치면 안 되는 거냐고. 꼭 금전적인 성과로 이어져야 유의미한 거냐고?'


어휴, 지킬 앤 하이드도 이것보다 자아분열이 덜 오겠다.

호르몬의 농간인가? 생각도 했지만 그토록 피했던 자기 충족적 시뮬레이션을 다시 열심히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참, 사람 쉽게 안 변한다 싶으면서도 어디 그렇게 쉽게 변하면 이 세상이 천국 같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어쩌면 나는 아주 소수의 친구들에게만 낮은 목소리로 말한

앞으로의 나의 선택 결과가 '짠! 당신은 실패했습니다!'로 끝날까 봐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는 거 일 수도 있다.

'시도하지 않음'으로 인해 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

그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는 긍정적으로 열린 결말이라 혼자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이다.


정말이지 '뭐라도 해야지'에서 그 '뭐'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 같다.

'시도하지 않음' 상태에 유유히 떠다님으로 인해 스스로 시뮬레이션 돌리는 '긍정적 열린 결말'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기껏 핸드폰 배경화면까지 똑 부러지게 바꿔놓고

하는 건 애먼 데서 해결책 찾기라니.


그런 마음에서 새로 시작하는 한 주, 진짜 진짜 이력서 수정을 해보겠다고 여기에 다짐해 본다.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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