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well, Rest well, Sleep Well
백수의 아침은 평화롭다.
엄마 아빠가 갑자기 큰 아빠 댁에 간다고 아침부터 부랴부랴 떠난 화요일 오전.
눈을 뜨고 핸드폰을 스크롤하다 으라차 힘을 내어 거실로 나섰다.
토스트기에 친구가 사준 통밀살구식빵 2.5 조각을 넣고 굽는다.
버터와 크림치즈, 딸기잼을 소분해서 예쁘게 소스그릇에 담고 따뜻한 차를 가득 텀블러에 담았다.
가염버터면 더 맛있었겠지... 가염버터를 사러 가서 무염버터를 골라오는 멍청함을 보였지만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며 버터나이프로 버터를 듬뿍 빵에 발랐다.
좋아하는 예능을 유료결제 하고 커다란 티브이로 보며 와구와구 빵을 먹었다.
창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겨울의 햇빛은 더 따뜻한 것 같다.
아마 차가운 공기와 함께 들어와서 그렇겠지.
먹은 걸 대충 치우고 벽에 기대어 앉아 티브이를 보는데 스르르 잠이 몰려왔다.
뒤척이다 안경을 내던지고 그대로 낮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니 3시, '그만 자빠져있자' 생각하고 서둘러 옷을 갖춰 입고 강아지 산책을 나섰다.
'너는 어떻게 6살인데 혼자 산책도 갈 줄 몰라,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귀여우면 다야? 다지.'
매번 주인의 헛소리를 듣는 강아지는 들은 체도 안 하고 뽈뽈뽈 제 길을 나선다.
롱패딩 위로 비인 듯 눈인 듯 뭔가가 닿고 조금 서늘해진 겨울바람에 코를 훌쩍였다.
집에 들어와 앞 베란다, 뒷 베란다의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이불을 팡팡 털고 청소기를 돌렸다.
설거지를 후다닥 하고 너무 꾀죄죄한 것 같군 생각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벌써 5시. 서둘러 혼자 저녁을 차려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너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생각하며
인스타그램에 후다닥 김화진 작가의 동경 리뷰를 올린다. 김화진 사랑해애애애 고백과 함께.
그리고 하루의 마무리 다이어리들을 왕창 꺼내어 이 펜 저 펜 바꿔 가며 기록을 한다.
오늘 하루를 평가하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럽다' '평온하다' 문장이 쓰인다.
엥
어떻게 만족스럽고 평온할 수가 있지?
왜 오늘 하루가 이렇게 평화롭고 만족스럽지?
나 오늘 한 거라고는 먹고 자고 개 산책 하고, 리뷰 쓴 것 밖에 없는데?
이상했다. 본디 내게 만족이란 생산성과 비례했다. 생산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만족도가 높았다.
아무것도 안 한 날엔 '정말 엉망진창이다'를 휘갈겨 쓰며 아무것도 안 한 나 자신을 얼마나 저주했던가.
뭘 했다라고 말하기에도 머쓱한 하루였다. 정말 먹고 자고 쓰고 쉬고 그게 전부였으니까.
그러다 문득, 내가 너무 만족의 기준을 높게 잡은 게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만으로도 만족스러울 수가 있구나.
일주일 중 4일 이상 운동을 가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어쩜 그렇게 운동을 착실하게 꼬박꼬박 나갈 수 있냐고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ㅇㅅㅇ나는 백수잖아. 너는 일하고 백수니까 가능한 거지 뭐]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백수여도 운동을 그렇게 나가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그런가
스스로에게 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 박함의 기준이 일상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그렇게나 내려놓자 가볍게 생각하자 노래를 부르면서도 정작 하루의 일상에도 높은 기준을 들이댈 줄 몰랐다. 그것도 이렇게 시간이 남아도는 이 시기에 말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과 만족 되게 별거 아니네.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 잘 쉬고, 잘 노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거였네
삶의 평온과 소소한 일상이란 건 멀리 있는 게 아니었네. 소소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평온의 의미가 이렇게나 평범하고 소박한데 나는 대체 어디서 만족과 행복을 찾았던 걸까
화요일 이후로 관대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한 단어를 한 가지 상황에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절대반지처럼 절대단어.
만족은 생산성 100%에 도달하는 날에
행복은 장소, 시간, 분위기, 사람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는 날에
관대함은 타인의 실수를 이해하고 넘어갈 때
좋아함은 내가 이만큼 좋아한다는 걸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영역에.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져서 완벽한 상황이 갖춰질 때만 상황에 맞는 단어를 꺼냈다. 자랑스러워하며
완벽한 게 어딨어, 완전한 게 어딨겠어
지드래곤은 말하셨지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엔 넌 변했지'라고.
영원한 것도 없는 이 세상에 나는 또 완벽과 완전을 찾았구나.
한 가지 단어가 해석될 수 있는 상황은 여러 가지일 테니
단어의 확장성을 제한하지 말아야겠다.
확장성을 제한하고 특정 상황에만 부여하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삶의 감도는 줄어드니까
소소한 행복이란 이런 거구나
새삼 느꼈던 어느 화요일 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