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제가 뭘 하고 지냈냐면 말이죠
퇴사 한지 191일이 지났다.
퇴사했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고 나의 삶 역시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다.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무덤덤했고 시원 섭섭하다기보단 '드디어 끝났군' 해방감에 가까웠다.
후련함과 해방감도 잠시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걸 볼 때마다 조바심이 일었다.
주변에선 뭐가 그렇게 급하냐고 푹 쉬라고 얘기했지만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우린 남 일에는 후한 편이니까. 돌이켜보면 나도 퇴사한 친구들에게 '부럽다, 이 김에 푹 쉬어'라며 독려를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일이 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건 역시 어쩔 수 없지.
'음 앞으로 퇴사하게 된다면 꼭 봄이나 가을에 해야지' 새로 알게 된 사실 나는 퇴사에도 계절감을 느낀다.
한 여름의 퇴사는 정말 할 게 못된다. 우선 너무 덥다. 너무 더워서 어딜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또 그것은 그것대로 답답하다. 내가 못하는 것, 진득하게 영화나 드라마 정주행 하기, 집에서 빈둥대기, 누워만 있기. 빈둥대거나 누워있는 것도 길어야 하루다. 이틀차부터는 좀이 쑤시고 시간이 아깝고 핸드폰만 하고 있다 보니 멍청해지는 기분이고 나가고 싶고 몸이 근질근질하다. 무엇보다 퇴사 후 집에 나 혼자 있을 줄 알았는데 아빠의 퇴사까지 겹쳐 서로 불편한 듯 편한 시간이 꽤 길었다.
고요한 평화 속에서 시작할 줄 알았던 나의 퇴사 라이프는 두다다다 우르르 쾅쾅 아빠의 넷플릭스 소리로 아침을 일깨웠으니 시작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운동이나 가자 싶어서 헬스장을 끊었지만 그 마저도 대중교통이 썩 좋지 않았던 곳이라 실패. 여름이 끝날 때쯤에 가서야 도서관이 최고의 여름 피서처라는 걸 알았다.
밀린 친구들을 만나며 여름을 버텼다. 더위를 헤집고 나가 만난 그들에게 지나온 삶을 털어놓았고 너무 지쳤다는 말을 내뱉었다. 커피 한 잔에 웃음이 와르르 챙 부딪히는 술잔에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와르르.
여름은 친구들을 만나고 도서관을 오가며 겨우 겨우 버텨냈다. 그 열기를.
처서매직 후 꺾인 열기와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기온은 높았지만 찜통 속 만두가 되진 않았다. 서서히 가을이 제 모습을 보이자 기운이 조금씩 차올랐다.
'이번 생일은 다른 지역에서 보내볼까' 생각에 호기롭게 생일 기념 강릉으로 멀리 도망쳤다. 모래 앞에서 하얀 포말을 포르르 일으키며 부서지는 바다를 아주 오랫동안 하염없이 바라봤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장을 오감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식당에서 반주를 하고, 와인바에 혼자 가보며 '어른의 맛'이란 이런 건가 혼자 느끼며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등 뒤에 바다를 두고 씩씩하게 뚜벅뚜벅 숙소로 걸어가던 초저녁의 거리까지.
도망간 곳에서 얻은 평화와 위로는 수고한 스스로에게 주는 큰 선물 같았다.
아직 3개월이 안 됐다니 생각하며 읽고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다 소셜링을 나가고 트레바리를 시작했다.
여전히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했으며 멋있는 사람은 너무 많았고 나는 여전히 동경의 마음을 안은 채 그들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3개월까지만 놀고 일해야지 했던 다짐은 바스러지고 '또 언제 이렇게 내가 쉬어 보겠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조금은 선선해진 바람이 팔뚝에 스칠 때쯤, 지인의 소개로 이색 알바를 하게 됐다.
이런 세상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타인의 문장들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자꾸 '왜?'라고 되물었다. 어느 날엔 '나 자신, 반골기질이 꽤 높군' 생각할 만큼.
한껏 도망치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것도 내가 도망치고 나니 알 수 있었던 일이지.
사부작사부작 영어 말하기 시험을 준비하고 공부했다. 모든 건 체력이 있어야 하니까 생각하며 헬스장을 다시 끊었다. 운동하고 먹고 오픽과 토스 공부를 하고 그러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읽고 쓰고 또 읽고 썼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왔고 12월 31일이 지났으며 새해가 도래했다.
역시 새해에는 새해 버프 아니겠어? 새해 버프를 받아 잠깐 바짝 열심히 살았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싶어서 잠시 하루 놓았다가 '그래도 해야지' 생각하며 다시 사부작사부작 움직였다.
종종 어떤 다짐은 정말 '문득' 이유 없이 '갑자기 계시'처럼 내려오는 것 같다.
'음 이제 일 해야지, 돈 벌고 싶다. 진득한 고민의 답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으니 그리로 뚜벅뚜벅 걸어갈 때가 된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컴퓨터를 켜서 이력서를 수정하고 업데이트하고 지난 자소서를 훑어보며 그저 패기만 넘쳤던 신입시절을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흘리고 삭제 삭제 후 다시 자소서 칸을 추가했다. 다시 사회에 뛰어들 준비 완료.
퇴사 후 계획이 있냐는 말에 '좀 쉬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정말 내 마음이 한계까지 다다른 상태였기 때문에.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자 잔뜩 긴장하고 예민해졌던 마음에 창이 났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여유, 자유, 평화에 취해 한껏 몸을 뉘인 채 둥실둥실 떠다녔다. 타인의 문장, 사회가 만든 문장이 마치 절대적 답인 줄 알고 살다가 나의 문장을 써야 한다는 걸 알았고 용기를 내어 펜을 들고 한 획 한 획 조심스레 그려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문장을 가슴에 안으니 비로소 이제 됐다, 나아갈 수 있어 용기가 들었다.
어떤 날엔 전쟁 같았고 어떤 날엔 평화로웠다. 오락가락하는 감정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가도 나는 왜 이리 감정의 무게를 못 잡는 건지 화가 났다. 이 나이 먹도록 뭘 해냈는지 스스로를 자책하고 한껏 미워했다. 미친 듯이 먹고 눕고 아무것도 안 하고 텅 빈 눈으로 핸드폰 스크롤만 움직이던 어느 날,
'나는 내가 미우면 맘에 안 들면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자해하는구나 되게 별로네' 생각했다.
마냥 평화롭진 않았다. 퇴사해서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엇=ㅆ지만 후련하지도 평화롭지도 않았다.
불안했고 초조했으며 방만하게 쥐어진 이 자유가 무서웠다. 이도 저도 못한 채 흔들리며 예민한 가시를 잔뜩 세워 지낸 날이 많았다. 나의 자유에 책임진다는 게 이렇게 무거운 일일 줄 몰랐다.
나름 어른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어른 되기 어렵네 자주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헤매고 방황하고 혼자 땅굴 파고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여기저기 힐긋 시선을 주며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렸다가 혼자 독백하며 써 내려갔던 그 모든 길이 결코 의미 없진 않았다.
낭비한 시간도 많았다. 낭비했기에 '역시 시간이 제일 중요하군' 새삼 그 가치를 되새겼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의심을 던질 때마다 내게 건넨 주변인들의 말을 믿었다.
불안하고 삶이 어지러울 때마다 '증거 있어?' '어쩔 테냐!' 객기 어린 마음으로 주먹을 쥔다.
'그래도 그 나이면,,,' 하는 소리에 흔들릴 때면 '오케이 차단 모든 걸 일반화할 순 없지' 생각한다.
스스로랑 많이 싸웠고 또 그만큼 질리도록 화해했다.
지금도 이렇게 화해하고 평화의 글을 쓰겠지만 또 며칠 뒤면 '진짜 내가 생각해도 나 되게 별로다' 하면서
스스로의 머리채를 쥐어잡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떡해요 내가 나 데리고 살려면 좋은 관계를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일 텐데.
이제 사회에 쓰임 받은 일로 글을 쓰고 싶다.
일단 그전까지는 취준생으로써 여러 가지 넋두리를 늘어놓아야지.
앞으로도 주먹 쥐고 싸우고 싶어 지겠지.
다짐한 걸 해내지 못할 때, 계획한 걸 미루었을 때, 또 편함에 기대어 나태해질 때 등등
나는 나의 가장 열렬한 팬이자 가장 극악의 안티이니까.
그때마다 스스로의 머리채를 잡아야지.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라고.
191일간 고생했다. 앞으로 더 고생합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