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너를 믿어

위축되는 날이면 꺼내보는 문장들이 있지

by 블레어

내게는 작은 습관이 하나 있다.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다 마음이 담긴 연락을 받을 때면 캡처해서 보관하는 것이다.

응원의 말, 위로의 말, 칭찬의 말 등이 있다.


종종 이건 내가 그들에게 갑자기 연락하는 계기가 된다.

어느 날 갑자기 핸드폰 앨범을 훑어보다 캡처된 이미지를 보고 마음이 뭉클해져 문득 생각나

갑자기 연락을 하게 되는 것. '그냥 갑자기 연락해 봤어'가 된다.


새해가 밝았고 어김없이 새해카톡을 꾹꾹 정성스레 썼다.

그중 서로의 이 인연이 신기하다고 느끼며 웃음 지었던 친구에게도 카톡을 보냈다.


이 친구는 나와 초등학교 10살에 만났던 친구.

그때 둘이 붙어 다니며 아주 친하게 지냈었다. 그러다 내가 갑자기 경기도로 이사가게 되었고

서로 집전화로 전화도 하고 메일도 몇 번 주고받으며 연락을 이어갔지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SNS의 순기능인지 친구추천에 뜬 걸 보고 냉큼 추가를 했었고 별다른 연락 없이 게시글 보면 좋아요 누르기 / 가끔가다 댓글달기 / 인스타 스토리 보면 좋아요 누르기 등으로만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그 친구가 시간 날 때 연락 하겠다는 말을 했고 나는 그냥 우리가 으레 하는 일상 안 부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연락했고 우리는 거의 21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 서울에서.


진득하게 이야기를 이어가 나며 21년의 공백을 얘기하고 서로가 기억했던 서로의 모습에 대해 얘기했다.

공백이 아쉬운 게 아니라 긴 시간을 지나 '지금' 이렇게 함께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대화 내내 느꼈던 건 너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 , 결이 비슷하구나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들뜬 마음으로 귀가했던 여름 저녁을 아직도 기억한다.


한 여름에 봤으니 다음엔 겨울에 보자며 다음을 기약했지만, 여전히 서로 사는 게 바쁘니까.

하지만 새해는 갑자기 연락하기 좋은 핑계이므로 새해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받은 답장에서 나는 오랫동안 카톡창을 나가지 못했다.


KakaoTalk_20250122_152438124.jpg



너는 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아님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할 수 있었건 걸까?

내가 보는 '나'가 아니라 남이 보는 '나'에 대해 생각했다.

내 이야기가 나를 어떻게 비출까,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길래 내 주변인들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걸까


최근 재쓰비의 노래 '너와의 모든 지금' 가사 중에 그런 가사가 있다.

[ 넌 너를 그냥 믿어 도무지 너를 모르겠다면 네 곁에 나를 믿어 ]

이 가사에 꽂혀서 역시 김이나다 박수를 쳤다가도 '네 곁의 나를 믿어'라니 이보다 더한 위로와 용기가 어딨 지 생각했었다.


노래 가사가 친구의 손가락을 통해 내게 문장으로 온 순간이었다.

여러 새해 카톡 문자들 중에 유독 저 문장이 콕 박힌 건 스스로를 강하게 믿고 있다 생각했지만

여전한 의심과 불안 속에 믿지 못한 날들이 많아서였나 보다.


그 후로 스스로를 의심할 때마다, 내가 나를 못 미더워할 때마다 내 주변인들을 믿기로 했다.

나는 그들이 어떤 모습이든 언제나 응원하고 지지하며 사랑을 보내는데

그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믿는 '나'라면 나도 나를 좀 믿어도 되지 않을까.

타인의 눈을 통해 본 '나'를 나도 조금은 사랑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건 오만이나 자만은 아니지 않을까.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나면 조심스레 핸드폰 배경화면을 보여줘야겠다.

네가 보내준 그 문장이 내가 나를 믿어도 괜찮겠다는 용기가 되었고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처럼 되뇌고자

자주 보는 곳에 이렇게 새겨두었다고.



종종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내가 생경할 때가 있다.

그들이 보는 나는 내 생각보다 대담하고, 용기 있으며, 멋지고, 실행력 있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럴 때마다 여전히 내가 나에게 얼마나 매정하고 단조로운지 생각한다.


타인은 장조로 다채롭게 바라봐주면서

스스로는 단조로 무채색으로 바라보더니.


여전히 나에 대해 알아갈 게 많군 생각하며

스스로를 못 믿는 날엔 나를 믿어주는 그대들을 믿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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