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꼭 안겼다

그리고 면접 제의 문자가 왔다.

by 블레어

여기저기 동네 방에 얘기했듯, 나는 퇴사했고 현재 직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나의 일을 사랑하고 싶어서'가 가장 컸다.

아니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래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전에도 언급했듯, 내가 가는 과정엔 항상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엔 일이 당연히 있을 테고, 일, 회사, 업무 등을 사랑할 수 없었던 시간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나도 모르게 내뱉는 나쁜 말들, 저주의 단어들 그걸 내 귀로 들으며 혼자 소름 끼쳐하고 죄책감을 가졌던 날들이 많았다. 사랑하는 것이 에너지를 받는 일이라면, 미워하는 일은 정말 큰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체력이 약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자주 미워하고 싫어하고 저주하면

그 영향이 결국 내게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장렬히 전사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 고민의 끝에, 한 껏 멀리 도망가본 끝에 터벅터벅 취준의 시장으로 다시 걸어 들어왔다.

자소서를 새로 쓰고 '내가 포트폴리오를..?'이 안 어울리는 단어 두 개를 곱씹으며 혼자 사부작 만들어보고

어떻게든 나의 경력에서 뽑아보고자 머리를 잔뜩 굴리는 과정 중에 있다.


솔직히 아주 많이 두려웠다.

그리 어린 나이도 아니었고, 가진 거라곤 '회사를 다녀 봤습니다. 한 4년 정도용.' 하는 경력이 전부인 것 같은데 나를 받아주는 데가 있을까? 뒤늦게 부랴부랴 미리캔버스 같은 웹 디자인 툴을 배우는 데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 짓일까? 내가 또 너무 대가리 꽃밭인 것 마냥 생각한 건 아닐까?

단단한 마음에 내려앉는 두려움은 금세 마음을 물러터지게 만들었다. 조금만 손대면 펑하고 터질 듯이.


어젯밤에 처음으로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만들어 봤다.

노션으로 사부작사부작 최대한 키워드를 뽑아내보자 다짐하면서 어떻게든 문장을 만들어냈다.

책 리뷰를 올리던 인스타그램 계정마저 없었음 큰일 날 뻔했군 하면서 새삼 4년 전 나에게 고마워하면서.


많은 걸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 매일같이 이어진다.

이력서를 열람했다는 알림조차 받기 싫어 다 해제로 해두었는데, 이력서 수정하러 들어갔다가

사측에서 [열람]을 확인하면 차게 식어버리는 기대감은 역시 어찌할 수 없나 보다.


뒤척이던 새벽, 혼자 계속 스스로에게 얘기했다.

'한 방에 되면 재미없잖아. 내가 나를 판다로 생각해야지. 이 정도 각오는 하고 도전하는 거잖아.

안되면 뭐 어때, 나랑 안 맞는 곳이었겠군 하고 넘기면 되는 거지. 과대해석 하지 말고 쉽게 좌절하지 말자.

그냥 스스로를 믿고 지금처럼 계속 나아가자. 글은 쓰고 수정할수록 좋아진대잖아. 자소서도 그럴 거야.

내일은 잘 쓴 자소서와 포트폴리오를 둘러보며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해 보자.'


주문을 외우듯 스스로에게 계속 겁내지 말고 나아가자고 계속 계속 얘기하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그리고 꿈에서 나는 갑자기 뱀에게 쫓기기 시작했다.

평온한 일상을 살다가 어느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그때 갑자기 발 밑에 뚜껑이 닫힌 통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기 시작했다. 저 뱀 좀 잡아달라고 큰 소리를 치며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큰 뱀 한 마리 뒤로 작은 뱀 한 마리도 같이 나를 쫓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나를 아주 꽈악 품에 안았다.

할머니 품에 안김과 동시에 꿈속 누군가가 뱀을 잡아주었고 나는 안도한 채 잠에서 깼다.



뱀 나오는 꿈을 검색했다가 해몽이 뭐가 중요하겠어하고 심드렁하게 넘겼다.

그러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던 손녀, 뭐가 그렇게 예쁘다고 이렇게 종종 나와주는 건지.

아빠한테 얘기해 줘야지 키득 아빠가 부러워하겠다.


길몽이든 흉몽이든 상관없이 여전히 나를 지켜준 사람이 할머니라는 게 고마우면서 울컥했다.

그러고 보니 나만 할머니 보러 못 갔었네, 혼자라도 다녀와야 하나

고민하며 슬슬 운동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다 핸드폰을 봤다.


오늘따라 광고문자가 많이 쏟아지네, 하면서 안 읽은 메시지를 보는데


왔다.

면접제의 문자가.

다음 주 화요일이 어떠냐며 제안하는 문자가.


서둘러 가능하다 회신을 보내고 얼떨떨한 마음으로 '이게 뭐지.' 싶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이거였어? 나도 불확실한 내 결정이 두려워서 혼자 이 악물고 괜찮을 거다 스스로에게 세뇌했는데

꿈에 나타나 꼭 안아주며 괜찮을 거다 달래주고 결과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어?


할미는 역시, 여전히 날 제일 좋아하는구나



14살부터 19살까지 나는 할머니랑 지냈다.

가장 예민하다는 사춘기시절, 아침에 머리를 말리면 김에 밥을 싸서 접시에 담아 방으로 갖다 줬고

올 때까지 항상 자지 않고 날 기다렸으며, 수능 날 도시락을 싸준 것도 할머니였다.

저년 저거 아주 못돼 쳐 먹었다고 앞에서 뭐라 하면서도 어딜 가나 날 제일 먼저 자랑하는 이었다.


꼬장꼬장해서 오래 살 거라고 어린 마음에 장담했는데

아니, 전혀.

내가 태어날 때쯤 완치했던 갑상선암은 내가 20대가 된 후 재발 했고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하고 때론 얄미웠던 나의 애증 할머니는, 내가 23살이 되던 때

하늘의 별이 됐다.


누구의 꿈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람인데 유일하게 내 꿈에만 나왔다.

작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날, 내 꿈에서 할머니는 작은 아빠를 품에 안고 있었고 모두가 그 주변을 돌고 있었다. 이상한 꿈이군 하고 일어났을 땐 작은 아빠의 부고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가장 애증 어린 손녀, 혹시라도 놀랄까 봐 미리 알려주려고 함이었을까.


종종 꿈에 나타나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작년 추석에도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옆에 날 꼭 끼고 앉아

맛있는 걸 먹여주며 밝게 웃어주었다. 그러더니 스스로 불안한 미래에 잡아먹힐 것 같을 때

여전히 나타나 꼭 안아주며 '네가 어디가 뭐가 모자라서'라고 쏘아대듯, 내 눈을 똑바로 보며

기죽지 말라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말하고 사라졌다.


태어나 처음 겪은 상실이 할머니였고, 돌아가신 분이 꿈에 나온다는 걸 경험하게 해 준 이도 할머니였다.

열댓 명의 손자손녀 중 제일 많이 싸우고 화내고 다퉜던 내가 제일 많이 울었고

할머니 유품의 몇 개를 속 챙겨 여전히 보관하고 있는 것도 나다.

우연히 친척언니가 보내준 통화녹음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며

내 책상 앞엔 여전히 할머니 사진이 붙여있다.

종종 이렇게 꿈에 나타나 밝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런 결과를 보여주려고 그렇게 안았나 싶다.


사람이 진짜 죽을 때는 모든 이의 기억에 잊힐 때라고 하지.

그럼 할머니는 내가 가장 오래오래 기억해 줘야지.

혼자 여행 가는 날, 누가 너 잡아가면 할머니 죽어라고 하면서 말해주던 걸 아직도 기억하니까.


덕분에 조금 더 강해진 기분이다.

하늘의 별이 된 사람이 이렇게 꿈에 나타나 두려움으로부터 날 안아주었는데

못해낼 리가 없지.


내가 가장 오래오래 기억할게.

그리고 혼자 멋있게 만나러 갈게.

사후세계 나는 모르지만, 할미가 있다면 나는 분명 그곳도 괜찮을 거라 생각해.

할미는 내게 나쁜 건 안주는 사람이었으니까.

덕분에 가능하구나, 스스로의 가능성을 조금 믿을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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