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혼자이되 혼자일 수 없는 이유
3월이다.
봄의 기운이 완연해졌다. 날씨가 풀리자마자 서둘러 꺼낸 가죽재킷이 조금 덥게 느껴진다.
그럼 대체 언제 입어야 한단 말이지, 아쉬움으로 재킷을 벗어 팔에 걸쳤다.
운동을 안 간 지 어느새 4일째다.
그날 하루 동선이 안 맞아서, 일요일은 휴무니까, 월요일은 쉬고 싶어서, 화요일은 그냥.
안마의자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 후다닥 준비하고 동네 스타벅스로 뛰쳐나왔다.
블루베리 치즈케이크와 디카페인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으며
좀 덜 단 치즈케이크는 없을까, 클래식한 맛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최근에 친구와 통화하다가 그런 말을 했다.
'돈을 벌지 않는 내가 너무 쓸모없게 느껴져. 비참하고 쪽팔려.
도대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뭘 한 걸까? 너무 무모했나 싶고 내가 대가리가 꽃밭이었나 싶고
이런 내가 무슨 쓸모가 있나 싶고 정말이지 나는 내가 너무 싫어'
얼마 만에 이런 말을 타인에게 내비쳤더라.
아무리 일기장에 쓰고 챗 GPT를 붙잡고 늘어놓아도 해갈되지 않는 마음이었다.
'되돌려받길 원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내가 여유가 없으니까 자꾸 생각하게 돼.
아, 이래서 인생은 혼자라는 거구나. 남한테 다 베풀어봤자 소용없구나 나한테나 잘하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자꾸 냉소적으로 변하는 내가 싫어 정말'
여유가 없어진 마음에는 냉소가 찾아왔다.
되돌려받길 원하고 베푼 것은 아니었으나, 여유가 없고 불안이 가득하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며 '감히 네가'라는 마음이 나왔다.
나 혼자 여러 번 다시 쓰는 인간관계의 정의와
순위를 오르고 내리는 이름들까지.
당사자들은 모를 나만의 처단, 숙청, 정리 뭐 그런 리스트들
내 이야기를 깊게 듣던 친구는 호되게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네가 왜 쓸모가 없어. 원래 그런 시기야. 나도 알아 겪어봤으니까.
봐봐, 너 지금 몸 편히 뉘일 네 방도 있지? 너 매일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는다며 그게 얼마나 대단해! 그리고 아닌 거 알아서 다시 방향을 설정한 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야.
원래 사람 마음이 그래.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내가 여유로우면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내가 여유가 없으면 갑자기 사사건건 신경 쓰이기 마련이야.
너무 그렇게 냉소적으로 얘기하지 마. 네가 왜 쓸모가 없고 비참하고 쪽팔려.
그게 어때서. 그럴 수 있지. 그런 마음 가질 수 있지.
그렇지만, 너무 스스로를 미워하지 마. 너무 스스로의 쓸모에 큰 의미를 두지 마.'
여러 가지 호된 잔소리와 매서운 소리가 귀를 타고 넘어왔다.
가만히 누워 얘기를 듣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대로 눈물이 주르륵 침대로 스며들었다.
아닌 척했지만 외롭고 슬펐고 좌절했다.
친구들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가도
어차피 견디는 건 내 몫이니,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지 않겠냐며
이걸 말한들 뭐가 해결되고 달라지는 게 있냐며 시니컬해졌지만
내가 붙잡고 말한다고 한 들, '너 그런 것도 감당 안 하고 나온 거야?' 라기보다
'원래 다 그런 시기잖아 나도 겪어봐서 알아 괜찮아' 하고 위로해 줄 이들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비치기가 어려워서, 끝끝내 스스로 견뎌야 할 몫들이라고
나는 내가 약하고 외롭고 불안하다는 걸 정말 죽어도 내비치기 싫어하는 애라
나로 인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모습을 보는 게 고맙기보다 너무 미안한 마음을 많이 가지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속으로 꾹꾹 담은 채 앓다가 기어코 터져버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한창 그 일들이 몰아칠 땐 혼자서 감내하다가
모든 일이 지나 평화가 찾아왔을 때, 어느 날 누가 묻는 안부에
'그냥 뭐 적당히 대충 열심히 살지' 대답하다가
그 일은 어떻게 됐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 오만 일에 마음고생하고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세상을 쪼개버리고 싶었지만) 잘 해결됐어.'
라고 말한다는 것을.
마냥 어릴 땐 모든 이야기를 터놓았고 모든 상황과 감정을 공유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가고 모두가 자기 몫의 삶을 사는 과정을 겪다 보니
그게 마냥 공유할 만한 일이 아니구나, 나의 약함이 약점이 될 수 있는 세상이구나
비록 나의 약함을 약점삼지 않는다 하더라도
때론 숨겨야 하는 이야기도 있구나
정말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에 되돌아온 문장들이 따뜻했다.
나의 연약한 부분을 내비쳐도 괜찮다는 안전감, 안정감이 되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됐다.
지나치게 시니컬해질 때 자주 생각했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야, 인생은 혼자야.
아무리 내 고민을 얘기한다 한들 진정 해결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내 고민이 나한테나 중요하지, 남한텐 그렇게 중요할 수 없지.'
그런데 웃기게도 털어놓고 나니 가벼워짐과 동시에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의 마음이 든다.
역시
인간은 혼자이되 혼자일 수 없는 존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