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ins all, 다시 사랑을 부어준다.
나는 종종 갑자기 인간관계를 정리할 때가 있다.
종종이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쌓아왔던 데이터를 비로소 정리했다고 해야 할까.
허울뿐인 관계, 서로가 궁금하지 않은 관계, 알고 지낸 시간에 기대어 놓지 못하는 관계 등등
유한한 인생에 너무 많은 걸 신경 쓰고 살아가기엔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종종 조용히 혼자 인간관계의 정의를 다시 쓰고 리스트를 재업로드한다.
혹자는 그거 너무 잔인한 거 아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방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잊히는 거 아니냐고.
내가 정리하는 이 리스트들은 모두 나를 잊은 관계다.
약속한 적 없지만 서로가 암묵적인 합의 하에 좋은 추억으로 남겨 서서히 잊힌 관계들.
때론 붙잡고 싶어지는 인연이 생길 때마다 그 문장을 속삭인다.
'만날 인연이면 어떻게든 만날 것이고, 안 될 인연이면 어떻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정리하다 보면 정말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남는다.
가끔은 이러다 내 결혼식에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도 종종 한다.
뭐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자소서를 수정하며 혼자만의 취준을 견디는 기간 동안 나는 홀로 싸우고 지고 또 졌다.
종종 인스타 스토리에 근황을 남기고 월 별 회고를 할 만큼 SNS에 열심히이던 때도 있었지만
매번 똑같은 하루는 어딘지 지루해서 올릴 게 없었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SNS에 업로드하는 수가 점점 적어진다.
어쩌면 그건 '이게 다 뭔 의미가 있다고' 해지는 시니컬함일 수도 있겠다.
뿐만 아니라 자주 내가 먼저 상대방을 찾았다.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생각나서 잘 지내냐며 안부를 물었고 얘기를 주고받다 만날 날짜를 잡곤 했다.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그간 지냈던 삶에 대해 나누고 술이 조금 더 취하는 밤이면 새삼 네게 너무 고마웠다는 얘기를 툭 털어놓곤 했다. 아름다웠던 저녁을 토닥이며 다음을 기약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당장 내 밥벌이를 걱정해야 하는 데 어떻게 남의 밥벌이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있었을까. 나의 일상은 지루하고 무료한데 SNS에 비치는 타인의 일상은 어찌나 다채로운지.
봄은 정말 오고 있는 건지, 질투심 부러움으로 뾰족해진 마음은 점점 시커메졌다.
'너나 잘해, 너 자신이나 잘해.' 하며 스스로의 머리채를 잡고 공고를 뒤지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종종 게으르게 누워 자책만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쿠키클래스를 듣는 중인데 쿠키를 보내줄 테니 가족들과 나눠먹으라는 동생과
요새 SNS에 소식이 뜸해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연락했다는 친구.
별 거 아닌 이야기가 이어졌다. 각자 어떻게 사는지 구구절절 얘기하기엔 서로 쌓인 시간들이 많았다.
동생은 쿠키를 보내고 나서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카톡이 마무리 됐고
친구는 현재 자기가 개인 일정으로 바쁘니 나중에 정리되면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는 말과 함께 마무리됐다.
근데 웃기지.
그게 뭐라고, 내가 아주 인생을 헛산 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었구나.
내가 좋아서 베푼 마음에 상대방이 그만큼 하지 않는다 해서 그 사람을 원망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방법으로든 되돌아오는 마음들이 있구나.
베푼 게 헛되지 않았다는 마음보다, 여전히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들이 있구나.
우리는 연결되어 있구나.
인생은 어찌 이리 병을 주면 약을 주는지.
좋은 것만 먹이면 오만방자 해질까 봐 서둘러 시련과 고난을 주입하고
시련과 고난만 주입하면 부서져 깨질까 서둘러 사랑과 다정으로 감싸 안는다.
그래서 재밌나 보다. 그래서 살만 한 거고 기댈만한 것 같다.
나약한 인간이 무리 지어 살 수밖에 없었던 건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서로 간의 시기 질투 미움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로 인한 죽음도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걸 보면, 그 모든 걸 결국 사랑이 이겼구나 생각한다.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굳게 믿는 문장 ' Love wins all '을. 내가 지나가고 지향하는 과정엔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잊은 채 지나치게 시니컬해진 내가 안타까웠는지
삶은 내게 서둘러 사랑을 보여주며 나를 토닥였다.
그치, 역시 내가 믿었던 문장은 틀리지 않았다.
Love wins ALL
오늘도 작은 사랑에 취해 다시금 엉망진창 하루를 일상으로 다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