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과하면 체하는구나

단순하게 살아야지

by 블레어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의 인스타 스토리를 둘러보다 어떤 한 문장에 팍 꽂혔다.


[체하지 않으려면 먹는 걸 멈춰야 한다.]


문득, 요새 나는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과하게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용이 중요하거늘, 적당히가 중요하거늘

언제나 머리와 마음은 따로 놀고 나는 자주 마음에게 지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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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이라는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나는 많은 감정들을 일기장에 토해냈다.

가까운 이들의 성취, 성과를 축하해 줄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평범한 일상에 질투심이 생기고 가지지 못한 것을 탐내자 마음은 더더욱 빈약해졌다.

텅 비어버린 공간엔 스스로를 향한 연민과 동정이 가득 찼다.

과거를 반추하며 우울해하고 가만히 누워 유튜브 쇼츠를 둘러보며 울적해한다.

책을 들어도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였다.

[이력서를 열람했습니다] 알림을 보면 무덤덤해졌다.

머리로는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도저히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만 누워 많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스스로를 던져 넣고

그렇게 계속 가련한 여주인공이 되어 물먹은 나를 삼키고 또 삼켰다.


그건 정말 편안한 날들이었다.

하지 않음으로 인해 완성되는 '~ 될지도 몰라'라는 가능성의 상태.

때론 이런 가능한 상태에 중독됐고

'내가 안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사회 현실이 그렇잖아?' 하며 핑계를 바깥으로 돌리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의 합리화 상태에 중독됐다.


중독은 달콤하고 안락해서 나는 내가 이것에 빠진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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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문장을 본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너무 많은 감정들을 과하게 섭취한 나머지 과부하가 됐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을.

토해낸 줄 알았으나 스스로를 향한 비난과 자책은 다시 내게 돌아와 얹혔고

합리화로 빚어낸 생각들은 다시금 나를 불안에 빠뜨렸다.

안온한 침대, 머릿속 온갖 망상과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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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아침, 공복유산소를 하러 헬스장으로 터벅터벅 향했다.

좋아하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30분을 걷고 뛰고 또 걷고 뛰었다.

그리고 15분간 계단을 힘주어 타며 나머지 15분은 점심 먹을 때 봐야지 하고 아껴뒀다.


묵혀둔 감정이 한 발자국마다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한 발자국 빠져나오니 스스로의 감정에 갇혀 안온하게 불안해하던 내가 보였다.

행동하며 나아가길 좋아하던 사람이 머물러 고여있기를 택한 죄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게 보였다.

내 상황이 맘에 안 들고 내가 좋아하는 내가 아니면 나는 나를 파괴했다.

조각난 나는 생동하는 숨을 통해 다시 이어졌다.

이어진 숨은 다른 행동을 가져와 면접 볼 회사를 서칭하고

예상 질문에 스스로를 답해보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로소 체기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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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게 먹은 날엔 일부러 더 움직였다. 어서 소화되라고.

애사비를 한 잔 타먹기도 했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제자리 걷기를 하거나 스쿼트를 했다.

사부작사부작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을 하자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꼈다.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과하게 먹은 감정은 움직일수록 소화됐다.

세상 스스로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몰던 날에서 벗어나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며

'비관적 해결책'을 강구하고 '반드시 타이밍은 올 거야'라고 다시금 마음을 잡는다.


역시, 단순할수록 빠르게 해결된다.

매번 방구석 한편에서 생각만으로 동굴을 짓기보다

'일단 뛰어' 마음으로 나가 뛰고 돌아오면 거짓말처럼 활력이 돌아

순식간에 해치우고, 보다 현실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낸다.


그만 먹어야지.

감정도 생각도 의견도 마음도.


체하지 않으려면 먹는 걸 멈춰야 한다.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잠금화면이 돼버린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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