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아니어도 되는 마음
얼마전 친구의 생일이었다.
예전과 똑같이 기프티콘을 보내고 중간정도 길이의 장문의 카톡을 보내려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내 코가 석자가 한 푼 한 푼이 아쉬웠다.
생활비를 아껴야하는 마당에 경조사비는 정말 쉬운 금액이 아니다.
지금 해외에 있어 오프라인으로 만나기도 어려운 친구라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메일주소를 물어봤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메일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고 친구는 의심없이 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그리고 생일 당일, 나는 노트북을 열고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한 줄 한 줄 문장을 만들었다.
물리적 거리가 만들어낸 온라인으로 보내는 아날로그였다.
생일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요즘 내 상황에 대해 조곤조곤 늘어놓았다.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으며 지금의 마음은 어떠한지.
네가 내 친구여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지난번 통화에 나는 조금 울었다는 말도 더했다.
좋은 선물을 주고 싶었지만 당장 내 코가 석자가 이렇게 긴 글로 마음을 전하며
한국 오는 날 아주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는 약속도 쾅쾅 문장에 박았다.
정말 긴 호흡의 글들이 이어졌다.
어떤 문장은 넋두리가 담긴 독백이었고, 어떤 문장은 상대방을 향해 담은 고백이었다.
또 어떤 문장들은 함께 했던 날들을 추억하며 나누는 대화였다.
아주 소중한 것을 보내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손끝에서 조심스럽게 단어가 피어올랐다.
긴 호흡의 문장들 속 나는 작은 맹세를 약속했다.
'생일축하해. 축하했던 날들보다 축하할 날들이 더 많도록 오래오래 알고 지냈음 좋겠어.
세상에 고정적이고 영원한 건 없겠지만
언제나 네 옆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거라는 문장은 영원하다는 것을
네게 약속할게.'
그건 내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맹세이자 영원한 약속이며
나의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애정표현이자
지난날에 대한 고마움이었고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기대였다.
한번 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메일을 마무리하고 친구에겐 메일 확인을 해달라고 했다.
답장이 올까? 기대를 잠깐 했지만
애초에 답장을 바라고 쓴 메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
종종 도서 서평 당첨 안내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평소처럼 로그인 했던 토요일 밤.
RE : 이 붙은 답장이 도착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화면을 터치했고
거기엔 아날로그만이 만들 수 있는 진득한 애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또 조금 울었다.
몇 개의 문장을 계속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외로웠던 마음에 단어를 새겼다.
좋아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할 때 나는 주로 물질적인 걸 활용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겐 꽃다발을
서울을 자주 안가는 친구에게 유명한 베이글을
애기엄마가 된 친구에게 모두가 아이를 볼 때 난 널 챙기겠다며 커피머신을
가끔 안부를 물으며 만날 땐 동네에 맛있는 빵이나 디저트를
종종 만날 땐 밥이나 커피를
어쩌면 물질적인 걸 수반해야 표현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란건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물질적인 건 가장 드러내기 좋은 방법이자 수단이니까.
그런데, 굳이 그런걸 쓰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친구 생일에 그럴싸한 선물 하나 주지 못하고
이렇게 구구절절 메일을 쓰는 내가 싫었고 쪽팔렸다.
뭐랄까, 선물을 반드시 줘야한다는 어떤 법칙같은 건 없지만!
그런데 오히려 친구는 '반드시 물질적인 걸 수반할 필요는 없다'고 딱잘라 말하며
네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반드시' 알 것이라고 대답해줬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써내려간건데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받았고 알게됐다.
요즘따라 알고 있던 문장과 단어들을 새로 쓰는 날들이 많아진다.
냉소를 버리고 사랑을 택하니 안보이던 의미가 슬금슬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반드시 물질적인 걸 동반할 필요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냥 갑자기 생각나 묻는 안부, SNS을 보다 알게 된 근황으로 물꼬트는 이야기들,
우연하게 시작된 대화에서 알게되는 마음, 서로 마주보고 기울이는 술잔에서 피어나는 진심들이
분명 있었다.
함께한 시간, 생각하고 생각했던 시간, 염려하고 보살피는 마음
그리고 그것들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손과 입까지.
그거면 충분했다.
음 역시
아날로그는 사랑을 동반한다.
이러니 아날로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