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인데 성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계약직이라 끝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
'어차피 난 곧 끝날 사람이니까 뭐 ㅇㅋㅇㅋ내가 봐줌'
의 마음이었는데 분명
3주차가 되자 나는 세상 성실한 사람이 됐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알아서 업무 일지를 쓰며 매일 하는 일들을 정리하며 대략적인 프로세스를 파악했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라는 이유로 노션으로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물론 자주 안보는 것 같길래 인수인계서에 모든 내용을 옮겨적는 것으로 바꿔치기 했지만.
당일 해야 할 일이 주어지면 멍 하게 앉아 있기 보다 이전 내역을 참고해서 해보면서 사수에게 컨펌을 받았다.
'이런 일이 잘 없어요' 하는 일이 한 달안에 우르르 일어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한 손엔 GPT, 한 손엔 MS Office를 휘두르며 맹렬하게 맞서싸우고 있다.
오늘 갑자기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았다.
잠깐의 빡침과 분노가 일었다.
그리고 퇴근길 마음을 달리 먹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아주 기깔나게 해주지.'
참
이건 내 계획에 없던 마음이다.
이건 내 2025년 하반기에 없던 이상적 또는 현실적 나의 모습이다.
이건 정말이지
내 상상 속에도 없던 내 모습이야!!!!!!!!!!!!!!
1년의 공백, 70군데 지원, 12번의 면접과 12번의 실패.
다 포기할 때 쯤 들어온 이곳.
우습게도 '제발 붙여주세요!' 가 아니라 '그래 될대로 되라~'의 마음이었다.
'왜 수요일 부터 출근 가능하세요?' 라는 질문에
'머리해야 해서요.' 라고 답할 정도였다.
(사실이다. 나는 실제 출근 직전까지도 일정이 와르르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돈은 벌어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으니
생활비 수단으로 생각하자, '돈'은 필요하니까 의 마음으로 수락했던 계약직이었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며 하고 싶은 일을 도모하겠다고 깊게 다짐했다.
다짐은 3주차가 되자 산산히 부서졌다.
나름 꼼꼼하다고 생각했는데 연이어 발생하는 실수에 자괴감이 몰아쳤다.
잔뜩 주눅든 마음을 억지로 끌어모아 체크에 더블체크 트리플 체크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발견되는 작고 디테일한 놓침.
'너님은 빠르게가 아니라 꼼꼼하게가 우선이에요'를 포스트잇에 써서 모니터에 붙여놨다.
일요일 밤이 되면 회사 일이 생각났다.
해야 할 일, 놓치면 안되는 일, 보고해야 하는 일 같은 것들이.
'어떻게'와 '효율적'을 생각하고 'AI활용'과 '업무툴'을 고민하는 데
그런 스스로가 낯설고 어이없었다.
야 누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
계약직이 누가 그렇게 열심히 일해
누가 알아준다고
그런다고 정규직해준대?
회사에 몸바치지 않기로 했잖아.
회사일에 모든 가치를 투영하지 않기로 했잖아.
회사에 많은 마음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잖아.
그러게
나는 또 그러더라고
다만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도 아주 쏙쏙 뽑아먹겠어.' 의 전투가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이전 회사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 PPT로 기깔난 보고서 만들기, 매뉴얼과 프로세스 정립,
AI를 활용한 효율적 업무 도모 등 내가 여기서 겪고 하고 배우고 만든 이 모든 걸 내 이력서와 자소서에 써버리겠다!!! 는 마음이 아주 활활 타오른다.
이 마음이 활활 타올라 꺼지기 전
물론 가끔 사그라들겠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들이고 ,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1순위라면
'이왕 하는 거 내게 이득인 채로 하겠어'의 마음이다.
계약직인데 세상 성실한 사람의
승질머리를 죽이지 못한 이야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