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닿고 싶은 세계

09. 여백을 채우는 방법

by 블레어

바들바들 떨면서 어시스트 풀업을 했다.

시티드 로우와 랫풀 다운까지 야무지게 해낸 뒤

세찬 한숨을 여러 번 뱉으며 천국의 계단을 30분 탔다.


씻고 나오니 서늘한 겨울바람이 옷 사이로 스민다.

한껏 내뱉은 숨이 하얗게 부서졌다.


멍하다.

아무 생각도 안 한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을 정도로

뇌가 텅 빈 기분이었다.


문득 이 빈 기분을 채우고 싶지 않아 졌다.

텅 빈 채로 나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나의 빈틈이 싫었다.


빈틈, 단점, 부족함, 결핍 등 다른 단어로 쓰여도

내겐 같은 의미로 와닿았다.

어떤 영역에선 빈틈이었고, 어떤 부분에선 단점이었다.

때론 부족함이었고, 깊은 심연 안의 결핍이었다.

그 모든 걸 뭉뚱그리면

내가 미워하는, 절대 사랑할 수 없는 내가 있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채우러 다녔다.

읽고 쓰고 만나고 움직이고 웃고 표현하고 애쓰면서

메우고 채우다 보면 언젠간 반드시 완전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꽤 오래도록 채워지지 않았다.

하나를 채우면 다른 데서 결핍이 새어 나왔고

결핍을 채우면 열등감이 피어올랐다.


한 사람 안에 이렇게 많은 틈이 있을 수 있다니.



완벽해야만 틈이 없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선택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완전해야 한다고 나는 꽤 오래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텅 빈 공간들을 바라보기로 했다.


텅 비었기 때문에 채우려고 아등바등거린 시간의 조각이 보였다. 끝내 한 작품이 되진 못했지만 파편으로 나마 존재하는 조각은 그 자리에서 반짝였다.

조각의 모서리는 공간 속에서도 소란스럽게 흔들려서

어느새 둥근 모서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둥근 조각을 쥐어 선캐처로 만들었다.


내가 갖고 있는 반짝임이 조각을 마주하자 눈부신 빛으로 부서졌다. 파장이 만든 반사는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눈이 멀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쌓아 올린, 혼란의 파장이 만든,

또 다른 반짝임이었다.


빛으로 채워진 공간은 풍성했고 풍요로웠다.


아, 이렇게도 채울 수 있구나

이렇게 채워진 여백은 이토록 아름답구나


나는 이제 내 안의 여백을

내가 가진 또 다른 반짝임으로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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