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처럼 유치하게 어른처럼 내일은 없이 (1)
일정이 확정됐다.
8월 14일~15일. 장소는 가평. 총 인원 9명. 두 명의 차를 빌려 알아서 만난 뒤 가평에서 만날 것.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후루룩 예약한 숙소와 각자 사는 곳을 고려해 차를 어디서 탈 지를 정했다.
어디한번 기깔나게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주루마불'을 구매했고 물총싸움을 위한 개인무장을 얘기했다.
처음에는 '물총싸움'이란 소리에 내 귀를 의심했었다. 물총싸움? 나 그거 유년기~사춘기 시절에도 안하던 건데? 그걸 내가 성인이 되서 이들과 한다고? 갈수록 혼란이 오는 이 모임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짐을 어떻게 챙겨가야하나 고민하며 모임 내의 언니와 얘기를 주고 받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는 건 아마도 '친구'와의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보통 여행이라 하면 친구, 연인, 가족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나들이가 아니던가?
좀 더 영역을 넓히자면 회사 내에서 가는 워크샵이라던가, 출장이라던가.
회사 내에서 가는 워크샵, 출장이여도 어쨌든 매일 얼굴을 마주보는 이들이니 막 어색하진 않지 않을까?
(물론 나는 회사 내에서 워크샵도 출장도 가본 적이 없다. ^ㅡ^)
그런데 이렇게 외부 모임에서 만난 이들과 1박 2일 MT라.
낯선이에게 편하게 말을 걸고 높은 사회성을 보여주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름의 인간관계의 바운더리가 있기에 , 그리고 아무나 그 바운더리 안에 들이지 않는 나로써는 이 여행 자체가 설렘과 긴장, 충격 오만가지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총체였다.
1. 우리는 사실 만난지 얼마 안됐다. MT를 기점으로 3개월째였고 술을 나눠마신건 5번 정도?
2. 서로의 개인사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소개팅하는 남녀가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정도.
3. 오로지 모임 할 때만 만나며 따로 사적으로는 만나지 않는다
4. 5번 만나면 자주 만난거 아냐? 라고 하기엔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최소 6~7년이상 알게된 친구들이다.
5. 사실, 난 이렇게 인원 많은 모임을 안좋아한다.
6. 물놀이는 더더욱. 물총싸움? 내 인생에 물총싸움은 단 한 번도 없었다.
7. 가고 싶은데 가기 싫고 궁금한데 어색할 것 같고 그냥 잘 모르겠는데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가고싶기도 하고 오묘하고 복잡하고 정체성 없는 이 감정의 널뛰기가 설레고 벅차고 불편해.
이렇게 널뛰는 감정을 또 언제 느껴볼까.
문득 내가 이들에게 그만큼의 진한 애정을 갖고 있기에 이런가? 생각이 들었다.
그저, 생전 처음 해보는 외부활동이, 그들과 친해지는 과정이, 살면서 마셔온 술 보다 3개월간 더 많이 들이킨 술이 처음이라 설레고 두근거려서 그런건지.
혼란스러움과 설렘을 가득 안은 채, 날짜가 다가왔고 내 차에 함께 가기로 한 이들에게 조심스레 갠톡을 하며 만날 곳과 시간을 협의했다.
사실, 나는 그 갠톡 조차 부담스러웠지.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은 갠톡을 안하는 타입인데 이건 어찌할 수 없으니 조심스럽게 '낰낰' 선생님. 이라는 호칭으로 첫 갠톡의 포문(?)을 열었다.
-
OO역 12시반.
차마 집 앞까지 픽업하러 가기엔 나의 운전실력이 못미더웠기에 집 근처 역으로 오라고 했다.
전 날 몸이 아파 합류하지 못한 막내를 제외하고 총 8명이 참석하게 됐다.
가기 전까지 네비를 얼마나 봤는지, 지도를 얼마나 봤던지. 하필 우리가 MT를 가기로 했던 때에는 장마가 겹쳤고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으며 마을이 잠겼다거나 차가 잠겼다는 온갖 재해 뉴스가 넘치던 날이었다.
나름 운전을 잘 하기는 하지만 혼자 장거리를 가본적은 없었기에 집에서는 걱정이 이만 저만 난리도 아니였다. 가지마라, 취소해라 온 갖 얘기가 들렸지만 예전부터 나는 엄마아빠 말을 안듣는 장녀였기에
'어떻게 취소해 천천히 가도 가야지.' 로 일갈하고 집을 나섰다.
조금은 흐린날씨. 비는 오지 않지만 구름이 낀 하늘을 바라보며 시동을 걸었다.
그렇게 MT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