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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7. 2022

우리는 이걸 늦바람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아이처럼 유치하게 어른처럼 내일은 없이 (3)

주섬주섬 아디다스 반팔티와 나이키 반바지를 입었다. 가방 속 지퍼백에 담아온 샌들을 꺼냈다.

당최 물총은 내 타입이 아니였길래 '저는 비누방울 불게요 옆에서 물총쏘세요' 하고 진짜 비누방울을 챙겼다.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회색빛으로 물든 하늘, 이전에 비가왔기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계곡물.

각자 젖어도 되는 옷으로 갈아입고 한 손에는 거대한 물총부터 작은 물총까지 바리바리 챙겨든 이들이 하나 둘 씩 계곡을 향해 내려갔다. 



꽤나 자주 빈번하게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며 친분을 다졌다고는 하지만 

맨정신에 어엿한 성인들이 하는 물총싸움은 어쩐지 어색했다.

그러나, 어딜가나 모임의 귀요미는 있고 모든이의 총애를 받는 사람은 있는 법


이 모임에도 남녀노소 상관없이 애정과 총애를 받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이 물총싸움에 정말 진심이였다.


모두가 물 밖에서 물을 담고 물총을 쏠 때 그는 정말 군대에서 훈련하 듯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정확하게 사람을 저격했다. 날쌔기는 또 어찌나 날쌔던지 열에 뻗쳐 잡으러 가면 삼선 슬리퍼를 신고서 요리조리 잘만 도망다녔다. 그의 날쌘 움직임과 진심과 광기가 서린 물총 덕분일까 어색하던 분위기가 풀어지고 어느새 우리는 어린시절로 돌아갔다.


계곡에서 발리볼을 하고 못받은 사람이 물장구를 맞고, 장소가 협소해 어떡하지 하다가 펜션 내 수영장으로 향했다. 슬리퍼로 경계를 나누고 데덴찌로 편을 갈랐다. 1:0 2:1 4:5 왔다 갔다 랠리를 하다가 코트 체인지도 하고 12:12 듀스라며 몇 번 공을 더 튕겼다. 코트 체인지 후에는 여기 터가 좋지 않다며 풍수지리를 따졌고 

누군가 반칙을 했을 때 저기 찍어둔 타임랩스를 돌려보자며 비디오 판독을 얘기했다.


슬슬 지쳐갈 때 쯤 단체사진을 한 장 찍자며 찍고 인생샷 건져줄게 저리로 가봐 이러면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줬다. 숙소에 체크인 후 계곡에 내려간 게 4시쯤인데 다 놀고나니 5시였다.


겨우 1시간 밖에 안지났어? 라고 하기엔 꽉 채워 알차게 놀았기에 우리는 오늘 밤이 길기에 밤을 위해 서둘러 씻고 저녁을 먹자고 얘기를 모았다.



화장실은 하나, 사람은 8명. 수건은 각 한 장씩. 

같이 씻어도 상관 없는 사람은 같이 씻고 그게 아닌 사람은 각자 씻기로 하고 서둘러 씻기로 했다.

씻고 나오는 동안 바비큐용 불을 지펴달라고 했지만, 주인아저씨는 불이 금방 타므로 다 씻고 나와 모든 준비가 되면 얘기해달라고 했다. 의외의 부분에서 대쪽같았기에 우리는 수그러들 수 밖에 없었다.


젖은 옷을 대충 짜서 펜션 뒤 건조대에 널어두고 깨끗하게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린 뒤 바깥으로 나갔다.

훅 느껴지는 열기와 들어오지 못한 채 밖에서 녹아내리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혹시나 술이 부족할까 싶어, 취하기 전에 사오자는 얘기에 기운을 차린 S가 차를 끌고 나섰다.

당시 MT의 총무역할을 했던 J도 함께. 뭐 더 필요한 거 없냐는말에 이때다 싶어 외쳤다.


"수박이요! 수박!!"


바깥에는 바베큐 준비가 한창이었다. 더운 열기와 습한 온도로 개운하게 씻었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주르륵 흘렀다. 발 밑에 놓인 모기향을 발로 차지 않을까 염려하며 테이블 위에 상추, 쌈장, 식기구, 술잔이 놓여졌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판 위로 고기가 얹어지고 불판 앞 G와 S는 땀을 뻘뻘흘리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불판 앞에 있다가 안되겠다 싶음 자리에서 비켜나 난간에 기대 땀을 식히다가.


둘의 노고가 담긴 고기는 맛있었고, 장보기를 다녀온 이들을 반기며 우리는 잔에 술을 채웠다.



또래였지만 그 중에서도 S는 우리 중 나이가 가장 많았다.

나는 그의 나이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번 MT를 통해 저게 바로 연륜과 짬이구나 라는걸 느꼈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블루투스 마이크.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게 그의 트렁크에서 나왔고 쏟아지는 빗소리와 타닥타닥 타오르는 숯불, 송골송골 맺힌 땀과 공기에 가득찬 습기, 그리고 은은한 조명과 함께 나오는 음악까지. 


무더웠고 습했으며 씻은게 무색할만큼 끈적거렸지만 우리는 마치 대학생때로 돌아간 것 처럼 끊임없이 술잔을 비우고 채우며 오늘 하루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은은하게 타오르는 열 앞에서 마셔서인지 금방 훅 취하는 기분이 들어 우리는 실내로 들어갔다.

빵빵한 에어컨에서 나오는 냉기가 숙소안을 감돌고 있었다. 아, 역시 문명 최고 기술 최고다.


마땅한 상이 없었기에 바닥에 먹고 마시던 술과 음식을 늘어놓고 굽다 만 고기를 후라이팬에 후다닥 구워냈다. 투둑 하고 과자 봉지가 뜯어졌고 오늘을 위해 로켓배송으로 샀다던 주루마블까지 펼쳐졌다.


자, 물놀이도 끝났고 1차 술자리도 끝났으니 이제 남은건 긴 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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