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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30. 2022

우리는 이걸 늦바람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이처럼 유치하게 어른처럼 내일은 없이 (4)

정신차렸을 때 시계는 '4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저 주방 가운데 둘러앉은 이들 가운데는 여전히 술병이 가득했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거지'


주량 초과로 잔뜩 취한 채 혼자 털레털레 거실 소파에가서 그대로 쓰러진 기억이 났다.

더이상은 진짜 한계였기 때문.


내 옆에는 나의 최애(?) S가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반복하며 키득키득 거리고 있었고

그의 깐족거림에 잔뜩 씅난(?) 이들의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술은 언제나 물을 부르더라.

급격한 갈증에 자다가 일어나 물을 마시러 갔을 때 끝까지 생존해있던 이들이 말했다.


'솜 벌써 쓰러지다니 실망이야'

'어 맞아 안봐주려다가 봐줬어'


"와 진짜 이런말하면 안되는데 미친놈들인가..."


육성으로 욕이 나왔다. 아니 어떻게 술을 새벽 네시 반까지 마시지?

저기요, 저희 체크아웃이 11시에요. 당신들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안자냐고 물어보니 이제 자려고 한다면서 자리를 정리하더라.

절레절레 평범한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술자리.


리더는 모두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에어컨 밑으로 가 잠을 청했다.

불꺼진 거실, 소곤소곤 작은 얘기가 잠시 오가더니 금새 모두가 잠에 빠져들었다.


-


그렇게 눈을 떴을 땐 8시 언저리 즈음. 

눈을 뜨니 몇명이 잠에서 깬 채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왠지 안에 있기 그래서 밖으로 나갔다.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데크에 앉아 우리는 하늘을 바라봤다.

'와 되게 좋다'

'구름 흘러가는 것봐'

'오늘은 비 안올거 같은데.'


유유자적이란게 딱 이런걸까.


아래로는 시원하게 내려가는 계곡소리가, 머리 위로는 흘러가는 구름이.

저쪽에서 재잘재잘 들려오는 아침 소음이, 술에 쩌든 온 몸을 시원하게 훑고가는 바람이.


모든 것이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슬슬 하나 둘 씩 깨울때가 되지 않았냐며 한량처럼 눕듯이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


어제 밤 혼자 조용히 스윽 자러 간 J오빠가 혼자 사부작 사부작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고, 분리수거를 착착 해내고 , 쓰레기 정리를 하고.

그 옆에 가서 사부작 사부작 도우면 그는 스윽 내가 들고 있던 걸 뺏어가며 쉬라고 했다.


자기는 이럴려고 어제 일찍 잠든거라면서 자기가 해도 마땅하다고 했다.


모두가 J 오빠의 배려와 매너에 감탄했고 좀비처럼 누워있는 이들을 깨우며

서둘러 숙소 정리를 시작했다.


-


" 해장국집 찾아봐 빨리......... "

" 해장국 국물 딱 세입만 먹고싶다. 세 입만 먹고 자고 싶어 "

" 와 나도 "


모두가 핸드폰을 키고 해장국집을 찾고 있었다. 새벽 네시반까지 이어진 술자리의 결말은 해장국이었으니.

원래대로라면 아침에 라면을 끓여먹고 가자고 했던 것 같은데 이미 새벽 술안주로 라면을 해치웠다.

야물딱지게 삼분카레, 된장찌개, 햇반까지 다 먹었더라구.


* 여담이지만, 술안주로 3분카레랑 된장찌개에 밥비볐던 S의 아이디어는 최고였다.

역시 연륜은 무시못하는구나 생각했던 순간 (?)


머리를 맞대고서 둘러본 끝에 해장국집을 찾았다. D가 영업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했고 영업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분명, 문을 열었다 했는데 도착하니까 문을 닫은게 아니던가 ^ㅡ^.

속쓰린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문 연 식당이 대체로 없었다.

이 날 대체공휴일이여서 그런건지, 휴가지라 그런건지. 방황하다 마침 문 연 순두부집을 발견했고

우리는 우르르 순두부를 먹으러 들어갔다.


"해장국 딱 먹고 카페가는건가 우리"

"아 그런거 얘기하지마 진짜 간다 말야"

"빠지타러가야지. 가평왔음 빠지잖아."

"내일 하루만 더 있었음 우리 타고 갔을걸?"

"근데 우리 진짜 카페 가?"

"단톡에 어디 갈 지 올려놨는데?"


이곳은 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곳. 단톡에는 D가 올린 카페가 올라와 있었다.

그래 가자 가! 뚝배기에 팔팔 끓여나온 순두부를 호록호록 말없이 먹으며 우리는 쓰린 속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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