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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3. 2023

우리는 이걸 늦바람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마지막 모임 : 참여에 의의를 둔 8월 넷째주 토요일

동대구역에서 수서로 가는 SRT를 끊었다. 

거짓말처럼 독서모임 정기 마지막 모임 날 외할머니의 팔순 잔치와 겹쳤다.

점심 식사만 하고 온다기엔 너무 먼 대구. 꽤나 이 모임에 애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다 올때 기차타고 알아서 오겠다고 엄마아빠에게 선언했다. 엄마아빠는 그러라 그랬고 나는 SRT어플을 깔고 기차를 예매했다.


토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화장을 하고 팔순잔치라 발목까지 오는 긴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셋팅했다.

집에서 대구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추 3시간. 아빠 차타고 갔다가 돌아올 땐 혼자 기차타고 오는 코스였다.

새벽부터 온 가족이 부산스럽게 집을 나섰고 충청도를 지날 때 즈음 우리는 그제서야 알았다.


추석 전 미리 다녀오는 사람들이랑 일정이 겹친다는 것을.


7시쯤 출발한 차는 11시 30분쯤이 되서야 겨우 도착했다. 부랴부랴 차를 대고 길을 헤매다 겨우 식당에 도착했다. 이미 한바탕 식사를 하고 계시는 친척분들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1시 즈음 자리가 마무리되고 겨우 1시간 30분 식사를 위해 달려온 우리 가족은 다시 경기도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호텔 식당에서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동대구역으로 향한 나는 피곤함을 물리치고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를 주문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불현듯 '이게 뭐하는거지' 현타가 밀려왔다.


새벽부터 차를 타고 동대구에 갔다가 1시간 30분 잠깐 앉아있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하필 강남 도착하면 5시 반즘으로 예상됐다. 정기모임 시작시간이 3시고 끝나는게 6시니까 

그냥 밖에서 뻐기다가 뒷풀이만 갈까? 무수한 고민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샘 저 그냥 가지말까봐요'

'아니에요 오늘 분위기 좋아요 와요 일단 와요 샘'


고민하며 카톡을 보냈는데 파트너도 친한 언니도 일단 오라고 얘기했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자.

수서역에 내리니 택시 줄이 길어 엄두도 못내고 결국 먼 길을 걸어 분당선을 타러 갔다.

경기도 - 동대구 - 수서역 - 선릉역 - 강남역으로 이어지는 코스에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짜증이 치솟았다.


내가 뭐하는거지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이를 악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길게 빨아들이고 얼음을 와작와작 씹은 채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고 

문을 두드렸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정기모임은 참석하길 잘했다.

이 날 [놀러오기]를 통해 두 분이 새로 오셨는데 두 분 모두 자기 얘기를 적절히 녹여가시며 말씀을 잘하셨다.

마지막이라고 파트너가 준비한 책갈피와 작은 편지도 함께 받았다.


뒷풀이 장소로 이동해 앉다보니 최애조합 멤버로 앉을 수 있었는데

인간 관계, 회사 이야기, 독서모임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을 나누며 무수히 많은 술잔을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적절하게 터지는 웃음, 넘지 않는 선 그 안에 담긴 온기와 다정까지


이들에게 받은 다정과 마음을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하다가 편지를 썼다.

디지털로 꽉꽉 채워진 세상에서 아날로그적인 손편지가 주는 감동은 따뜻하니깐.

친구들에게 곧잘 꽃선물도 하는 편이라 모두에게 한송이씩 장미꽂을 선물했다. 편지와 함께.


4개월간 덕분에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일상 속 시간을 내어 한 시절을 공유해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정기모임 마지막 뒷풀이에선 놀러오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내 생일 파티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술 기운을 빌려'


말하지 않음 모르고 알아주길 바라면 안되니까.

짧은 생에서 표현할 수 있는 건 표현해야 상대방이 알아주고 받은 표현 만큼 상대도 나도 자라니깐.


'술 기운'을 빌려 서로에게 고마운 점과 소감을 전했고 특별히 이 모임을 이끈 파트너에게도 고생했다고 모두가 토닥였다. 인원이 반토막나며 그가 힘들어하는 걸 모두가 지켜봤기 때문에.



덕분에 끝내주는 생일 파티도 했고 10월엔 함께 놀이공원 나들이도 다녀왔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선 송년회 대신 신년회를 함께 하기로 했다.


모험같은 도전이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두려워했던 것 보다 설렌 일들이 더 많았던 생에 첫 외부활동은 그렇게 잔잔히 막을 내렸다.


모두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에 공통으로 담겼던 말을 끝으로 나의 작은 일탈을 마무리한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오래 봅시다.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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