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을 대비한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들이 또 생겨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쟁입니다. 아이가 잠들어야 온전히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삶입니다.
발달장애아이인 아이가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는 매일, 매 순간 숨 막히는 사건, 사고들이 정말 많습니다.
눕거나 뛰거나 둘 중에 하나였던 시절의 꼬꼬마 아지는 달리기가 무척이나 빨랐어요.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였답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놀다가 떨어진 가방을 줍는 사이에 사라진 아이를 찾느라 경찰을 부르기도 하고, 손을 놓치면 그대로 무단횡단을 하며 금새 저 멀리 뛰어가는 아이를 잡아 달라며 소리친 적도 여러 번이었답니다.
정말 아찔했던 에피소드 중에서 베스트 5 중에 하나는 2019년에 있었어요.
제주도에 사는 남동생 가족이 오랜만에 육지로 올라와 남동생네 가족과 미혼인 막내 여동생, 그리고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아이를 데리고 웅진플레이도시 스파 워터파크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어요.
평일에 두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여유 있게, 안전하게 신나게 놀았었는데, 주말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아이와 왔던 적이 있기에 별일 있을까 하는 안일함에 빠져서 둘째 아지를 순식간에 잃어버렸었답니다. 야외 풀로 나와서 아이는 시원한 수영장 쪽에서 놀고, 저는 건너편 따뜻한 온천에 앉아 있는데 잠깐 큰 딸아이를 살피는 사이에 아들을 눈에서 놓치고 20분 정도를 찾다가 스파 내 미아보호소에 전화해서 미아가 있는지 확인하였는데 아무 연락이 없어서 또 시간을 허비하고 마침내 경찰에 연락하였답니다. 다행히 경찰이 오는 동안 스파 직원이 남자 탈의실에서 찾아 주긴 했으나, 둘째 아지를 눈에서 잠깐 사이에 놓치고 그 찾는 과정 중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아이가 자폐 중증이면... 정신 차리고 집에 있어야지... 뭐 하러 꾸역꾸역 나와서 아들을 잃어버렸나 하는 자책과 혹시 아이가 내가 입힌 구명조끼를 벗고 물에 빠져서 잘못됐으면 어떡하나 하는 아득한 생각 등으로 말 그대로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어요. 동네에서 잃어버릴 때와 다르게 넓고, 사람 많고, 물 많은 곳에서 아이가 느낄 공포까지 생각하니 뇌까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어요.
한 시간 만에 아이를 찾았고, 도착한 경찰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는 너무 기운이 빠지고 허기져서 그 와중에 아들과 함께 밥 주문해서 먹고는 힘이 쭉 빠져 저는 씻지도 못하고, 아들만 겨우 씻겨 라커룸에 둘이 함께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그저 눈물만 흘렀습니다.
스파에 놀러 온 다른 아이들은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며 놀고 있을 텐데...
아들은 수영모도 잃어버리고, 구명조끼도 잃어버리고, 수영복이 차가워져 집에 가자는 시늉을 하는데...
아들 모습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너무 밉고 힘들다는 여러 가지 생각을 곱씹으며 내린 결론은 하나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결심! 문신을 하자!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애타고 찾고 있는 아들입니다라고 등에 새기자.
아이 이름과 전화번호를 팔목에 새기자.. 왜? 사랑하니깐...
심한 자폐아이니깐 집에 널 두어야 한다는 건 너무 싫다. 그건 너무 싫다. 네가 이토록 미치도록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데, 네 또래 친구들이 하는 그 모든 재밌는 활동들 너와 함께 하며 계속 추억을 계속 만들고 싶다. 그 간절함.. 절박함..으로 문신을 하자라는 결심을 했어요.
그래서 그날 발달장애부모들의 커뮤니티 카페에 스파에서 있었던 일들을 올리면서 도움을 요청했답니다.
아이가 문신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워낙 힘이 센 자폐 중증 남자 아이라 팔찌. 목걸이 모두 뜯어냅니다. 아이를 길에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도와주세요.
그날 그 큰일을 겪은 후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다들 내가 잘못한 이야기로 마무리할 테고, 자기 이름도 말하지 못하고 자기가 누구인지도 인지를 못하는 자폐인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반대하고 무조건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아이의 아빠에게 더 큰 반대를 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괴로웠어요.
나중에 큰아이가 이야기해서 가족들도 알게 되었지만 딱 거기까지. 도움을 주기보다는 그저 아이를 데리고 나가지 말라는 가족들이 저를 가장 괴롭게 했기에 함께 살아도 도움을 바라지 않았어요. 만약에 이날 아이의 아빠가 함께 갔더라면 남자 탈의실에 가서 금방 찾았을 텐데... 함께 가기는커녕 현관물을 나가는 저에게 대고 아이들 데리고 나가서 잃어버리면 다 제 책임이라는 어이없는 말을 내뱉던 남편이 정말 미웠습니다.
한편으로는 둘째 아이가 여러 번 갔던 곳이라 탈의실에서 나가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것, 아이를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었다는 것, 이 그 두 가지로 위안 삼아 잠들었어요.
자기가 누구인지 인지 못하고, 발화가 거의 없는 자폐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남들에게 말 못 할 이야기들이 정말 많지요. 아마도 가까운 남편에게까지 말 못 할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둘째 아이와 24시간을 붙어있으면서 하루 동안 100가지 에피소드가 생긴다면, 그중에 1-2개가 포스팅되는 좋은 추억들이고 그 외 98가지 일들은 말 그대로 사건, 사고인 삶을 살았어요. 아이가 잠들지 않으면 눈을 감지 못하는 피곤한 날들이 계속되었고, 아이의 돌발 상황에 잔뜩 긴장했다가 아이의 아빠가 와야만 그래도 아이를 지켜볼 눈이 2개가 더 생겨서 조금은 마음을 놓고 화장실을 갈 수 있었던 나날이 일상인 삶.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하루가 고되고 고된 나날들.
그래도 사랑하기에 좋은 추억들을 쌓아가고 기록하며 오늘도 내일을 살아갈 준비를 합니다.
2019년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잠들어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때에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서 제주에서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내며 정말 행복한 순간을 다시 곱씹었답니다. 매일 행복할 수 없고, 매 순간이 반짝반짝 빛나지 못하지만 제주에서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내며 한 장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 사그라들지 않는 보석으로 저에게 남아 있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겼고, 브런치에 다시 글을 발행함으로 사람들 앞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네요.
딸아이와 함께 손잡고 걷고 있는 곳은 초현실주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주었던 신창싱계물공원이랍니다. 하늘을 닿을 듯 높은 풍차와 하늘에 제주 바다가 고여 있는 듯한 짙은 푸른색의 하늘, 그와 대비되는 구름 덕에 보면서도 눈을 의심하게 되는 곳이었어요.
연필로 대략적인 스케치를 먼저 했어요.
그리고 코픽 멀티라이너를 이용하여 산책로의 나무 난간들을 더욱 섬세하게 그려주며 마무리했어요.
처음엔 풍차를 그려 넣으려고 했지만 딸아이와 손 잡은 모습에 집중을 하고 싶어 지워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