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위로를 안겨준 나의 드로잉북 이야기
어느 날 조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조카 : 이모는 꿈이 뭐였어요?
나 : 이모는 어릴 때 화가가 꿈이었어.
조카 : 그럼 이모는 꿈을 이뤘네요?!
나 : 음... 그런가. 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나는 정말 꿈을 이룬 걸까? 어린 시절 꿈을 이룬 어른의 삶은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좋아하는 일이 이어져 그림 그리는 것이 직업이 된 내 삶을 살펴보니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닌 듯하다.
어릴 때부터 쭉 화가를 꿈꿨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시각예술가, 화가, 그림작가 또는 미술 선생님 등 나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어릴 적 꿈을 이룬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꿈꿨던 화가는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림으로 돈을 벌고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홍대에서 일러스트로 석사학위를 받고 나름 호기롭게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의 횟수, 그림으로 버는 돈이 늘어날수록 그림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은 자꾸 떨어졌다. 클라이언트의 그림 수정 요청은 내 그림에 대한 조롱, 비난처럼 들렸고, 이 모든 수정과 논의의 과정이 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감정이 상했다. 물론 경력이 쌓이면서 일하는 요령이 생겼고 어느 정도 마인드 컨트롤도 가능해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이 없으면, 즉 돈을 버는 일이 아니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 그림을 타인에게 평가받는 것뿐 아니라 아무도 내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봐, 더 크게는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을 싫어하게 될까 봐 정말 두려웠다.
그림 작가이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나날들이 반복되고, 그런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자책하던 어느 날 한 포트폴리오 사이트에서 드로잉 모임 멤버를 찾는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뭔지는 잘 몰라도 일단 해보자. 그냥 그리자 싶어 모임을 신청했고 2016년부터 매일 일기 쓰듯 드로잉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임은 아주 느슨한 듯 타이트했다. 온라인 중심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각자 드로잉을 하고 그 그림을 12시 전까지 카페의 본인 게시판에 올렸다. 이 첫 번째 룰 외에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댓글을 다는 것도 중요한 모임 규칙이었다. 자신의 그림을 올리지 않거나 댓글을 달지 않으면 벌금을 내는 방식이었는데, 이 벌금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라 꽤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이 모임을 하며 매일 그림 그리는 습관이 들었다. 매일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을 때가 마침 처음으로 독립해 혼자 살 때라 매일 밤마다 드로잉을 하며 혼자된 외로움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있었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나 좋았던 기분, 나빴던 감정 등을 가감 없이 그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여가는 드로잉을 볼 때마다 성취감도 생겼고 그림을 그리는 스스로를 보며 위안을 얻기도 했다. 드로잉 모임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아도 매일 그리는 것이 습관이 된 일상이 참 행복했다. 외주 작업보다 데일리 드로잉을 더 먼저 챙겼는데 그리는 시간이 부담되기는커녕 외주 작업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일은 몸은 고될지 몰라도 단단한 마음, 경쾌한 정신을 유지시켜준다.
데일리 드로잉을 하면서도 여전히 내 그림과 직업에 대한 불안, 의심을 안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일 때문이 아니라 진짜 내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얼마간 매일 드로잉을 하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꾸준히 올렸고, 그 드로잉들을 정리하고 엮어 독립출판물 세 권을 내었다. 독립출판물을 내면서 대외적으로 데일리 드로잉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이 주제로 전시와 클래스, 워크숍을 하게 되었다. 독립출판물 서점과 도서관은 물론 서울의 숲과 식물원, 공원, 여러 기관에서 그림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 재미있게 그림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던 데일리 드로잉에 문제가 생겼다. 매일 밤 드로잉을 올려야 하다 보니 그림의 완성도나 밀도가 아쉬웠고, 소재도 고갈되는 듯 느껴졌다. 응축시키고 시간을 들여하는 작업, 오래도록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그림 그리는 속도를 줄이고 보여주는 방식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올리던 드로잉을 격일,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횟수를 줄이면서 '매일'(의 기적과 힘도 충분히 알고 있지만)의 부담에서 조금 벗어나 쉬기도 하고 긴 호흡으로 그림을 그려나가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그림을 '파는 일' 보다 '가르치는 일 (알려주는 일)' 이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의로 경제적인 부분을 충당하면 외주 작업에 끌려다닐 필요 없이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다행히 클래스와 워크숍은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꾸준히 수업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 소문이 나 점점 더 많은 곳에서 다양한 클래스를 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망원동에서 작은 작업실을 운영하며 나와 같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작은 모임과 행사를 즐기며 자유롭게 그리며 지냈다.
그런데 최근 내 그림과 생활에 또 다른 위기가 닥쳤다. 코로나로 인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강의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든 것이었다. 강의만 믿고 외주에 손 놓고 있던 내게 큰 시련이 닥친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은 둘째치고 '그리는 경험', '함께 나누는 그림의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여럿이 모이는 행위가 가장 위험한 지금 상황은 내게 정신적으로도 큰 타격을 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취소되는 클래스와 기획 프로젝트들. 행사 취소 문자는 헛웃음 한 번으로 쉽게 지나갈 경지에 이르렀다. 매일 반복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나는 지쳤고 무기력해졌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겨우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만 타인의 냉정한 시선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갈팡질팡했던 그때처럼 나는 또 길을 잃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해보자. 태어난 이상 나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겨우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만 타인의 냉정한 시선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갈팡질팡했던 그때처럼 나는 또 길을 잃었던 것이다.
그때처럼 길을 잃었다. 그렇다면 길을 잃었던 그때 나는 어떻게 길을 찾아 다시 걸어 여기까지 왔던가.
그림이었다. 매일 일기 쓰듯 하루하루를 그려나가는 것.
'그래. 어떻게든 해줄 거야 나의 그림이.'
치열하게도 헤매었던 코로나 시대 7개월 만에 나는 다시 드로잉북을 펼쳤다.
9월 9일 아침. 집에서 작업실로 가는 길. 내 코와 입을 막고 있는 마스크 때문인지, 오는 길에 본 마스크 쓴 사람들의 모습 때문인지 숨이 끝까지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져 머리까지 아팠다. 길에서 도망치듯 작업실로 들어와 마스크를 벗고 손을 씻었다. 큰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내쉬는데 작업실 선반 위 물건 몇 개가 하나의 풍경이 되어 내 눈에 들어왔다. 인도 여행길에 데려온 손 모양의 조각물과 TEA 상자, 엄마가 주신 다구와 찻잎. 물을 끓이고 차를 마시며 조각물 안에 새겨진 가네샤(인간의 몸에 코끼리의 머리를 가진 인도의 신. 지혜와 행운을 상징한다.)를 바라보았다. 휴우~ 답답하고 어지러웠던 몸과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
9월 9일 오후. 작업실에서 집으로 오는 길. 비가 많이 내 아파트 화단에 핀 꽃의 줄기가 인도로 삐죽 튀어나와있었다. 비를 맞고 있는 꺾인 꽃이 초라하다거나 비참해 보이기는커녕 촉촉하고 생기 있어 보였다. 색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지. 눈이 부셨다. 우산을 살짝 비껴 써 보았다. 나도 그 비를 맞고 생기를 되찾고 싶었다.
9월 9일 밤. 하루 동안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위로의 순간을 떠올려본다. 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기운들을 드로잉북에 옮겨 담았다. '아- 나는 오늘도 나의 하루를 잘 살아 보냈구나.' 안도와 감사의 순간이다. 그림은 언제나 위기의 순간에 위로를 안겨주었다.
달성해야 할 목표가 없어도, 결과가 중요한 그림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나의 하루를 자연스럽게 보내고 또 그려내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하루.
오늘도 나는 나의 드로잉북을 펼쳐 하루를 그린다. 때론 무덤덤하게, 때론 열정 넘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