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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솜씨 Sep 16. 2020

오늘 그린 밤밤밤

재미있는 밤, 귀여운 밤, 따뜻한 밤

가을이 오나보다. 노란색과 황토색, 갈색과 고동색, 밤색으로 색칠하는 날이 부쩍 잦다.


순창에서 책방을 하고 있는 밭지기 언니가 이야기해주길, 밤나무에서 난 밤송이를 까보면 참 재미있고 신기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그러면서 보내준 사진 한 장에 아! 하고 귀여워 어쩔줄 몰라했다. 


언니가 보내준 사진 속 밤은 (우리가 사먹는 밤처럼) 밤톨같고 알밤같이 예쁜 밤이 아니라 가운데가 움푹 파진 밤, 울퉁불퉁한 밤, 세모난 밤, 쪼만한 밤 등 온갖 모양새와 크기의 밤들이 퍼즐 맞추듯 재미난 모양새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이렇게 제각각 자연스러운 얼굴로 자라난 밤은 깎아놓은 듯 예쁜 밤 모양이 아니기에 '파는 밤, 사는 밤'이 될 수 없어 하자 바구니에 다시 한번 모이게 될 것이다. (부디 풀 죽거나 기 죽지 않았으면!)


하지만 이 밤들만 따로 골라 줄 세운 다음 예쁘게 사진까지 찍어준 밭지기 언니처럼 귀엽고 따스한 마음들이 아직 세상엔 남아있기에 이런 저런 요런 그런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지 싶다. 나도 그 어울림에 함께 하고 싶어 오늘의 붓을 든다. 각기 달라 더욱 소중한 밤톨 한 알 한 알들을 요리조리 굴려가며 그리다가 '고놈들 참 귀엽기도 하지.' 생각하며 갈바람처럼 휘이 웃어본다. 


제각기 다른 밤톨들로 밤무늬 한 장을 그리고 나니 작업실에 수업하러 온 꼬마들이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한 친구의 손에 빨간 양동이가 들려있다. 달그락달그락. 안을 들여다보니 밤 모양 친구 마로니에가 한 가득 들어있다. "선생님! 이거 오늘 공원에서 동생이랑 같이 주웠어요. 여기에 그림 그려도 되요??"하고 묻는 아이에게 휘이- 웃으며 "당연하지!"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다시 또 붓을 들어 다가오는 가을을 부드럽게 환영해본다. 




+덧붙이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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