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VF day2 Badia Pozzeveri - San Miniato

by Soyeon

14 aprile 2025 Day2

Badia Pozzeveri - San Miniato 30km

L’hospitale del Pellegrino €20

*dinner + coffee inc



숙소 주인 쟌니아저씨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고 순례자 쟌니 아저씨는 먼저 출발하셨다. 나는 느긋히 준비하고 숙소 주인 쟌니 아저씨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로마에 도착하면 연락하라며 왓츠앱을 교환했다. 과연 내가 로마에 도착할 수 있을까.. (로마에 굳이 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Badia Pozzeveri 숙소 앞에 있던 표지판



알토파시오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다. 어제 걸은 18km는 비가 조금 와서 불편했지만 정말 아무 피곤한 느낌은 없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출발 직후에는 알토파시오에서 순례자 도장을 찍을 곳이 있나 도시를 기웃거릴 기운도 있었다. 성당 옆 도서관에서 멋진 도장을 얻었다.



Altopascio 마을 입구와 성당



알토파시오에서 도장을 얻고 쭉 걷는다. 첫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는 두려움이 커서 이것저것 짐을 참 많이 챙겼었다. 그것에 비해 이번엔 너무 얕본 듯하다. 발가락 양말이 두 개 있었는데 한 개는 도저히 못 찾겠어서 한 개만 가져왔다. 하루 신고 하루 안 신어도 되겠지 생각했다. 내 신발은 양말 두 개를 신고 신으려고 일부러 크게 샀다는 것을 까먹었다. 신발이 살짝 크니 계속 덜컹거렸나 보다. 뒤꿈치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뒷꿈치에 난 피



‘잉??? 이게 뭐야?? 하나도 아픈 느낌이 없었는데 이렇게 피가 나있다고? 아니 말도 안 돼 지금 고작 순례길 두 번째 날이란 말이야.. 로마까지 간다면 한 3주는 잡아야 하는데 둘째 날에 벌써 이러기야? Ma daiiiiiii!’ 진짜 어이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반창고 이런 거 당연히 안 챙겨 왔으니 그냥 가는 수밖에 없다. 신발이 덜 덜렁거리게 신발끈을 다시 꽉 묶고 출발해 본다.



쟌니 아저씨가 챙겨주신 사과



중간에 나온 뷰가 좋던 쉴 수 있는 포인트. 날이 좋았다면 정말 멋진 뷰였을텐데 현실은 비가 내리고 있는 갈색 물 뷰였다. 그래도 잠시 비를 피하며 쟌니아저씨가 챙겨주신 사과를 먹는다.



이 길이 맞나 의심되었던 꽤나 길었던 풀숲길



또 한참을 걷다 보니 요상한 뚝방길(?)이 나온다. 꽤나 오랫동안 길이 쭉 이어지길래 이 길이 맞나 비 오는데 핸드폰을 몇 번이고 꺼내서 찾아봤다. 앞뒤좌우를 돌아봐도 다른 순례자는커녕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 노란 꽃은 유채꽃이던가? 내 무릎까지 자라있었다. 보기에는 너무 이쁘지만 문제는 비가 많이 왔던지라 빗물이 맺혀있어 저 풀사이를 지나가는 동안 내 바지와 신발은 흠뻑 젖었다.


이 길을 보며 이탈리아에서의 삶이 생각났다. 길은 참 보기에는 예쁜데 정작 걷고 있는 나는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 이쁜 도시의 건축물들 사이에서 신선하고 맛있고 저렴한 식재료들, 환상적인 날씨, 보기엔 너무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삶을 헤쳐나가기엔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잠시 이탈리아를 떠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진흙을 피할 수는 없다



밭 옆의 진흙길을 지날 수밖에 없었다. 발이 깊게 빠지진 않아 다행이었으나 신발에 진흙이 묻고 묻어 점점 커지며 코끼리발처럼 굉장히 무거워졌다. 발목에 흡사 모래주머니나 쇠사슬을 달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진짜 천벌을 받고 있는 건가.


비는 점점 거세져 길 상태는 또 왜 이래 둘째 날부터 뒤꿈치에 피가 나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생고생을 또 사서하고 있나.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짓을 또 하고 있나… 수많은 감정이 올라와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 : Lunapop - Qualcosa di grande


Cos'è successo? Sei caduta

Sei caduta troppo in basso

Ed ora provi a risalire


What happened? You fell

You fell too low.

And now try to climb up



고지가 눈 앞이다



San Miniato 마을에 도착했다. 내가 머문 숙소는 이곳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어 정말 물을 뚝뚝 흘리며 숙소에 도착했다. 나폴리 출신 Ignazio아저씨가 그래도 잘 도착했지 않았냐며 친절히 맞아주셨다.


문제였던 발 뒤꿈치를 살펴봤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인지 흥건했던 핏자국은 빗물에 다 씻겨 없어졌다. 핏자국이라 지워지지 않을까 봐 걱정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네. 다행히 상처부위의 상처는 눈에 잘 안띌정도로 작았다.


전날 숙소에 같이 머물렀던 순례자 쟌니아저씨도 이 숙소에 같이 묵었다. 순례자 잔니아저씨는 전형적 이탈리아 상남자 스타일이신데 내가 아무래도 이탈리이어가 완벽하진 않다 보니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그래도 발은 괜찮냐 물집 잡힌 데는 없냐 물어봐주시고 물집에 붙이는 밴드도 나눠주셨다.



산 미니아토 숙소 개냥이



숙소에 있던 사람을 너무 좋아하던 고양이. 만져달라며 얼마나 애교를 부리던지. 숙소는 굉장히 시골 옛날집 같았달까? 요리를 하려면 나무장작으로 불을 지펴야 했다.



이탈리아 시골집 st



되게 코지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시에나 이후에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는지라 숙소를 찾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컸다. 생각해 본 방안으로 순례자용 숙소들에 연락해 청소하고 일을 할 테니 잠시 머물 곳 좀 얻을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다. ignazio 아저씨가 진짜 원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해 보고 연락을 달라고 하셨다. 그래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죽으라는 법은 없다. 어떻게든 살게 되어있다.


오늘도 저녁을 같이했다. 오늘의 저녁에는 숙소 주인인 Ignazio아저씨와 중년의 독일부부 요셉과 엘리자베스가 함께했다. 요셉아저씨의 캐릭터는 굉장히 독특했다. 내가 생각하던 독일인의 이미지와 많이 달랐달까? 선생님이신 요셉아저씨는 로마에서 1년 공부한 적이 있으셔서 이탈리아어도 가능하시고 영어도 수준급으로 가능하셨다.


호기심 많고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것 좋아하는 요셉아저씨를 보며 나도 나이가 들어서 점잔 빼고 무게 잡지 않고 저렇게 어린이같이 쭉 호기심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게 빗물인지 내 눈물인지